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의 딸이 맞다

며느리 역할과 딸 역할의 차이란

by 스텔라정

지난 2월, 결혼기념일 11주년에 맞추어 시부모님이 시드니에서 10시간을 운전해 집에 놀러 오셨다.


지난 10년 동안 가까운 곳에 살 때에는 자주 뵈었어도 함께 하룻밤을 지내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결혼 후 처음으로 시부모님과 한 공간에서 삼일을 지내는데 생각보다 신경 쓸 일들이 많았다.


삼일 째가 되던 날, 이리저리 바쁘게 식탁을 차리는 나를 보며 유주가 말했다.


"엄마, 꼭 외할머니 같아."


유독 관찰력이 뛰어난 유주의 이 말은 나의 머리를 한 대 친 듯했다. 아, 나는 결국 터득한 것이다. 출가외인이 된 지 장장 11년 만에.


11년 동안 멀리 있는 친정을 방문할 때마다 종종 엄마로부터 백년손님처럼 VVIP 대접을 받았던 그 시간들이 이렇게 이외의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것인가.


딸 하나가 아니라 이제는 딸 식구 넷의 '단 몇 그램도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동동거리며 하루 종일 부엌에 서 있는 엄마의 모습이 얼마나 미안하고 불편했던지, 그래서 대충 먹자며 얼마나 툴툴거렸던지, 늘 휴가 때 친정에 갈 때마다 엄마의 밥 타령에 괜한 골이 나서 감정적으로 부딪히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심지어 지난번에는 매일 아침에 엄마가 차려준 아침식사 앞에서 공복 시간을 지켜야 한다며 단 한 끼도 제대로 먹지 않았는데. 뭐 그뿐인가, 불평과 잔소리 많은 내가 가기 전 엄마와 아빠는 꼭 사람을 불러 집안 대청소와 냉장고 청소를 한다고 했다. 친정에서 나는 늘 악명 높은 블랙컨슈머였던 것이다.


유주의 눈은 정확했다. 나는 내가 그토록 불편해하고 답답해했던 부엌에서의 엄마의 모습을 열심히 흉내 내고 있었다. 시부모님이 무엇 하나 불편하거나 입맛에 안 맞는 것이 없도록 식사 시간만 되면 몇 시간씩 이리저리 바쁘게 식사 준비를 하고 모두가 앉아서 식사를 할 때마저 계속 왔다 갔다 하며 부지런히 식탁과 부모님의 얼굴을 살폈다. 아,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어쩌면, 딸과 사위에게는 더 한 마음이지 않았을까?


아마도 나의 지난 결혼생활 11년 중 가장 부지런했던 삼일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순간순간 나의 엄마를 가장 많이 떠올렸던 삼일이기도 했다.


무엇이든 나도 모르게 보고 배운다. 그리고 그것은 생각보다 크고 무겁다.


내가 보고 배운 것, 다음에는 반드시 우리 엄마에게도 써먹어야지, 마음을 먹는다.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들이 엉키고 설켜서 씁쓸하게 다짐했던 이 생각을 과연 지킬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2025년 2월

매거진의 이전글반값세일을 해도 살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