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의리>

정상이라는 이름/50대 일상 에세이

by sogons

자칫 삶이 너무 나락으로 갈까 두려웠다.

매일 누군가를 만나고 그들과 헤어져도 혼자 다른 술집으로 가서

연락조차 되지 않는 남편은 조금씩 내 맘에 벽을 쌓게 했다.


십여 년 전,

외국으로 발령이 났던 남편을 따라

우리 가족은 해외로 이사했고 새로운 나라에 적응해 가고 있었다.

아이들을 국제학교에 보낼 수 있음에 나는 들떠 있었다.

그간의 그의 일들은 잊고 정상적인 가정으로 만들어가고 싶었다.

나만 잘하면 나만 조금 참고 잊으면

아이들에게 나은 환경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새로 이사 간 나라에 적응되기도 전에

남편은 세상 사람들을 다 만나기라도 할 것처럼

매일 술을 마시고 들어왔다.

자정이 넘으면, 언제 들어오나 궁금해서 전화를 걸어도 그는 받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비싼 물가 때문에 서서 한두 잔 하고 헤어지는 나라에서

그는 새벽이 될 때까지 연락도 없이 술을 마셨다.

이런 일들이 계속되니 또 여자 문제가 생길까 나는 불안과 스트레스로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날도 퇴근 시간이 두 시간이나 넘었는데 연락이 없었다.

또 다른 여자를 만나는구나 생각하니 소변이 너무 자주 마려워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십 분에 한번, 그다음엔 일분도 되지 않아 화장실이 가고 싶더니

나중에는 화장실에서 나올 수가 없게 되었다.

한국이 아니고 처음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병원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였고

아는 사람이라고는 술 마시면 연락이 안 되는 남편과

낮에 집 앞 스타벅스에서 처음 만나 연락처를 나눈 한국 엄마 한 명이 다였다.

몇 분 머뭇거리는 동안 소변에서는 피가 섞여 나오기 시작했고

곧, 비명이 나올 만큼 짜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을 걸었나 모르겠다.

열 번쯤 걸었을 때 큰 음악소리에 묻힌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남편의 비서였다.

너무 아파서 지금 비서와 둘이 있는 사연이 궁금하지도 않았다.

남편은 여덟 시도 안 되는 시간에 이미 만취한듯한 목소리로 전화를 옮겨 받았다.

왜 전화를 했냐고 아직 안 끝났다는 말을 하고는

내 이야기는 한마디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을 다시 걸었더니 또 비서가 받았다.

난 비서에게 내 증상을 말하고 남편을 집으로 들여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고도 삼십 분이 넘게 그는 전화 한 통이 없었다.

변기는 피로 물들고 오줌이 아닌 피를 누고 있었다.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전기에 오른 느낌이 들었다.


낮에 처음 만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헤어지며 그녀가 모르는 게 있으면 연락해도 된다고 했던 말에 용기를 내었다.

너무 부끄럽지만 너무 아파서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변기에 앉아 꾹꾹 참아가며 병원을 물어보았다.

많이 아프냐고 많이 아프면 와 주겠다는 그녀가 고맙기도 했지만

지금의 내 모습이 너무 창피해서 병원 정보를 얻고는

웃는 목소리를 끌어내어 많이 아프지 않으니 걱정 말라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남편은 한 시간 후쯤 만취가 되어 집에 들어왔다.

자기 몸도 가누지 못하는 그에게 화장실 변기 안의 피를 보여 주었다.

병원에 가면 되지 왜 사람을 만나 식사하고 있는데 전화를 걸었냐고 화를 냈다.

그리고는 히죽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는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악마에게 조정이라도 받는 표정이었다.


첫째 아이가 남편과의 대화를 듣고 화장실로 들어와

나의 표정과 피를 보더니 '엄마'하고 부르며 울기 시작했다.

엄마 왜 병원에 안 가냐고...

초등학교 6학년인 아이에게 이 상황이 어떻게 보였을지 미안하기만 했다.


사실 그때 나는 누가 택시를 불러 주어도 소변을 참고 병원에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혼자 길도 모르는 타국에서 처음 가보는 병원을 택시를 타고 가서 접수하고

혼자 치료받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남편과 한참을 병원에 가야 한다 혼자 가라 실랑이하는 동안

첫째 아이가 울부짖기 시작했다.

'엄마 ㅠㅠ 나랑 가자, 나도 영어 할 수 있어'

그는 그 순간 악마 같았다.

그의 얼굴에는 얄팍한 웃음기가 있었다.

마치 내가 꾀병으로 위장해 자신의 저녁 시간을 망친 사람이라고

그의 얼굴이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삼십 분이 넘게 흘렀던 것 같다.

아이가 소리를 지르고 울고 하는 동안, 그는 술이 조금 깼는지 귀찮은 듯 말하며 병원에 가자고 했다.

의사는 급성 방광염으로 피가 이렇게 계속 나오면 심한 경우라고 하며

입원하면 조금 덜 힘들게 치료받을 수 있는데 어떻게 하시겠냐 물었고

그는 나에게 묻지도 않고 집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술을 많이 마셔 졸음이 눈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집으로 오는 길에도 얼마나 아픈지 묻지 않았다.

난 위로도 받지도 못하고 꾀병 난 사람 취급을 받으며

사무치게 아프고 외로운 밤을 보내야 했다.


그때 내 나이 겨우 마흔이 되어가는 즈음이었다.

내 나이가 많다고 생각했던 나는

다시 시작하기는 늦었다고 생각했던 나는

마음에 큰 상처가 난 나를

이해해 달라고 싸우지도 못하고

누구에게 위로받으며 치유하지도 못하고

또 나만 포기하고 나만 잊으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커다란 벽돌 하나가 그와 나 사이에 놓였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소곤소곤이야기 #20251212 #십오년전의일이또렷한이유

#악마의웃음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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