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2월이었다. 국내 헬기촬영의 대부로 불리는 MBC 김종길 전 국장님을 처음 만난 날은 잊을 수 없다. 내포보부상촌의 매표소 안내 전각에 걸린 시 '보부상 이야기'를 홍보하기 위해 찾아간 자리였다.
국장님은 나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로 다가왔다.
국장님을 처음 뵌 것은 지인을 통해서였다. 수덕사에 위치한 ‘산채비빔밥’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사모님은 따뜻한 미소로 맞아 주셨다. 이후 취재를 통해 여러 번 뵙게 되면서 점점 더 가깝게 지냈다.
암진단을 받고 수술 이후 3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2차 항암치료를 받고, 나는 체력과 식욕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국장님이 전화를 주셨다.
“김기자 님, 어떻게 지내세요? 요즘 많이 힘들지요? 밥은 잘 챙겨 먹고 있어요?”국장님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었다.
그 당시 치료 상황을 말씀드렸다. 힘든 항암치료와 그로 인한 불면증, 그리고 무엇보다도 잃어버린 식욕에 대해 말씀드렸다. 국장님은 잠시 말을 멈추시고 생각에 잠기시더니 이내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도 무조건 잘 먹어야 해요. 우리 집으로 와서 같이 식사합시다.”처음에는 망설였다. 너무 번거롭게 해 드리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고, 집으로 초대받는 것도 약간 부담스러웠다. 빈손으로 찾아뵙는다는 게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국장님의 진심 어린 제안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국장님의 집 앞에 도착하자 국장님과 사모님은 문을 열고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식탁 위에는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국장님이 직접 수확한 야채와 사모님이 맛있게 준비하신 정성 가득한 음식들이었다.
“이건 면역력에 좋다고 해서 우리 집사람이 신경 써서 준비했어요.”국장님께서는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챙겨주셨다. 식사를 하고 지나온 세월과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고 어떻게 극복하면서 살아가야 할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암 투병의 어려움, 앞으로의 계획, 그리고 희망에 대한 이야기들. 국장님의 따뜻한 배려와 관심 덕분에 마음 편하게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국장님의 격려와 응원 덕분에 조금씩 힘을 내기 시작했다. 국장님 집에서의 식사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나에게 큰 힘과 용기를 주는 순간이었다. 국장님의 응원에 힘입어 따뜻한 마음은 저의 투병 생활에 큰 힘이 되었다.
한 달 전, 김종길 전 국장님이 논산에서 영화 촬영을 시작하는데 취재 와줄 수 있겠냐고 연락을 받았다.
당연히 달려가겠다고 했지만, 약속한 날짜가 다가올수록 걱정이 앞섰다. 당진에서 논산까지, 왕복 4시간이다. 항암치료 이후 처음으로 장시간 운전을 하게 된 것이다.
촬영현장 논산은 39도가 웃도는 불볕더위였다.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흘렀다. <미스터 선샤인> 영화 세트장에서 충남영화인 총연합회가 제작하는 신파영화 <홍도야 우지 마라>의 촬영을 했다. 이 영화는 내일부터 6월 22일까지 4일간 대규모로 촬영할 예정이었고, 충남영화인 총연합회의 중요한 프로젝트로 평가받고 있었다.
TvN <작은아씨들>의 홍 부장 역할을 맡았던 조연진 배우가 주인공 홍도였다. 조연 배우들은 한복을 입고 더운 날씨에도 열정적으로 연기에 몰두했다. 분장을 맡은 담당자, 메이크업을 담당한 분들은 의상을 준비하면서 바느질 한 땀 한 땀 손수 준비하는 모습을 보았다. 고군분투 한 스태프들 덕분에 주연 배우들이 현장에서 열심히 촬영할 수 있었다.
점심식사 이후에 조감독님이 동네 나에게 주민 역할로 출연해 줄 수 있냐고 물었다. 현장 사진 촬영을 위해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대기 중인 배우들이 내게 다가왔다. 무더운 여름날씨에 촬영하는데 함께해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나를 처음 보았던 날을 기억하십니까?"라며, 연인의 드라마 명대사를 읊으셨다. 웃고 떠드는 사이에 작년 드라마 ‘연인’ 스냅사진 촬영 작가님을 만났다.
핸드폰에 스틸컷으로 직접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셨을 때, 꿈이 아닌가 싶었다.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연락처를 주고받으면서 “영화촬영 끝나고 나는 인터뷰를 요청했다.스냅사진 촬영 작가님은 해맑게 대답했다. “당연하죠. 꼭 봬요. 기자님.”
조연, 주연, 동네 주민 역할의 배우들은 호흡이 척척 맞았다. SBS촬영 감독님과 국장님은 세심하게 연출하며 완벽한 장면을 위해 노력했다. 중간중간 쉬는 시간 틈을 보고 있었다. 실내외를 오가며 촬영한 나는 여기저기로 뛰어다녔다. 촬영이 끝난 후, 잠시 김종길 감독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영화 <홍도야 우지 마라>는 대한민국 어르신들을 위해 특별히 준비된 작품으로, 과거의 감정을 극대화시키는 신파 연기를 선보인다. 최영준 감독과 함께하는 악극 무성영화로, 두 가지 버전으로 제작되어 한국만의 독특한 신파영화로서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소감을 말했다.
앤딩장면을 촬영하고는 모든 스태프진들과 주연배우, 카메라 감독님들, 조연배우들에게 인사드렸다. 이번 취재를 통해 김종길 전 국장님과의 인연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충남영화인 총연합회의 노력이 집약된 <홍도야 우지 마라>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기를 바랐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뜨거운 현장에서 5시간 동안 구슬땀을 흘리며 고생한 스태프들 한 명 한 명 담았던 사진을 편집해서 촬영감독님께 드렸다.
기사를 작성하고 오마이뉴스에 올려 ‘스타’로 채택되었다. 영화촬영 홍보에 큰 역할을 했다는 소식에 김종길 국장님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촬영을 마치고 마지막 모든 순간이 값지고 소중하게 느꼈던 시간들이었다. 온 힘을 다해 에너지를 쏟아냈으니까.
티저는 6월 마지막주에 모바일 중심으로 공개될 예정이다. 12월에는 국회의사당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한다. 이 날은 “그날은 김 기자가 꼭 함께해 줬으면 좋겠다”면서 국장님이 직접 연락해 주셨다.
이제는 드라마 볼 때마다 시선 밖에 있는 분들이 생각날 것 같다. 무거운 장비를 들고 빨갛게 얼굴이 익어가는 카메라 감독님들도 말이다. 현장에 있던 분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