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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슬 Jun 22. 2023

출발 신호를 기다리며

「스프린터」, 2023


덥지도 춥지도 않은, 어딘가 한 바퀴를 돌기에 딱 맞게 선선한 봄날씨에 나는 <스프린터>를 만났다. 어쩌면, 스프린터를 보기에 가장 적합한 날씨였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본다. 그들과 함께 달릴 상상을 하기에도 적합하고.


영화는 각 인물별 한 장면씩 전개된다. 마치 모두가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하기도 했다. 그렇게 각자의 삶을 들여다보고 나면, 비로소 그들은 한 트랙 위에서 연결된다. 어떻게든 만날 운명 같이, 서로는 서로와 어떻게든 연결되어있다. 그들의 연결점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이 영화의 재밌는 요소였다.


그럼에도 내가 이 영화를 사랑하게 된 이유는... 인물 한 명 한 명의 특색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나도, 나의 마음속에는 계속 그들이 살아 숨 쉰다. 그리고 매일, 하루에 한 번은 그들을 생각하게 된다. 과연 준서는 무사히 준비를 계속 해내고 있을까? 현수는 어떤 2막을 준비하고 있을까, 그리고 정호는... 사실 난 생각보다 마음이 좁은 사람이었나 싶기도 하다, 정호의 미래는 꽤나 궁금하지 않다.


그들 한 명 한 명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시간이 흘러도 가장 마음에 남는 친구는 당연히 '준서'다. 왠지 육상부 유니폼을 입은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 나도 모르게 준서 생각을 한다. 좋은 성적을 냈으니, 국가대표로서도 좋은 결과를 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그 이후의 준서는 조금 걱정이 된다. 학교에서 합당한 지원을 해줄까? 나는 학교에는 기대를 걸 수가 없다... 그리고 같이 걱정이 되는 건, '지완'이다. 지완은 국가대표로서 역할이 끝나면, 울면서 내려오게 된다는 말을 한다.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더 이상 뛰는 것에 의미가 없어진다면 그 어떤 낭떠러지보다도 거칠고 무서울 테니. 


그럼에도 '지완'은 끝내 준서를 지지해 준다. 본인의 끝이 다시 한번 보였음에도, 결국은 준서의 편이 되어준다. 오로지 성적만 보는 교장선생님과 다른 코치들보다도 훨씬 어른이다. 아니, 진정한 어른의 모습이다. 그렇기에 지완은 영화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특별한 존재일 것이다.


선수로서의 끝을 얘기하면, '정호'로 생각이 이어지곤 한다. 정호는 언제부터 그런 선택을 했을까, 왜 그래야만 했을까. 화도 나고 속상하기도 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선택에는 지완이 얘기했던 '내려올 때는 울면서 내려와야 해'라는 말이 큰 원인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누구나 끝은 두렵다. 나 또한 그렇다. 정호에게 끝은 더 큰 의미였지 않을까, 그리고 정호가 금메달을 따야만 했던 이유가 너무나도 궁금하다. 금메달은 뜻깊은 상이지만, 정호에게는 그 의미가 더욱 남다른 거 같아서. 그래서 더 알고 싶다. 


그리고 '현수', 가장 마음에 남은 친구가 준서라면, 가장 마음이 쓰이는 사람은 현수다. 동기들이 코치로 2막을 열었을 때, 현수는 현역의 길을 택했다. 모두가 떠날 때 트랙에 혼자 남는 의지와 마음은 어떤 것일까. 감히 나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현역에 남은 현수는 순탄치 않다. 이 영화가 좋은 이유도 꾸며내지 않은 현실을 보여주기 때문인데, 현수의 실패가 영화의 포인트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대회를 앞두고 아내인 지현의 도움을 받긴 하지만, 그럼에도 현수는 트랙을 떠나게 된다. 눌러왔던 걸 꺼내듯 우는 현수의 모습은 아직도 생각하면 마음이 쓰리다. 함께 울었기 때문에 더 마음이 쓰리다.


모두의 과정은 다 다르지만, 그럼에도 나는 모두의 시작과 끝을 응원한다. 정호도 결국은 응원하게 될 것이다, 이제라도 더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기를. 그리고 현수의 또 다른 시작이 부디 두려움이 아니라 나아간다는 상쾌함이기를. 준서가 육상에 지금보다 더 온 힘을 쏟아내기를.


선선한 날씨에 시작된 나의 스프린터는, 무더위가 쏟아지는 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시릴 만큼 시릴 겨울에도 함께할 거라 생각한다. 트랙은 끝나지 않으니까!



2023.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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