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시립 1인 1 책 프로젝트 3기, 출간기념 작가강연
지난 10일 (토요일 오후 2시), 충남 당진에 폭설이 내리던 시간이었다. 신평면의 작은 책방 '한선예의 꿈꾸는 이야기'에서는 평소와 다른 온기가 감돌았다. 조용히 책을 읽던 공간은 이날만큼은 책을 펴낸 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러 온 이들이 모였다. 그리고 저마다의 삶을 통과해 온 문장들이 그날, 같은 자리에 놓였다. 작가 강연은 당진시립 '1인 1 책 쓰기 프로젝트' 3기의 연장선에 놓인 북콘서트였다. 이미 한 차례의 출판기념회로 완성을 경험한 작가들이 다시 모였다는 점에서, 이날의 자리는 결과보다 계속 쓰겠다 는 약속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엄마와의 여행이 삶의 기록이 되기까지
첫 번째로 이야기를 건넨 이는 책방의 주인이자 작가인 한선예 작가였다. 그의 에세이 <유쾌한 모녀여행>은 여행기이자 가족사이며, 동시에 한 사람이 삶을 붙잡는 방식에 대한 기록이다. 엄마가 유방암 진단을 받고 병원에서 "암 조직이 사라졌다"는 의사의 말을 듣던 날,
한 작가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잘해'라는 노래를 들었다고 했다. 그 순간, "미뤄두었던 시간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고"말했다. 일상이 바쁘다는 이유로, 다음에 하자며 뒤로 밀어두었던 엄마와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모녀 여행이었다. 여행은 일회성이 아니었다. 몇 해에 걸쳐 이어졌고, 사진은 달력이 되었다.
처음엔 카메라 앞에 서기를 망설이던 한 작가의 어머니는 어느 순간 포토존 앞에서 먼저 포즈를 취하기 시작했다. 한 작가는 엄마가 처음보다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변화를 "여행이 남긴 가장 큰 선물"이라고 말했다.
2008년 서울 간송미술관에서 막연히 품었던 꿈은, 지난 8월 당진시립중앙도서관 해오름갤러리에서 작품을 선보인 엄마의 개인전으로 이어졌다. 이어 오는 9월에는 유쾌한 모녀 전 사진 전시가 예정돼 있다. "못 할 게 뭐 있나"라는 마음으로 살아온 시간의 결과였다. 칠순의 나이에 엄마만의 전시회가 열렸다는 사실은 여행이 단순한 추억을 넘어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녀의 이야기는 여행지에서 만난 자연과도 겹쳤다. 강원도 낙산사에서 몇 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수리부엉이, 책에는 실리지 못했지만 마음에 깊이 남은 순간들. 삶은 때로 예상치 못한 장면으로 기록됐다.
하지만 에세이 책을 펴내는 과정 중 가장 어려웠던 건 즐거운 추억을 담는 순간이 아니라 아팠던 시간을 쓰는 일이었다고 했다. 한 작가는 독자들에게 어디까지 공개해야 할지, 무엇을 남겨야 할지 몰라 며칠을 울며 원고를 붙들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런 고백은 글을 쓰는 이들 모두의 마음을 움직였다.
관찰이 기록이 되고, 기록이 태도가 될 때
2부,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마이크를 잡은 이는 김수정 작가였다. 그녀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어릴 적에는 들로 나물을 캐러 다니고, 산으로 도라지 캐러 다니던 아이였습니다"라고. 2009년 우연히 참여한 생태기후해설사 양성과정은 김 작가가 평범한 주부에서 해설사의 삶으로 방향을 바꾸게 했다. 이후 자연환경해설사, 환경교육사, 생태환경교육 해설사, 유아숲지도사 국가자격증을 취득해 당산생태공원에서 활동하며 유아부터 청소년, 노인까지 다양한 세대와 자연을 연결해 왔다. 특히 신평면 행정복지센터를 시작으로 중학교 학생들과 당진남부사회복지관을 오가며 쌓아온 경험들은 결국 '나만의 책'을 쓰게 만든 동력이 되었다.
김수정 작가의 책 <자연을 마주하다>는 자연 해설의 설명서가 아니었다. 저수지에서 우연히 마주친 금개구리, 화력발전소 인근 논에서 발견한 황새, 서산 가로림만에서 시민들의 노력으로 지켜낸 점박이물범 까지. 희귀종을 소개하는 대신, 작가는 왜 그 장면 앞에서 멈춰 섰는지 이야기했다. 김수정 작가는 "집값이 오르지 않아도 숲세권이 좋은 이유는 분명 하다"고 말했다. 낮보다 밤에 더 또렷해지는 소쩍새의 울음은 시간을 바꿔 숲으로 나가게 만들었고, 관찰은 그렇게 생활의 리듬을 바꾸는 일로 이어졌다.
김 작가는 "나뭇가지에 개구리를 꿰어 놓은 채 먹이를 저장한 맹금류의 흔적, 수십 마리가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뱁새의 움직임은 책으로는 알 수 없는 장면들이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새가 있는 곳으로 내가 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그런 과정에서 화력발전소 인근 논에서 황새를 마주하기도 했다고.
아직 '흰머리오목눈이'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 한 종의 부재마저도 관찰을 멈추지 않게 만드는 이유가 되었다. 만나지 못한 새 덕분에, 김 작가는 오늘도 숲을 향해 나선다. 김 작가는 "아이들에게 자연을 설명하는 (해설사로) 일을 하면서, 정작 어른들이 먼저 자연 앞에 발걸음을 멈춰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라고 말했다.
식물의 이름, 꽃말, 열매에 담긴 이야기들도 자연을 마주하며 관찰 속에서 다시 살아났다. 자연을 보는 시선은 곧 삶을 대하는 태도라는 사실을, 작가의 이야기는 단단히 증명하고 있었다.
글을 쓰는 사람들, 그리고 다음 문장
이날 강연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잘 쓴 문장'이 아니라, 쓰는 과정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었다. 혼자였다면 끝내 기한을 채우지 못했을 글, 같은 패턴에 머무는 것 같아 스스로를 의심했던 시간들. 그럼에도 함께 쓰는 자리에서 작가들은 서로의 호흡을 나누며 결국 책을 펴냈다. 글은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과 함께 버텨낸 시간의 기록이라는 사실이 미소로 전해졌다.
강연이 끝난 뒤, (사전 접수한 독자는) 책에 사인을 받으며 "나도 써보고 싶다"는 질문이 쏟아졌다. 이날 모인 10명의 참여자들은 독자이자, 두 번의 출판을 준비하는 작가들이었다. 듣기만 해도 기대되는 시간이었다. 책방이라는 공간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거창하지 않아도, 삶을 꺼내 놓을 수 있는 자리. 이번 강연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목적은 분명했다.
에세이 책을 펴낸 과정은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시간을 정직하게 마주한 사는 이야기의 기록이라는 것. 글은 개인의 고백을 넘어 서로의 삶을 연결하는 언어가 되었다.
무엇보다 각자가 지나온 시간을 성급히 미화하지 않고, 머뭇거림과 반복까지 포함해 기록으로 남긴 선택의 결과였다. 이어진문장들이 함께 쓰는 자리에서 비로소 이어졌달까. 그렇게 투고한 문장들은 책장을 넘어서 또 다른 시간 속으로 옮겨가며, 지금도 독자들은 특별하지 않지만 소소한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