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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thewind Nov 17. 2022

연말이면 생각날 일기

다시 떠들썩해진 세상에서 혼자 고요히 보내는 축제의 날에

코로나의 습격 이후 처음 맞이한 연말인 2020년 12월 31일에 쓴 일기를 2022년 11월 생일에 다시 읽었다. 그 '다시 떠들썩해진 세상'이 지금의 모습인지는 모르겠다. 그 어떤 축제도 축제라고 부를 수 있을지마저 모르겠다. 올 생일은 적당히 좋은 날이었다. 어느 플랫폼에서 어떤 SNS를 하든, 혹은 하지 않든, 모두의 몸과 마음이 안녕하길. 



나뿐만 아니라 남들도 밖에 나가 놀지 못하는 연말이라는 것은 장점이 있었다. 그 어떤 장점을 느꼈다는 것도 자랑스러운 고백은 아니지만.


떠들썩한 시기는 주로 혼자 보내왔다. 그런 날이면 평소처럼 자유롭게 혼자 보내는 시간보다 더 만족스러운 옵션이 거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 내가 놀 줄 몰라서, 시끌벅적한 자리에 끼지 못해서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조바심이 마음 한 구석에 있었다. 올 해의 깨달음은 그거다. 남들도 모여서 놀고 있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없어지는 감정이었다는 것. 그 정도로 의미 없는 불안이었구나. 


다시 떠들썩해진 세상에서 혼자 고요히 보내는 축제의 날에, 오늘을 기억했으면 한다. 불안하거나, 조바심 나거나, 의구심이 든다면, 그거 너랑 아무 상관없는 감정이라고. 남들이 뭘 하고 있는지는 너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중요하지 않다고. 그래도 한 조각의 의심과 불안의 씨앗이 마음에 꺼지지 않는다면, 그건 네가 인간이라서 그런 거니까 그 이상으로 해석할 필요 없다고. 딱 그만큼의 자리만 내어주고, 마음의 나머지 공간에서 자유롭고 행복하라고. 


나는 걸을 때 골반을 꽉 붙잡고 걷는다. 고관절을 사용을 최소화하면서 반듯하고 흔들림 없이 씩씩하게 걸어 나가는 걸음새다. 앞으로 전진할 때 어금니를 꼭 깨문 사람처럼 힙 골반이 좌우 움직임 없이 거의 수평으로 이동한다. 십여 년 전 탱고를 만나면서 '고관절을 풀고 걸어라'라는 말을 처음 접했고, 가장 최근에 들었던 수업에서까지 계속 이 말을 들었다. 골반에 힘을 풀어주고 고관절 사이에 공기가 살랑살랑 통하는 것처럼 걸으면 희한하게도 런웨이 위 모델의 걸음걸이를  따라 하는 느낌이다. 우아한 사람이 된 기분. 아직도 기본 걸음걸이는 고관절을 쓰지 않지만 인식할 때마다 풀고 걸을 수 있다. 인식하면 푸는 건 쉬운데, 인식을 잘 안 한다. 이만큼 오는데도 십 년이 더 걸렸다. 


선을 추구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을 지향하는 것은 내 걸음걸이만큼 뿌리 깊은 강박으로 나를 지배했다. 그 강박은 내가 낯선 것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것을 방해하고, 불필요한 비판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게 한다. 나는 나의 선호와 취향을 최우선으로 존중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강박은 그보다 우위에 있다. 선을 추구하는 것이 나의 눈을 가린다.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게 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을 눈앞에 가져다 놓는다. 선은 추구보다 행동할 때 의미가 있는데 나는 생각이 너무 많다. 좋은 사람이 되고야 말겠다는 강박이 더 말랑해지고, 선을 향한 나의 지향을 모두가 알아주지 않아도 확성기를 들어 방송을 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지 않을 때, 그때 나의 마음의 걸음새가 조금 더 우아해질 것만 같다. 


담뿍 사랑을 받으며 울타리 안에서 자라다가 처음 살아보는 도시에서 낯선 대학에 던져진 스무 살, 내가 나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그래서 어떤 처신이 맞는 건지 전혀 알 수 없는 혼란의 시간을 지나, 내가 내 우주에서 둘도 없이 특별한만큼 세상 모든 이의 우주가 공존하는 이 세계에서 전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큰 짐을 내려놓은 것 같은 가뿐함을 느꼈다. 나는 딱 당신만큼 특별하다. 세상 모든 사람은 특별하고, 그래서 누구도 특별하지 않다. 얼마나 좋은가, 특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특별히 좋은 사람일 필요가 없다는 것은.


방어를 기본 태도로 삼을 필요 없는 가정에서 자란 덕분에 낯선 환경을 접했을 때 내 안으로 숨거나 내 바깥세상을 적으로 상정하지 않고 가장 자연스러운 나를 내보이는 방식으로 내 손에 무기가 없음을 알린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선을 지향함을 분명히 밝힌다. 이게 내가 아는 나의 태도였다. 조금만 방향을 수정하려고 한다. 내가 선을 지향하는 것을 남에게 알릴 필요는 없다. 남이 그걸 알 필요도 없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음을 상대가 알아줄 의무는 없다. 


여러 번 반복하는 걸 보니 여전히 집착하고 있고 강박을 다 내려놓지는 못했나 보다. 뭐, 내년에는 더 잘할 수 있겠지. 올해의 역량은 깨닫는데 다 쓴 모양이지. 괜찮다. 일기는 끝나지 않으니까. 다시 쓰고, 계속 쓰고, 더 쓸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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