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보다는 의심이 신상에 이로운 내 주제를 잊으면 안 돼
계획 없이 당일에 숙소를 구할 땐 주로 게스트하우스를 찾았다. 혼자 잠만 자고 아침 일찍 떠날 때 본전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저렴하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호텔에 기대할 수 있는 욕실이 딸린 독실, 불편하지 않은 침대와 침구, 종류별로 구비된 수건, 생수 두 병 같은 기본적인 것조차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때의 선택이었다. 주인의 개성과 취향을 반영한 인테리어나 열린 마음을 가진 다른 여행객과의 만남 같은 걸 매력으로 느껴서는 아니다. 이런 것들이 장점이던 시대는 론리플래닛과 함께 수명을 다했다.
운전으로 세 시간쯤 걸리는 도시에 지방 출장을 가느라 해가 뜨기 전에 현관을 나선 날이었다. 첫 한 시간은 팟캐스트를 들으며 재미있게 달렸고, 두 번째 한 시간은 졸음을 쫓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썼다. 운전은 힘들지 않지만 졸음과의 싸움은 뭘 하든 특유의 피로감이 있는데, 운전과 졸음의 조합은 쉽게 목숨이 오가는 게임이 되기 때문에 많은 에너지를 할애해서라도 온 힘을 다해 정신을 곤두세워야 한다. 물론 언제 어디서든 안 할 수 있으면 제일 좋은 게 졸음과의 싸움이다.
일정은 해가 지기 전에 끝났다. 바로 서울로 돌아가는 길을 네비로 찍어보니 퇴근길 교통을 헤치고 운전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침의 피로를 생각만해도 피곤해지는데 시간은 배로 더 들 수도 있는 상황. 배도 고팠고 이 도시에서 유명하다는 음식도 찾아놓은 상태였다. 빨리 포기하고 맛있는 저녁을 먹고 적당한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일찍 자고 다음 날 새벽에 올라가기로 했다.
이렇게 게스트하우스가 귀한 동네는 처음이었다. 아니 우리나라 어딜 가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단 한 곳 뿐이었다. 리뷰를 몇 개 찾아 읽고 전화를 해서 이용 가능 여부를 확인했다. 평일이라 다른 손님이 아무도 없으니 편하게 오라는 남자 사장님의 목소리가 친절하기도 하고 다른 옵션이 없어서 이곳에서 묵기로 했다.
도착해서 안내를 받으며 시설을 둘러보는데 게스트하우스가 가질 수 있는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갖춘 곳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천장이 높은 복층 구조였는데 아래층에 거실, 주방, 욕실, 화장실, 방 몇 개가 있었고, 복층으로 연결된 계단을 올라가면 주문제작해 짜넣은 듯한 이층침대가 여러 세트 있었다. 올라가는 계단이나 이층침대가 있는 복층 공간은 문이나 벽으로 분리되지 않은 베란다 형태였다. 대학생들이 엠티를 온다면 거실에서 술먹는 사람들의 시끌벅쩍함이 복층에서 잠을 청하는 사람들에게 그대로 보이고 들릴 탁 트인 구조.
잠만 자고 가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하고, 저녁을 먹으러 나가면서 현관문을 어떻게 잠그는지 여쭤봤다. 사장님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문을 잠글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문고리를 개조해서 안에서 잠그더라도 밖에서 손잡이 바깥쪽을 돌리면 열리도록 했다고 자랑(?)하셨다. 안쪽에서 잠그면 문을 열 수 없는 보조장치를 가리키며 이건 잠가도 되냐고 물었더니 그럼 큰일나지, 내가 못 들어오는데, 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게 무슨 말인가. 못 들어오셔야지요. 손님이 저 하나면 잘 때 그게 누구든 들어올 수 없는 상태로 문단속을 해야하지 않을까요, 라고 속으로만 외쳤다. 그러다 깨달았다. 아, 아까 주방 근처에 출입금지라고 하신 방이 있었지. 방문에 이름표가 걸려있었어. '주방장'이었던가 '주인방'이었던가. 엇, 설마 사장님도 이 공간에서 주무시는 건가? 아, 아까 주방 살림이랑 냉장고가 누가 사는 집 같았는데 여기 그냥 사장님 집이야? 부부도 아니고 남자 사장님 혼자 사는 집?
