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처음 만난 날>

50대가 쓰는 덜 익은 묵상 에세이 #1

by sogons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들어도 믿기 힘든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15년이 지난 지금에도

너무나 생생한 일이다.*******



2011년이었다.

남편의 회사 발령으로 해외에 살게 된 나는

새로운 곳에서라면

남편의 여러 몹쓸 버릇들이 조금은 덜해지리라 믿었다.

하지만 아이들 학교 문제와 이삿짐 정리 등의 일들은 다 내 몫이었고

그는 변함이 없었다.

술과 여자...

항상 나를 괴롭혀온 문제가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그는 저녁에 집에 돌아오기를 즐기지 않았고

술자리가 시작되면

보통 퇴근 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없었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사람을

나는 왜 기다렸는지 모르겠다.

저녁밥을 지어먹이고 아이들 숙제를 봐주며 저녁 시간을 보내다가

답답해진 맘이 주체하지 못할 만큼 올라왔다.

머릿속이 온통 그가 하고 있을 일들에 고정되어

미칠 것 같았다.

이미 한국에서

몇 번의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일들이 지나갔기에

이번에도 또 일어날 일들에 대한 상상에 상상이 더해졌다.


저녁 9시가 될 무렵

아이들 앞에서는 울고 싶어도 편히 울 수도 없었기에

운동을 핑계로 단지 내에 헬스클럽으로 나왔다.

저녁을 먹고 나온 사람들이 러닝 머신에 줄줄이 올라

티브이를 보며 뛰고 있었다.

조금 앉아 있으니 러닝 머신에 빈자리가 보였다.

경사를 조금 높이고 아주 낮은 속도로 걸었다.

유튜브로 여러 영상을 뒤적이는 중에

그 무렵 베스트셀러였던 '긍정의 힘'이라는 책의 저자,

'조엘 오스틴' 목사의 설교 영상이 나타났다.

나는 그때 종교가 없었다.

어릴 적 노래가 좋아 한두해 교회를 다녔던 기억이 있을 뿐

우리 집은 불교 집안이었다.


호기심에 조금 설교를 듣다 보니

10분짜리 영상이 다 흐르고

마지막에 영접 기도문이 나왔다.

난 그게 영접 기도문 인지도 나중에 알았다.

'Jesus, I am a sinner...'로 시작하는 기도였다.

따라 하라는 말에 영어 공부도 할 겸

영혼 없이 기도문을 입으로 따라 했다.


그리고 몇 분 후,

갑자기 헬스클럽의 전원이 잠깐 나갔다가 다시 켜지면서 러닝머신은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는데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았다.

더 이상 유튜브 비디오를 볼 수 없게 되었다.

러닝머신에 달린 화면도 꺼져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다시 집에 들어갈 생각을 하니

답답한 속이 더 답답해질 것만 같았다.


그냥 다시 걷기를 시작했을 때

어릴 때 불렀던 찬송가 하나가 머리를 스쳤다.

'주의 발자취를 따름이...'

띄엄띄엄 생각나는 가사를 더듬어 1절을 완성했다.

기억을 더듬으며 가사의 빈 부분을 다 맞춰놓고 보니 같은 찬송을 30번 정도 불렀던 것 같다.


헬스장 창문 멀리에서 눈앞으로

부채만 한 하얀 구름 같은 것이 다가왔다.

큰 창문을 마주한 헬스클럽 저편 산에서부터

마치 흰 구름이나 보드라운 새가 날아들듯 와서

내 이마 앞에 잠시 떠 있다가

내 얼굴로 스며들듯 들어왔다.

아무 느낌은 없었다.

그저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약간 몽롱한 채로 넋이 나간 듯 머신 위를 걸었다.


몇 초가 흘렀을까...

러닝머신 뒤쪽 멀리로 뭔가 툭'하며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난 러닝머신에서 떨어질까 걱정되어 고개만 돌려

조심스럽게 소리가 들린 쪽을 보았다.

내 눈에만 보이고 내 귀에만 들리는 듯

옆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뒤쪽 멀리에

커다란 검은 쓰레기 봉지 같은 것이 떨어져 있었다.

50리터는 돼 보이는 봉지인데

청소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는 내가 앞을 쳐다보고 뒤를 보고 하는 몇 초 사이에 그 봉지는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하나님'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맘의 무거움이 돌연 사라졌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는데

내 눈은 한 번도 감겨있지 않았고

내 발은 러닝머신 위에서 아직도 경사를 걷고 있었다.


낮에 아이들 학교에서 처음 만난 엄마가

교회에 다닌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새로운 엄마들 사귀기에 좋은 성경모임이 있다고도 했다.

전화를 걸었다.

혹시 성경책이 있냐고 물었다.

성경책은 없고 요즘은 앱으로 본다고 하며

처음 하나님을 믿고자 하면 일단 간증 도서가 있으니 읽어보라고 권했다.

다섯 권의 간증집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 같으면 새벽에나 들어올 남편이 저녁 10시가 조금 넘어 들어왔다.

불면으로 고생하던 나는 자다 깨면 읽으려고

간증집을 침대 머리맡에 놓아두었다.

조금 일찍 들어온 남편은 라면을 먹고 잠이 들었고

나도 평소와 달리 쉽게 잠이 들었다.

사실 그 무렵 난, 남편의 첫 번째 여자 문제 후에

2시간 이상 연속으로 잠을 자지 못했었는데

그날은 자정부터 새벽 5시까지 정말 오랜만에 꿀잠을 잤다.


잠이 어슴프레 깨려 하는 즈음에

누군가 아주 익숙하고 작은 목소리로 내 귀에 말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 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니...'

분명 누가 내 귀에 대고 이야기한 것 같았는데…

이상했지만

난 내가 꿈을 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성경 말씀은 갑자기 왜 떠오른 걸까...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어젯밤, 아는 엄마에게 받아온 간증집이 생각났다.

일어나 앉아 다섯 권 중에 한 권을 집어 들고

첫 장을 넘겼다.

놀랍게도

내가 잠에서 깰 때 들었던 말과 똑같은 말이 적혀 있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 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니’

우연이라 생각하기엔 너무 기적 같은 일…

알 수 없는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기 시작했다.


내가 어젯밤 하나님을 성령님을 만났던 거구나...

하나님에 대해, 성령님에 대해 아무 지식이 없었던 내가

왜 내가 만난 그를 하나님이라 부르고 있는지도 몰랐지만

난 그냥 그가 하나님이심을 알았던 것 같다.

벅차도록 억울했던 맘 대신,

벅차도록 기쁜 건지, 황홀한 건지, 슬픈 건지 모를 맘으로

여하튼 엉엉 울며 온 새벽을 보냈다.


난 그렇게 하나님을 만났다.

그리고 그 일 이후 갱년기가 오기 전까지

난 하루에 다섯 시간은 잘 수 있게 되었었다.


#20260105 #소곤소곤이야기 #내가그를처음만난날 #불면이없어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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