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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thewind Jul 20. 2022

양말은 무죄

양말은 죄가 없었고, 저는 저에게 조금 더 다정해졌습니다.

처음엔 나는 발목에 양말 자국이 잘 남는 사람이려니 생각했다. 아니, 그걸 의식하기 전에는 별 생각이 없었던 게 먼저겠구나. 취미로 저녁 늦게 모임이 시작되는 춤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알게 되었다. 낮에는 주로 운동화에 바지를 입지만 그곳에 가면 9cm 힐과 무릎 위로 차르르 떨어지는 치마로 갈아입기 때문이다. 늘 내 발목엔 양말 자국이 또렷하게 남았고 밤이 깊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남들 발목에는 나 같은 자국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양말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내 양말들은 발목 부분이 너무 조이나 봐. 밴드가 넓고 조임이 덜 해 보이는 종류를 고르는데 신경과 비용을 써봤다. 별 소용없었다. 한참을 나는 양말 쇼핑에 서툰 사람인가 보다 생각했다. 큰 불만은 없었지만 제법 불편했다. 춤을 추러 가는 날이면 종일 양말의 목 부분을 자주 접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효과는 없지 않았지만 좀 억울했다. 아 왜. 내가 뭘 잘못했길래.


몇 달 전, 운동 유튜버의 동영상에서 우연히 부종에 관한 내용을 봤다. 내과 전문의 선생님 가라사대, 혀를 내밀었을 때 보이는 치흔과 발목의 양말 자국이 부종의 대표적인 증상이라는 거다. 당장 거울을 보고 혀를 내밀어보니 어쩜, 양쪽에 어금니 네 개의 치흔이 선명했다. 나는 라면을 먹고 자도 다음 날 아침에 얼굴이 붓지 않는데, 아침에 얼굴에 난 베개 자국은 금방 없어지는데 이게 무슨 소리요. 발은 좀 붓긴 하지만 그건 현대인이면 누구나 그런 줄 알았단 말입니다.


약간의 화를 가라앉히고 나니 맞는 말 같기도 했다. 발이 유난히 잘 붓는 건 맞지. 사이즈가 10mm까지 왔다 갔다 하니까. 그럼 양말은 잘못이 없었던 건가? 남들은 좋은 양말을 골라 신은 게 아니라 남들과 똑같은 양말을 신어도 내 발목에만 자국이 남았던 거냐고.


양말의 멱살을 잡고 흔든 적은 없지만 마음 한편에 미안함 비슷한 감정이 올라왔다. 내 발목인지 양말인지 그 조합인지 몰라도 대상이 뭐였든 원망 비슷한 걸 품었던 순간의 나에게. 야, 부종이었대, 부종 때문이래. 너 잘못한 거 없고, 양말도 그냥 평범한 거고, 부종이 있으면 양말 자국이 심하게 남고 잘 안 없어진대. 심장 쪽으로 손으로 쓸어주는 림프 마사지를 해주면 좋대.


이유를 알았다고 해서 양말 자국이 옅어지지는 않았다. 여름에는 발목까지 올라오지 않는 낮은 양말을, 겨울에는 거기에 발토시를 덧신는 꾀가 생긴 것이 더 실용적이었다. 하지만 이유가 뭔지 알았고 상태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추천받았다는 것은 실용성 이상의 위안이 되었다. 부종은 원인을 콕 집기 어려운 증상이라 그렇게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준 것이 아닌데도 그랬다.


아직도 가끔 발목까지 올라오는 양말을 신고 나왔다가 저녁에 춤을 추러 가서야 눈치챌 때가 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예전에는 누굴 미워해야 할지 모르겠는 복잡한 마음을 가라앉히기까지 한참 걸렸는데, 이제 슈즈를 갈아 신을 때 발등에서 무릎까지 부드럽게 쓸어주는 동작을 반복하며 다정하게 되뇐다는 것. 부종 때문이래. 부종일뿐이야.



※ 그 동영상은 김계란님의 이 동영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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