머릿속 퍼즐이 맞춰지면서 내 표정은 점점 어두워지는데 사장님이 한 마디 덧붙이셨다. 그리고 여기 카메라 많이 달아놨어. 문단속 걱정은 안해도 돼. 음. 원래도 씻을 생각은 없었는데. 계획한 외박이 아니라서 옷을 갈아입을 일도 없을거구요. 어쨌든 잘 알았습니다. 네.
주인아저씨는 분명히 좋은 분인 것 같았다. 리뷰도 아저씨의 인심과 따뜻함에 대한 언급이 주를 이뤘고, 실제 만났을 때 느낌도 괜찮았다. 그저 나는 게스트하우스에 오면서 한 지붕 아래, 내가 잠금장치를 제어할 수 없는 공간에서 중년 남성과 나 둘만 자게 될 줄 몰랐을 뿐이다.
십 년 전 호주에서 일년 동안 이런저런 게스트하우스를 표류할 때 많은 사람을 만났고, 직감에 의존하며 처음 만난 사람들과 우정과 신뢰를 쌓았고, 다행히 큰 곤경에 처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운이 좋았던 건지 지금은 안다. 그리고 그 때와 같은 운을 더이상 기대하지 않는다. 언제나 최악을 상상하고 대비한다. 여긴 한국이고, 나는 홀로 집을 떠나 연고 없는 도시에 남게 된 법적 파트너 없는 가임기 여성이다. 신뢰보다는 의심이 신상에 이로운 성별과 연령이라는 내 상황을, 내 주제를 잊으면 안 된다.
저녁을 든든하게 먹고 숙소로 돌아와 뜨뜻한 거실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가 잠시 손베개를 하고 얼굴을 묻었다. 피곤했지만 자정 전에 처리해야하는 일도 있었고 잠들 수 있을 정도로 긴장이 풀리지 않아서 그냥 눈을 감고 잠시 엎드려 있었다. 오 분 남짓 지났을까, 현관문이 열리고 사장님이 들어오셨다. 나는 졸다 깬 척을 했다. 사장님은 대추를 내어주시면서 출장왔나봐요, 라고 말을 걸어오셨다.
내 개인정보를 공유할 생각이 별로 없었던지라 네네 대충 대답하고 '원래 쉬려고 했는데 급하게 처리해야하는 일이 생겼네요', 라고 선수를 쳤다. 미리 찾아본 후기에는 사장님이 별채 작업장에서 이런 저런 술과 차를 내어 주셔서 기억에 남고 좋았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처음부터 관심 밖이었다. 나는 사장님의 해박한 술 지식도, 마음을 적시는 따뜻한 말 한마디도, 유용한 인생 조언도, 그 어떤 진심어린 선의도 원하지 않았다. 내가 원한 건 등을 펴고 누울 수 있는 이만삼천원짜리 잠자리 뿐이다. 일을 해야한다며 노트북을 펼치는 나의 눈치를 살피시던 사장님은 커피 생각나면 내려와요, 라는 말씀을 남기고 내가 잠그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현관문을 열고 나가셨다.
