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의 놀이가 밀당인 이유

그러나, 이 고도의 기술만이 정답일까

by 스텔라정

어린아이들과 수업을 할 때에나 나의 아이들과 함께 놀이활동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아이들과의 밀고 당기기 기술, 일명 밀당 기술은 아이들과의 놀이에서 너무너무 중요한 요소이다.


엄마(혹은 교사)가 주도적으로 강하게 끌고 놀이로 들어갔다가도 궁극에는 아이들이 놀이의 주도자가 되어야 하므로 적절한 타이밍에 발을 빼줘야 하는, 고도의 숨 막히는 노동과 같다.


물론, 소극적인 나의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일지도 모르겠다. 놀이가 유료이거나 시간제한이 있을 경우에는 더욱 해당된다.


이 고도의 밀당 기술이 없으면 결국 부모(혹은 교사)의 강력한 의지만이 담긴 결과물을 아이의 상장과 같이 기념하고 끝나버리는 식이 되어버리거나, 또는 반대의 경우에는 질서 없고 의미 없는 시간 때우기에 불과한 혼란의 시간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내가 운영하는 책놀이교실에서도 가장 무게를 두고 유의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학부모들로서는 직접 보지 못하는 놀이 과정보다는 아이가 자랑스럽게 들고 나오는 눈앞의 확실한 결과물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기에 이 균형을 맞추는 것은 교사로서 참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엄마(혹은 교사)가 아이들과 동일한 눈높이에서 함께 놀이를 즐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이것은 고도의 밀당 기술보다 대다수 엄마들과 교사들에게는 현실적으로 더 어려운 일이기에 우리는 계속 아이들과의 놀이를 육아법이라는 강력한 카테고리 안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나는 언제 아이들과 함께 놀았는가?
노는 아이의 옆에서 지켜보는 것, 혹은 노는 것을 가르쳐주거나 놀아주는 것 말고
나와 아이들 모두 자연스럽게 함께 땀 흘리며 놀았던 적이 언제인가?
최근에 그런 시간이 과연 있었는지?


무엇 하나 허투루 지나가고 싶지 않은 이 초자아 엄마의 과한 욕심이고 과한 단상일지도 모르겠다. 아,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매일 피곤한 건가.


육아라는 단어보다 놀이라는 단어에 더 머물고 싶다. 너희가 주체이고 나도 주체인, 그런 놀이의 순간에 늘 너희와 함께 큰 소리로 웃으며 떠들고 싶다.


2024년 4월

매거진의 이전글우린 언제나 다시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