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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은성 Oct 10. 2020

"엄마 다녀왔습니다"

2020-08-12 (수) 14:49

"엄마 다녀왔습니다." 




어릴 때 집에 와서 제일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맞벌이 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언니와 나는 당연하게 알아서 밥을 차려먹고, 스스로 노는 법을 터득 했었다.


한번은 학교에서 녹색어머니 신청을 받았던 때 였다. 

우리 엄마는 동네에서 뿐만 아니라 미용 일을 17살부터 시작해서 내가 26살 때 가게를 처분하셨다.


당연히 녹색어머니를 할 수 없는 상황 이였는데 초등학교 4학년 이였던 나는 집에서 걸어서 학교까지 가는 길목 횡단보도에 많은 녹색어머니들과 인사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괜히 부러웠나보다. 


손을 번쩍 들었다. 엄마의 의사는 묻지 않고. 그렇게 곧장 집으로 가서 엄마한테 어렵게 말을 꺼냈다. 


엄마는 너무 황당해하시며 나에게 왜 그랬냐는 짜증섞인 말투로 뭐라고 했다. 

어린 마음에 왜 내가 손을 들었는지 왜 묻지 않을까하는 서운한 마음이 제일 컸었던 거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이 신청이 된 상황이라 엄마는 출근 하실 때 보다 더 일찍 일어나셔서 나갈 채비를 하셨다. 

녹색어머니를 할 때는 나보다 항상 먼저 나가셨다.


그리고 학교 가는 길목 제일 큰 횡단보도에 서 있는 엄마를 보면서, 매일을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횡단보도까지 뛰어 갔던 기억이 있다. 거기 서있던 엄마는 싱긋 웃으며 집에서 볼 수 없던 다정한 말투로 나에게 "학교 잘 다녀와~" 라고 말해주시곤 했다. 

그리고 집에 가게를 마치고 돌아오실 때에는 그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딱 그 횡단보도 위에서만 나에게 지어주는 표정이었다.


이 일을 엄마는 잊을 수 없다고 한다. 너무 황당해서, 또 너무 미안해서. 


30살이 된 나는 이제야 엄마의 텁텁한 삶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왜 나에게 짜증을 내었는지, 집에 돌아와서는 왜 웃을 수 없었는지.


지금도 나는 살갑지 않다. 아니, 우리가족은 살갑지 못하다. 표현 하나 따뜻하게 할 줄 모른다. 언니는 결혼하고 나서, 나는 30대가 되고 나서야 왜 우리 가족은 따뜻하지 못했을까에 대해서 답을 알 것 같다. 

사랑 많이 받고 자란 친구들을 보면 느껴지는게 있다. 나의 표현은 서투르고 따뜻한 말보다는 현실적인 조언, 

옆에 있어주는 것. 이런식의 표현방식 이지만 그들은 말 한마디라도 따뜻한 말을 할 줄 아는 친구들이다. 

그냥 내 마음에 있는 것을 그대로 말로 내뱉을 수 있는 사람들. 가끔 이 친구들과 가족들이 너무 부러울 때도 많았다. 왜 우리 가족은 따뜻하지 못할까 왜 이런식의 위로는 못해줄까 라는 비교도 많이 했었다.


우리가족은, 또 나는 많이 힘들었지, 라는 말보다 누구나 다 겪는 거야. 라고 말해 놓고 뒤에서는 그 누구보다 내 일 보다 더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도와줄 수 있을까 방법을 찾고 실질적으로 도움을 준다.


이제는 더 이상 비교하거나 원망 하지는 않기로 했다. 우리가족의 표현방식과 그들은 조금 다른 것 뿐이라고. 

그렇게 비교 했던 모습 조차도 지금의 나 이니까.

그리고 이제는 아니까. 부모님이 그렇게 각박하게 표현하지 못하며 살아왔던 이유가 우리 때문 이였다는 것을 이제는 알아서. 부모님의 모습도, 나의 모습도 이제는 이해 할 수 있다.


가게일 하면서 엄마는 음악 한번 듣지 않으셨다. 근데 요새는 방에 있다보면 밖에서 음악소리가 흘러 들어온다. 빨래를 널 때, 청소를 할 때

내 방에도 다 들릴 정도로 볼륨을 크게 틀어 놓고 듣는 엄마의 선곡은 ' 분홍 립스틱 - 강애리자(작은별) ' 

(사실 나는 광복절 특사에서 송윤아가 불러서 알게 된 곡인데, 원곡자는 따로 있었다.)


저 음악을 들으며 흥얼거리는 엄마가 나는 좋다. 고개를 까딱거리고 음악을 들으며 좋아하는 엄마의 모습이 너무 좋다. 내가 말을 시키면 피곤한 얼굴로 시큰둥하게 대답하는 엄마의 모습 말고, 지금의 엄마가 좋다. 그리고 나에게 먼저 말 시켜주는 엄마가 좋다. 


30대가 된 지금의 나는 음악을 좋아하고 말이 많아진 지금의 엄마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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