호주에서 만난 친구 중에는 당시 내 나이 두 배를 넘는 중년 남성도 몇 있었다. 그 때의 나는 우정에는 국경이나 나이 같은 경계가 없다고 믿었고, 그 덕분에 너덧 명의 친구를 더 얻었다. 지금의 나는 우정이든 삶의 공감대든 맛있는 음식이든 그게 뭐든 좋은 걸 굳이 처음 보는 중년 남성과 나눌 이유는 거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신이 이 사람과는 좋은 우정을 보장해준대도 거절하겠다. 좋은 중년 남성은 딸뻘 조카뻘 여성과 우정을 쌓을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자기보다 나이가 훨씬 어린 여성과의 우정에 마음을 활짝 열어둔 중년 남성은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논리가 이상하다고? 맞다. 중년 남성과 젊은 여성의 우정은 없을 수록 세상이 아름답다는 결론을 위해 짜맞춘 나의 궤변이다. 나의 선택에만 영향을 미치는 내 삶의 정책이니 내 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좋은 중년 남성 친구를 여럿 만난 것이 사실인데, 그들마저도 없었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삶이 마냥 반짝거리는 것으로만 보이던 스물 다섯의 천둥벌거숭이는 특유의 해맑음으로 많은 애매한 신호를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선의로 해석할 수 있었다. 그 '좋은 사람'들의 많은 호의 중 '애매한 신호'를 몇 년 후에야 알아채고 입이 썼던 기억이 몇 번이더라. 그 친구들에게 그 때 그 말, 그 행동, 사과받고 싶다고 말할 용기를 낸 적은 있던가. 그런 요구는 어떤 용기를 필요로 하나. 아니, 왜 용기까지 필요할 일인가.
여기가 아랫목인가 싶던 뜨끈한 바닥에 앉아 급한 일을 처리하고 나니 할 일이 없었다. 읽을 책을 챙겨오기는 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좀 쉬어서 그런가 지금이라면 서울까지 운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걱정되는 건 눈의 피로였다. 얼마전에 산 일회용 눈 온열마사지기를 차에 두고 다녀야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내일 최대한 일찍 출발하기 위해 일찍 자기로 했다. 아홉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맞춤 제작이라 그런지 일반 이층침대보다 훨씬 안정적인 침대 아래층에 누워 애인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일이 늦게 끝나는 사람이라 통화를 하려면 두 시간은 더 기다려야했다. 목소리 듣고 싶었는데 나 그냥 먼저 잘게요, 게스트하우스가 이러이러해서 내가 마음이 조금 불안하니까 이름이랑 주소 보내둘게요. 그리고 잠을 청했다. 뒤척이긴 했지만 설핏 잠이 들었는데 열한 시가 조금 안 된 시간즈음 전화벨이 울렸다. 클라이언트였다. 저 누군지 기억나세요?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아주 급한 작업이 있는데 내일까지 가능하실까요?
비몽사몽간에 통화를 마치고 나니 애인이 일을 마칠 시간이 머지 않았기래 메세지를 보냈다. 나 다른 사람이 전화해서 깨버렸어요. 당신 목소리 듣고 잘래요. 일 마치면 전화주세요.
잠시 후 전화가 왔다. 놀라지 마요, 라며 말을 시작한 애인은 고속버스표를 예매했고 지금 터미널로 가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용수철처럼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아니야 그거 아니야. 이런식으로 반응하면 부담스럽고 불편해서 앞으로 이런 경우에 솔직하게 얘기 못해요. 나는 일정 관리하는데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 생기면 힘들어하는 사람이고 이런 거 불편해요. 내가 신변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무서웠으면 숙소를 옮기거나 그냥 운전해서 서울로 갔겠죠. 안 그러니까 그냥 있기로 한 거구요. 나 갇혀있는 거 아니야. 오지 말아줘요.
사귀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고맙게 호의를 받아들이고 나중에 에피소드로 기억하기 좋은 다정한 호들갑이었는데, 왜 그렇게 나약한 이미지를 주는 게 싫었는지 모르겠다. 애인은 표를 취소했다. 고맙고 사랑스럽지만 불편한 건 불편한 건데 내 설명을 이해해준 게 달려온다고 한 것만큼 고마웠다. 아침에 출발하면서 문자 보내고 도착해서 통화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문제는 다음부터였다. 아홉시부터 열한시까지 선잠을 잤더니 불을 끄고 누워도 영 잠이 오지 않았다. 열두 시 전에 현관문이 열리고 사장님이 까치발로 조심조심 자기 방으로 가시는 기척이 들렸다. 방문 닫는 소리가 났고 그 후로 문이 열리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그 후로 한동안 말똥말똥 깨어있었기 때문에 안다. 이층으로 올라오는 계단이 나무라 걸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니까 귀를 쫑긋 세우고 있으면 괜찮을 거라고 나를 달랬지만 마음의 불안을 달래는데는 별 소용이 없었다. 그냥 그렇게 온 몸의 신경을 귀에 쏟고 자는 것도 아니고 깨있는 것도 아닌 상태로 누워있었다.
