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절대로 이길 수 없는 한 사람

그러나 이것은 게임이 아니다

by 스텔라정

절대로 내가 이길 수 없는 유일한 한 사람, 동생이다.

나의 사랑하는 하나뿐인 남동생.


나의 하나뿐인 남동생은 매일 자신만의 경계선을 걷고 있는 아주 특별한 동생이다.


어릴 적, 아주 한 순간 스쳐 지나갔던 짧은 생각이 신기하게도 지금까지 늘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나도 동생이랑 게임할 때 마음껏 이겨보고 싶다."


어릴 적부터 크면서까지 그 긴 시간동안 나는 단 한 번도 동생을 이길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기기 위해 애쓰지 못했다.


가위바위보를 하더라도 나는 늘 동생이 무엇을 낼지 이미 알고 있었기에, 내가 조금이라도 이겨보려고 애를 쓴다면 무조건 내가 이길 수밖에 없는 구도였기 때문에 단 한번도 즐겁게 이긴 적이 없었다.


양측이 평등하다는 전제 하에 이루어지는 것이 게임이라고 한다면 말 그대로 나와 내 동생 사이에는 그 어떤 게임조차 성립되지 않았기에, 웃으며 때로는 어설픈 연기를 하며 적당한 점수차를 내기도 하고 가끔은 일부러 온통 져서 동생의 기분을 좋게 해주기도 했다.


우습게도 그런 행동을 통해 나는 스스로 무척이나 뿌듯했었고 동생을 향한 나의 알 수 없는 죄책감마저 덜게 했다.


다시 생각하니 정말 슬픈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 당시에 정말이지 너무나 슬펐기 때문이다. 이기기 위해 애쓰지 못한다는 사실과, 즐거워야 할 게임이 머리를 써서 배려해야 하는 숙제 같았다는 사실이, 그리고 마음껏 나를 주장하지 못한다는 답답함과 이길 수 없도록 붙잡는 알 수 없는 죄책감까지, 모두 너무나 슬펐다. 형제자매와 머리채를 붙잡고 싸우는 친구들이 그 당시에는 부럽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물론, 둘 다 성인이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그를 이기지 못한다. 어릴 적 나의 기억에서만큼 세심하게 생각하고 배려하며 점수를 내주지는 못하지만 마치 몸이 익숙한 자세를 취하듯이 매우 자연스럽게 우리 사이의 초기값을 적당히 유지한다. 둘이 있을 때 서로에게 (그리고 부모님에게) 가장 안전하고 평화적인 값을 나는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그러나 오늘 다시 생각한다.


이것은 배려라는 가면을 쓴, 동생을 향한 나의 기만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를 향한 나의 진심은 과연 무엇인가. 나의 배려는 진심으로 그와 우리의 관계를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 정말로 동생을 위한 것이었을까? 당시에는 정말 진심이었어도,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우리에게 던져진 상호적인 초기값을 이제 와서 굳이 바꾸고 싶지는 않다. 굳이 애써 그를 이기고 싶은 마음도 없다. 다만, 나의 지나친 배려와 셈으로 인해 이 관계를 더 이상 이기고 지는 프레임으로 보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의 주어진 값도, 나 자신의 값도 각자의 그 자체로 인정하며 지금보다 조금 더 자유롭게 그와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과 눈을 갖는 것, 그것이 지금의 나의 가장 큰 숙제다.


너도 너의 세상에서 훨훨 날고, 나도 나의 세상에서 훨훨 나는 것. 이것은 아마도 나보다 훨씬 그 이전부터 엄마와 아빠가 더 바라왔던 것일지도.


너와 나 사이의 답은 언제나 그랬듯, 보이진 않지만 언젠가는 그것에 조금 더 가까워지겠지.


늘 미안하고 사랑해, 동생아.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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