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바깥에서 만난 아이들의 '평범한 수업'은 달랐다

<유별난 영어쌤의 평범한 수업 >정선희 작가의 따뜻한 봉사 이야기

by byspirit

지난 17일, 충남 당진시 아늑한 공간 '안녕, 동네서점'에는 따뜻한 차와 온기를 담은 간식이 먼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책장 사이로 독자들이 하나둘 모여들며, 시끌벅적한 작가 강연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이날 북콘서트에서 만난 세 번째 작가는 스스로를 "유별난 영어쌤"이라 소개했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특별함보다는 포기하지 않고 선택을 이어온 삶에 더 가까웠다.


정 작가는 미국에서 20대를 보냈고, 30대 후반까지 영어 봉사 활동을 이어왔다. 한국으로 돌아와 결혼을 준비하고 싶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 무렵 삶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보다 다른 선택을 했다. 그리고 캄보디아에서의 일주일간 봉사 활동을 시작으로 이후 삶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해외 봉사 활동 수업은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아니라 아이들 곁에 머무는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믿었다. 아프리카와 캄보디아, 네팔과 라오스, 몽골과 필리핀까지. 정선희 작가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보다 아이들과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무엇을 함께 나눌 수 있을지를 먼저 고민해 왔다고.


캄보디아에서는 양치 수업으로 수업을 시작했고, 물감 놀이와 색종이 접기, 딱지치기 활동이 이어졌다. 네팔에서는 한국어 수업과 풍선아트를, 라오스에서는 공룡 퍼즐 수업을 진행했다. "아프리카 케냐에서 진행한 딱지치기와 스피드스택스 수업은 특히 기억에 남는 활동이었다"고 정 작가는 말했다. 아이들의 습득력이 빨라 "국가대표로 키우고 싶을 정도였다"는 말에는 웃음과 함께 진심이 묻어 났다. 강연을 이어가는 정 작가는 "한국 아이들은 성적을 위해 해외 연수를 떠나지만, 아프리카 아이들은 실뜨기 수업 하나에도 온몸으로 몰입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진 몽골에서는 네일아트와 비즈 수업을 진행했다. 바다가 없는 몽골 아이들을 위해 바다 배경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고 액자로 만들어 선물로 건넸다. 작은 이벤트였지만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필리핀에서는 사회·경제적으로 오랜 소외와 차별을 겪어온 원주민 공동체인 아이따(Aeta) 부족 아이들과 만났다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정선희 작가는 큐브 수업과 버블쇼를 이어갔고, 마지막 날에는 아이들과 함께 장터를 열어 마을 주민들까지 어우러지는 작은 축제의 시간을 만들었다.


정선희 작가에게 봉사활동은 수업으로 끝나지 않았다. 캄보디아에는 자전거 여섯 대를 기부했고, 필리핀에서는 "봉사 활동에 참여한 아이들과 함께 농구장을 만들면서 덥고 습한 날씨로 매우 힘들었"지만 "사흘 동안 풀을 뽑고 바닥에 라인을 그렸다"고 말했다. 놀이 공간이 없어 120만 원을 들여 마련한 농구장은 때로 농구장이자 축구장이 됐다고.


캄보디아의 시각장애 어르신에게 이어졌던 쌀 기부는 어르신의 별세로 마무리됐고, 몽골에서는 신혼부부와 거처가 없는 가정을 위해 게르를 지어주었다. 낡은 집을 새 집으로 짓는 건축 기부는 현재까지 여섯 채에 이르렀고, 우물과 펌프 설치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필리핀의 한 마을에서는 하나의 우물로 300여 명이 물을 사용하고 있다. 쓰레기로 몸살을 앓던 마을에 펌프 설치를 위한 기부를 요청했을 때, 하룻밤 사이 163만 원이 모였다는 일화는 공동체의 희망을 보여주었다. 현재까지 마을 사람들은 이전보다 조금 나아진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


태국의 아동양육시설에서는 미용 봉사를 이어가기 위해 관련 자격증도 직접 취득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자신감을 키우기 위해 만든 스포츠·캠글리쉬 프로그램은 특허로 이어졌다. 정 작가는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오는 게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한 사람에게 왔다"고 말했다. 단순한 봉사가 아닌 소외된 곳에서 아이들과 함께한 10년은 그의 삶을 단단히 다져 온 시간이었달까.


충남 당진시립중앙도서관에서 진행된 '1인 1책 쓰기 프로젝트' 에세이 글쓰기 3기의 연장선에서, 정선희 작가는 출간 이후에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고 다음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해외 봉사활동의 기록을 <유별난 영어쌤의 평범한 수업>으로 펴낸 정선희 작가는, 다음 책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정 작가의 글은 거창한 이야기보다 일상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시작된다.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함께 웃고, 같은 시간을 건너는 순간들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문장의 바탕이 되었다. 무엇보다 해외 봉사활동을 멈추지 않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으며, 늘 삶의 현장에 자신을 두어 왔다. 그렇게 쌓인 시간들이 단 하나뿐인 책을 펴냈고, 오늘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이어지고 있다고.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작은 책방에서 마주한 두 작가의 ‘사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