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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da music studio Aug 20. 2024

이루마는 클래식인가

시장 위 옅어지는 순혈주의의 의미



  한국 클래식 음악 시장이 점점 커져감에 따라 클래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 또한 늘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은 클래식과 비 클래식 장르 사이 회색지대에도 향하며, 오히려 ‘세미클래식’이라 불리는 더 대중성 있는 이 음악들이야말로 오늘날 사람들이 떠올리는 클래식의 얼굴이기도 하다.

  이루마, 히사이시 조, 사카모토 류이치… 이들을 둘러싼 장르 논쟁의 의미는 무엇인가.



클래식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클래식 음악이란 간단하게는 서양 고전 예술 음악이다. 서양에서 창작된 고전적 스타일의 예술 음악.

이는 가장 핵심적이면서 압축적인 정의이다. 그러나 완전한 정의라 하긴 어렵다. 동양인이 클래식을 작곡하면 그것은 클래식이 아닌가. 혹은 현대의 스타일대로 클래식을 작곡하면 클래식이 아닌가. 둘 다 클래식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보다 종합적인 시각이 추가되어야 한다. 클래식 음악의 음악적 스타일과 중세-르네상스-바로크-고전주의-낭만주의… 이름을 들으면 어쩌면 머리가 아파질, 클래식 음악의 흐름들을 계승하는 음악이라면 클래식으로 분류되기에 적합하다.


ⓒGramophone


어디까지 클래식일까


  그러나 클래식과 클래식 외 장르 사이에는 회색지대도 있다. 이들은 대중들에게는 클래식으로 인식되면서도, 클래식인지 아닌지 의견이 분분하다.

  이를테면 이루마는 어떠한가. 그는 ‘River flows in you’, ‘Kiss the rain’ 등 수많은 유명곡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다. 그의 곡들은 클래식인가. 이 질문은 그의 음악적 스타일은 얼마나 서양 고전 음악의 연장선상에 있는가, 라는 질문과 같다.


Yiruma - River Flows in You

들어보기: Yiruma - River Flows in You


  우선 그는 클래식 악기를 사용한 듣기 편한 연주곡을 선보인다. 이에 그의 연주회는 클래식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CD 매장이나 스트리밍 사이트의 레이블 상에서도 클래식으로 분류되곤 한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음악 잡지, 빌보드의 견해도 클래식이라고 보는 듯하다. 수년 전 이루마의 10주년 앨범은 빌보드 클래시컬 앨범 부문 차트에서 23주 동안 1위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어내기도 했다.


이루마의 빌보드 클래시컬 앨범 부문 1위 4주 차 모습 ⓒYiruma


  이루마뿐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이라고 하면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을 떠올리지만 동시에 히사이시 조의 인생의 회전목마, 막심 므라비차의 크로아티안 랩소디 등을 거론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실 이런 질문 자체가 생소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이루마, 당연히 클래식 아닌가. 피아노로 잔잔한 곡 연주하지 않나. 그런데도 클래식이 아닐 게 있나, 하고.


Maksim Mrvica - Croatian Rhapsody

들어보기: Maksim Mrvica - Croatian Rhapsody


  그러나 보다 엄중한 관점에서는 이들 음악이 기존 클래식의 스타일과 많은 부분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클래식 애호가들의 입장에서는 특히 그렇다. 만약 임윤찬 피아노 리사이틀에서 그가 이루마의 ‘River Flows in You’를 연주한다면 어떨까. 관객의 반응이 반드시 좋으리라 생각하기 어렵다. 그 연주를 감상하러 온 관객들 대부분의 수요는 이루마의 곡과는 맞물리지 않을 것이다.

  이에 이러한 소위 ‘세미클래식’ 음악가들을 클래식과 완전하게 구별해 취급하고자 하는 이들도 존재하며, 이들을 클래식이라 할 수 있는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일어나기도 한다.



청자를 반영하는 장르가 생존한다


  다만 이러한 고민은 비단 클래식만의 것이 아니다. 한때 시대를 주름잡은 후 현재는 주류의 자리를 내어준 장르라면 모두 이러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

  페스티벌이 대표적이다. 근래 몇 년 동안 국내 대형 재즈 페스티벌이나 록 페스티벌에서는 라인업을 두고 참가자들의 갑론을박이 끊인 적이 드물었다. 일반적으로 재즈 아티스트나 록 밴드로 분류되지 않던 뮤지션들이 점점 무대에 올라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024 서울 재즈 페스티벌 라인업. 폴킴, 이영지 등 비 재즈 아티스트가 다수 포함되었다. ⓒSeoul Jazz Festival


  더 이상 이전 세기 주류 장르의 음악가들만으론 대중을 끌어모을 페스티벌 라인업을 마련하기 어렵다. 게다가 주류 장르는 시대에 따라 바뀌지만 그들의 유산은 계승된다. 재즈나 락과 같은 거대 장르의 특성은 팝, 힙합 등의 이후 장르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이 장르들의 음악가들을 페스티벌에 세움으로써 그들 페스티벌의 정체성을 조금 더 대중화되고 확장된 모습으로 재정의했다.

  이러한 사례는 같은 음악이라도 청취자들이 변화하면 새 환경을 반영한 새 정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물론 시대 흐름에만 편승해서 기회주의적인 재정의를 거듭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인기 장르를 상습적으로 편입시키는 것 또한 본래 장르의 정체성과 진정성을 빈 껍데기로 만드는 꼴이다. 그러나 수백 년 전 정의만을 그대로 유지하며 답습할 필요도 없다. 그 사이 적절한 균형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시대에 공명하는 ‘클래식’의 의미


  19세기 유럽에서 클래식 음악(Classical music)은 주로 고전주의 음악만을 가리켰다. 당시에 화려하고 이야기를 중시하는 낭만주의 시대를 살고 있던 그들에게는 음악 자체의 형식미를 강조하는 고전주의와 바로크 시대의 옛 음악들이 고전, 즉 클래식이었던 것이다.


고전주의 음악을 꽃피웠던 대표적 음악가 중 하나인 하이든의 초상화 ⓒWikipedia


  그러나 현대에서 클래식 음악은 훨씬 범위가 확장되어 바로크, 고전주의와 더불어 낭만주의, 인상주의 등 수많은 음악적 스타일들을 모두 포함한다. 이는 클래식이라는 명칭이 처음부터 고정된 실체를 가지지 않았으며, 시대 흐름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형되어 왔던 개념임을 시사한다. 그리고 그 장르 확장의 필요성을 이끌어낸 것은 음악의 소비주체인 청자들이었다.

  클래식 음악의 장르 확장은 클래식의 음향을 사랑하면서도 쉬운 음악을 열망했던 많은 음악 소비자들과 그들로 인한 산업적 필요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방대한 사람들이 방대한 장르를 접하는 음악 시장 속, 그저 같은 하나의 톱니바퀴로서 기능하는 클래식이 이를 전면적으로 거부할 명분을 지니는가.

  세미클래식 류 작품들은 분명 전통적이고 좁은 의미의 클래식과는 퍽 다르게 기능하는 음악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는 클래식과 많은 가치를 공유하는 그 음악들을 클래식의 확장으로 분류하는 데에 거리낌을 느끼는 이들이 많지 않다. 최소한 현대 청자들이 받아들이는 클래식은, 이들 음악 없이 존재하기 어려운 시대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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