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할 이유는 없다 / 50대가 쓰는 에세이 #13
아침에 산책 중에는 노래를 부르거나 하늘을 본다.
한 바퀴 두 바퀴 세면서 걷기도 하지만 구름이나 바람을 눈으로 피부로 느끼려 한다.
하루에 이렇게 십오 분 정도를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보고 싶어서다.
꽃에 물을 주고 화단을 정리하는 분이 나오기 전에 나가야 떨어진 꽃을 주어올 수 있다.
오늘도 간신히 그분보다 일찍이다.
아침엔 모두의 표정이 밝은데 이분은 인사를 해도 받지 않으신다.
물을 주고 가꾸는 일이 그분의 일이라 아마 일에 집중해서 그런 것 같다고 이해한다.
벌써 큰길과 가까운 화단 쪽은 이미 다 물을 주고 나오시는 중이다.
떨어진 꽃에 물이 닿고 밟히기라도 하면 안 되니 얼른 다른 쪽 나무로 향했다.
오늘도 그렇게 떨어진 꽃을 가져와 어제처럼 작은 접시에 물을 담고 꽂아 놓았다.
임무 하나를 완수한 기분이다.
아침 산책을 하다가 부탁받은 기도가 떠올랐다.
내 문제가 산더미라, 어젯밤에도 기도 반, 걱정 반의 밤을 보냈는데 친구의 기도를 시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잊지 않겠다고 약속한 터라 그래도 부탁한 친구의 이름을 꺼내 놓았다.
왠지 이렇게 이름만 꺼내 놓아도 하나님이 그 사정을 아시고 응답해 주실 것 같았다.
아는 사람의 기도가 생각날 때, 기도를 성의 있게 해야 할 것 같아서 항상 부담이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생각이 떠올라도 '있다가 나중에 자리 잡고 해야지' 하다가 시기를 놓쳐 버리곤 했다.
오늘은 좀 다르게 생각해 보니, 그저 그 부탁이 떠올랐을 때, 하나님께 그 이름을 생각나게 해 드리는 정도라도 하는 게 미루다가 잊어버리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으며 생각나는 이름을 짧은 사연과 함께 기도로 올려 드렸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리 생각하니, 기도도 그렇고 내 인생의 일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무엇을 하려 할 때 엄두가 안 날 때가 있다.
이 작은 변화가 대체 무엇을 바꿀 수 있나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돌하나를 저 땅에 갖다 놓은들, 언제 언덕이 되고 언제 산이 될까 싶어서였다.
우울증과 불면, 그리고 불안의 틈바구니에서 빠져나오려면 무엇이라도 시작하라는 충고를 듣고
글을 쓰는 것을 시작했다.
마음을 글로 풀어놓는 것만 해도 조금은 가벼워진 느낌인데 댓글이 달렸다.
'작가'라는 이름을 붙여 내가 쓸 글을 미리 응원하신다며 달아주신 댓글이었다.
내가 작가라 불리니 작가가 된 것 같았다.
약간 닭살이 돋기도 하지만, 입에 실쭉 웃음이 피고 은근 가슴이 펴졌다.
그리곤 매일 돌멩이 한두 개씩을 자리에 놓고 나오게 되었다.
무엇보다, 내가 그 자리에 돌을 놓았음을 나 자신이 안다.
오늘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지 않았음을 내가 본다.
그리고 내일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무거웠던 내 상처 난 마음에
나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움트고 있다.
일은 때때로 내가 하려 했던 일의 결과만을 가져오는 건 아닌 것 같다.
난 오늘부터 또 다른 작은 일 하나를 더 내 하루 일정에 가져다 놓기로 했다.
팝송 한 곡을 온전히 따라 부르고 이해하는 일이다.
노래가 된 시에서 깊은 울림이 있을 것을 기대한다.
이제 난 산책이, 글쓰기가, 팝송 부르기가 내 하루 일과이다.
하고 싶은 일들이 하나씩 쌓이고 또 하고 싶은 일들이 생기는 동안
내 맘이 흔들릴지 모르지만 그 역시 글로 적어나가려 한다.
50이 된 나는 이제 나에게 솔직하기로 했다.
특별함이 정성스러움이 항상 최선이 되는건 아니다.
매일 조금씩 쌓아가는 과정을 즐길 것이다.
그것이 기도이든, 생활이든, 그리고 일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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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12 #특별할필요는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