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상품성 by sogons
때 늦은 캐럴이 공간을 채운다.
서로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이 한 테이블에 모여 앉아
저마다 바삐 손과 눈동자를 움직이고 있다.
비스듬히 앞 쪽 자리에 앉은 젊은 아가씨는
이따금 몸을 움직여가며 캐럴을 따라 부르기도 하는데
뭔가에 열중해 있는 모습이 예쁘다.
젊음이란 이렇게 싱그럽다.
난 이력서를 적고 있다.
결혼하기 전, 난 승무원이었고 은행원이었다.
스스로 당당하게 적어나가던 중에
20 년이 넘는 공백을 맞이한다.
아이를 낳아 키우고 대학을 보내고
남편 따라 국내, 해외로 이사하고 적응한 내용은
내 경력이라 할 수는 없지만
빈 공간에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 적어 넣었다.
건너뛴 20년의 경력 다음에
남편의 수입이 끊어졌을 때
정말 돈을 벌기 위해 가졌던
내세울 것 없는 짧고 초라한 나의 경력이 그 뒤를 채웠다.
직업의 귀천이 없다지만
괜히 자존심이 상해 머뭇거리며 들어간
차가운 바람이 부는 직장이었지만
이제 생각해 보니 생각만큼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 나갔는데
일한 만큼의 돈이 되지 않았고
노동의 강도나 시간에 비해
복지나 휴식시간이 보장되지 않았던 것이
쉽게 일을 관두게 된 이유였던 것 같다.
그곳에 사람들은 대부분 한해를 넘기지 못하고 직장을 떠났다.
예전 호주에 살던 때에
변호사 옆 집에 벽돌공이 살았다.
변호사는 출근해서 저녁에 들어왔지만
중년의 벽돌공은 점심에 들어와
아내와 따뜻한 점심을 먹고 다시 오후 일을 하러 나갔다.
한국에서는 변호사나 의사가 사는 동네에서
이웃으로 벽돌공을 만나기는 힘들다.
학교 때의 점수가 대부분 직업의 종류를 결정하는 것이겠지만
고등학교 몇 년의 성실성? 과 지능이
60년이 넘는 성인의 삶을 계속 단정 짓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노래를 하는 사람이나
벽돌을 예쁘게 쌓는 사람이나
도배지를 바르는 사람이나
병을 치료하는 사람이나
직업의 종류로만이 아니라
들여진 노동의 강도나 질,
그리고 시간으로도 귀하게 계산되었으면 좋겠다.
이력서를 다 적고도 쉽사리 전송을 하지 못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대신에
그들이 날 원해줄지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더니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이 든 여자에게 세상은 너그럽지 않다.
휙휙 빠르게 돌아가는 줄넘기 줄 아래로
박자에 맞춰 가볍게 폴짝 뛰어 들어가야 하는데
맞으면 아플 것 같다는 생각에
엉덩이가 무겁고 발은 제자리를 머뭇거리고 있다.
#소곤소곤이야기 #나이가많아도일할수있는거죠 #50대의이력서 #2025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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