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이주를 (또) 앞둔 자의 고백
쇼핑몰마다 온통 세일이다.
그러나, 살 수가 없다.
지금 당장 필요한 식료품이나 옷 등을 제외하고는 곧 있을 미국으로의 이주에 더 큰 짐이 되므로, 분통하고 애석하지만 살 수가 없다. 지나친 쇼핑은 곧 이주를 앞둔 우리에게는 무거운 짐이 될 뿐이므로.
쇼핑센터에 이목을 끄는 온갖 형형색색 ʼSaleʼ 싸인을 보며 지나갈 때마다 멈칫하여 아쉬움을 누르기가 참 쉽지가 않다. 미리 사두면 좋지 않을까, 이건 가벼워서 가져갈 수 있지 않을까, 아마도 이건 미국에는 없을 텐데, 등 유혹의 소리를 저버리는 게 참 쉽지가 않다.
우리는 지난 연말, 남편의 회사일로 인해 결혼 후 10년 간 살았던 시드니를 떠나 멜버른으로 이주를 하게 되었고 갑작스럽게 생활터전을 옮기며 적응을 해오던 와중, 이곳으로 이사 한 지 딱 1년이 되는 올해 말에 또 다른 큰 이주를 하게 되었다. 심지어 이번에는 저 멀고 먼 나라 미국으로.
작년에 시드니에서도 그랬지만,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익숙한 일상에서 우리는 또다시 여행자 신분이 되었고 지난 여행지가 우리의 새로운 일상이 될 예정이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생이 맞다.
돌아보면 지난 나의 삶은 11년 이상 한 곳에 거주한 적이 없다. 한국에서 독일, 다시 한국에서 미국, 그리고 호주, 그리고 이제는 또다시 미국으로. 그 울타리 안에서도 얼마나 잦은 지역 이동을 했는지도 셀 수가 없다.
늘 낯선 곳에 던져지는 순간을 겪으면서도 나의 적응력은 여전히 서툴다. 그럼에도 매번 터득해 나가는 것이 있다면, 여행의 짐을 가볍게 하는 법이랄까.
언제나 그랬듯, 모든 상황에는 보이지 않는 유익함이 존재한다. 그렇게 믿는 편이다. 현재 나의 여행자 신분으로서의 삶이 마치 작은 훈련과 같이 생각되기도 하니 짜릿한 도전감도 느껴지고 무엇보다 이런 세일 기간에는 예상치 못하게(?) 지출이 줄게 되니 마음은 도리어 두둑하다.
가진 것을 덜어내고, 떠날 짐을 챙기는 것, 무엇이 정말 더 중요한지 몇 번이고 곱씹어 생각하게 되는 것, 그래서 궁극에는 가장 중요한 아주 적은 것들만 소유하고자 하는 것. 이것은 마치 나의 전 인생의 가장 큰 숙제를 조금씩 미리 해나가는 기분이다.
떠나는 일이란, 커튼을 걷고 현재를 직시하게 하는 힘이 있다.
떠남을 결정하는 순간부터, 커튼에 엉켜 있던 일상이 걷히고 밝은 볕이 드러나는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분별할 수 있는 볕이 환하게 눈앞에 드러나니 낯설지만 매일이 더 명료해진다.
일상이 곧 여행이 되는 순간이다.
2025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