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생각에세이
설겆이를 미치고 나니 보이는 다 먹은 그릇들,
세탁기를 돌리고 나니 보이는 빨랫감들...
마감을 하면 그냥 한동안은 그 끝이 있었음을 유지해주길 바랬던 순간들이 있었다.
끊임없이 쓰고 닦고 입고 빨고를 해야하는걸 알면서도 말이다.
살아있는 한 먹고 입고 또 닦고 빨고 다시 쓸 수 있게 만드는 끊임없는 활동이었는데
한때는 마치 성취해야할 목표처럼 보였고 그 임무의 완수를 방해하는 누군가가 있는 것처럼
화가 나기도 했고 힘들어지기도 했다.
이제 난 50이 넘어 부부만 집에 있다.
아이들 키울때 조금만 조용한 날이 하루라도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생각이란...
그 나이에, 그 때에 국한되는 것이지 시간이 흐르면 생각도 나 조차도 바뀐다는걸 왜 몰랐던걸까...
조용함은,
어떨땐 갑자기 삶이 허무해 보이게 하기도 하고
어떨땐 앞으로 남은 날이 모두 불안해 보이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특하게도
이제 난 세탁기에 빨래를 넣어 돌리고 난 후 미처 넣지 못한 빨래를 마주하거나
설겆이를 한 다음에 책상위에 남겨진 다른 설겆이 거리를 발견해도
그것들이 나를 화나게 하지 못할 만큼 맘이 자라있다.
별 내공은 아니지만 매일 마주하는 문제에 대한 다른 시각이 생긴 것 같기도 하다.
쉼을 바라는 건 젊으나 늙으나 같겠지만 쉼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건 나이 때문만은 아닌것 같다.
내 젊은 시절이 떠오른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그당시, 결혼 적령기)에 결혼을 했고 남편과 해외에 살게된 나는
친정 엄마도 없이, 친구도 없이, 간난 아기를 기르며 이 머나먼 타국에서
그녀의 보호자가 온전히 '나' 인게 두려웠다.
남편은 바빴고 술을 좋아했고 바깥에 나가면 늦게까지 연락이 되지 않았다.
난 의지할 데가 없다는 생각에 항상 무섭고 불안했고 예민했다.
생각해보면 주위를 둘러보며 실수도 해가며, 슬슬 걸어도 되는 길이었는데
그 시절의 난, 마음에 여유가 없었고 어렸다.
그렇게...
눈앞에 있는 (그때의 내게 집채 만하게 보였던) 문제만 쳐다보는 사이에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흘렀고 30년이 가까운 시간이 지나갔다.
50이 넘은 지금의 고민, 그때와는 다르지만 새로운 걱정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과거를 되집다보니 어쩌면 지금의 걱정도 나중보면 아무일도 아닐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50년 넘게 살아오는 동안의 경험으로 보면
지금의 내가 가진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함은
정작 내가 10년 후 만나게될 상황과는 아무 상관이 없을 가능성도 크다.
세월과 함께 나이만 들어가는게 아니고
내 상황도, 사회도, 가치관도 변해간다.
지금의 내가 10년 후의 내가 아니듯, 주위 환경도 그리고 나를 둘러싼 상황들도 변해간다.
지금의 나를 10년 후에 그대로 가져다 놓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10년 후의 나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내공을 가지고 있을테고
지금 바라본 나중의 문제는
막상 그때 가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있을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내가 상상하는 문제로 미래를 고민하는 대신, 누려야할 것들을 감사로 누려야할 시간일 것 같다.
내가 1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치매에 걸리지 않은 엄마와 볕 바른 곳에 앉아 제일 맛있는 빵을 사 드리고 실컷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엄마가 항상 억울해했던 엄마의 시어머니인, 할머니와의 힘들었던 역사도 기꺼이 들어드릴 거다.
그리고...이미 돌아가신 우리 아부지,
10년 전 살아계셨던 우리 아부지를 차에 태우고 좋아하시던 일식을 사드리고 싶다.
어쨋든 아이들 키우는 걱정으로, 바람피고 밤새고 술 먹는 남편 걱정으로, 옆은 보지도 못한채
그 아까운 나의 하루를 온통 잿빛으로 보내진 않을 것 같다.
이제, 좀 늦은 나이인 듯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지금 내 옆을 지나쳐 흘러가는 많은 감사할 제목들을 놓치지 않고 누리며 살아가고 싶다.
어쩌면 오늘의 내가 해야할 일은
10년 후를 걱정하는게 아니고
10년 후에 나를 상상하며,
10년 후의 내가 지금을 보며 가장 아쉬워할 것들을 지금 즐거워하는 일일듯 싶다.
#20260315 #소곤소곤이야기 #50대생활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