평소 꿈도 잘 꾸지 않고 가위에도 잘 눌리지 않는데, 이 날 밤에는 적어도 세 번 가위에 눌렸다. 한 번은 내가 양 팔을 위로 올리고 자고 있는데 손가락이 두꺼운 중년 남성이 양 팔죽지를 강하게 잡아 고정시켜서 못 움직이게 하는 가위였고, 두 번째는 팔을 내리고 자는 상태에서 비슷하게 움직임에 제약이 느껴졌고, 세 번째는 두꺼운 손가락이 내 목을 졸랐던 것 같다.
내 공포의 실체와 가장 가까운 범죄는 아마 강도나 살인보다 강간이었을 거다. 저 세 번의 악몽 혹은 가위눌림은 다행히 더 악화되거나 현실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가위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가 흥미로웠다. 나는 내가 이런 가위에 눌릴 가능성이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고, 그 가능성이 실제로 사장님이 나를 공격할 가능성보다 높다고 생각했나 보다. 가위에 눌려서 고개와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와중에도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서 지금 내 주변에 다른 사람이 있는지 확인했다. 다른 사람의 존재가 없다는 확신이 들면 이건 현실이 아니라는 안도감이 생겼다. 그리고나서 마치 자각몽을 꾸고 있는 사람처럼 침착하게 그 악몽같은 시간을 통과했다. 세 번. 매 번 공포의 절대량은 줄지 않았지만 이게 가위라는 걸 깨닫는 시간은 점점 짧아졌다.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공포에 질려있었고, 그 공포가 (아직)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장님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꼈다. 남자친구가 나와 상의 없이 표부터 끊었다는 것에 고마움보다 피로감이 앞섰고, 내 선택에 책임을 지는 모습만은 절대 양보할 수 없었다. 판단 착오, 혼란, 욕심, 두려움이 뒤섞인 무거운 감정 덩어리가 이미 위태롭게 누워있는 나를 사정없이 짓눌렀다.
새벽 6시 쯤, 날이 다 밝기도 전에 눈꼽만 떼고 현관을 나섰다. 사장님과 마주치지도, 인사를 하지도, 메모를 남기지도 않았다. 차에 도착해서 시동도 걸기 전에 문을 잠근 후에 긴 한숨을 여러 번 내쉬었다. 내가 지금 탈출한 건 공포였고, 악몽이었고, 그리고, 결과적으로 안전한 숙박시설이었다.
집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위에서 평소 즐겨 듣는 범죄 팟캐스트를 들으며 안도감과 죄책감 사이에서 기우뚱거렸다. 다양한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탈출한 지금, 왜 그 중에서도 하필 죄책감이 떨쳐지지 않는가. 불쾌감을 표현하지도 않았고, 나쁜 리뷰를 남길 것도 아니었다. 뭐가, 왜, 누구에게 죄송한가?
다시 갈 일은 없겠지만, 지금 생각해도 사장님은 젊은이들과의 소통 기회를 즐기는 인간미 넘치는 선한 분이셨던 것 같다. 흘러간 사람이 된 당시의 남자친구도 좋은 사람이었고. 잘못한 사람은 없는데 나만 호된 악몽을 꾼, 딱 그 정도의 난감한 출장 기억이라고 이름 붙일 수밖에 없는 날. 아, 교훈이 하나 남기는 했다. 인간미가 있고 내 방 열쇠가 없는 게스트하우스는 이제 안녕. 영영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