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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수 있는 게, 이 노래밖에 없다(1)

헌정곡 Part.1 - 브람스와 슈만, 슈만

by corda music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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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고픈 아티스트들에게 있어서 자신의 영혼의 일부와도 같은 작품을 공유한다는 것은 단연 최상급의 애정표현이 아닐 수 없다. 문학이나 미술의 경우라면, 책의 시작머리에 메시지를 남긴다거나 직접 작품을 손에 들려준다거나…혹은 이러한 직접적인 방법 외에도 대상을 상징하는 요소를 삽입하는 방법도 있겠다.

그런데... 무형의 예술 음악을 다루는 작곡가들은 뭐, 어떻게 성악가라도 무대에 세워 곡이 연주되는 동안 편지를 낭독하지 않는 이상에서야 어떻게 음악으로 마음을 전달한담?



1. 오직 세레나데만이 사랑을 노래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브람스: Intermezzo, Op.118, N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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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hms - Intermezzo, Op.118, No.2


Intermezzo, 간주곡이라는 뜻이다.

호불호가 갈리기 힘든 차분하고 담백한 음악성에, 전공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없는 뛰어난 지적 면모까지 부족함 없이 갖춘 소위 '눈물줄줄송'(콜다, 그라운트와 사용하는 일종의 전문용어이다) 중 하나이다. 아마 그 어떤 브람스 애호가에게 물어본다고 해도 넉넉잡아 한 손 안에는 반드시 꼽히는 곡이 될 것이라 장담한다. 제목부터 언뜻 연정(戀情)과는 전혀 관련이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브람스의 순애사(?)를 알게 된다면 이보다 더 지독하디 지독한 사랑이 따로 없다. 아, 본격적으로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전에, 브람스는 평생 독신이었다.

. . .

클라라 슈만(Clara Josephine Schumann), 독일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이다. 또한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과 부부 사이임도 잘 알려져 있다. 로베르트 슈만은 브람스의 스승이다.

그리고... 브람스의 인생은 클라라에 대한 헌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뭐뭣, 그게 대체 무슨 소리니? 스승의 부인을 사랑한 14살 연하 순정남이라니!


아침 드라마의 수위를 넘어 심오하고 암울한 예술영화쯤은 되어야 등장할 만한 아찔한 관계성이다. 실제로 2014년 JTBC에서 고작 두 달 동안의 방영만으로도 큰 화제가 되었던 TV 드라마 '밀회'에서 등장인물 간의 금단의 사랑을 은유하는 데에 사용되기도 했다. 물론 안심하시라... 브람스는 그래도 선을 지킬 줄 아는 신사였다... 당시의 사회상으로서는... 아마도? 그들의 첫 만남은 로베르트 슈만이 신인 작곡가 브람스를 발굴해 내며 시작되었다.

브람스, 천재가 방문했다.


로베르트 슈만이 처음 브람스의 곡(피아노 소나타 1번)을 듣고 그날 밤 일기에 쓴 문장이다. 브람스는 슈만의 팬이었으며, 끊임없는 덕질 끝에 성덕이 되어 슈만을 소개받게 되고 그에게 음악성을 인정받아 제자가 된다. 당시 브람스의 나이는 21세, 슈만의 나이는 44세였으니, 브람스 같은 '햇병아리'가 잘 나가는 업계 대선배에게 천재라는 표현을 들었으면 말 다 했다. 사건의 발단이 바로 그것이었다. 사랑꾼 슈만이 그의 부인 클라라에게 이 젊은 천재의 음악을 들려주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그렇게 35세의 클라라까지 셋의 활발한 교류(...)가 시작되었다.



슈만: Myrthen 中 No.1, <Midmung, 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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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umann - Myrthen, No.1 Midmung


슈만의 결혼식 전날, 슈만이 클라라 비크(Clara Wieck)에게 선물한 26곡 중 첫 번째 곡인 가곡 '헌정'이다. 가사의 내용을 살펴보자면 마치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커플의 편지 내용 같아 보이지만, 실은 7년이나 열애를 한 후의 시점이다.


Du meine Seele, du mein Herz,
Du meine Wonne, du mein Schmerz,
Du meine Welt, in der ich lebe

당신은 나의 영혼, 나의 심장,
당신은 나의 기쁨, 나의 고통,
당신은 나의 세계, 그 안에서 나는 산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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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일찍부터 나는 새로운 악보를 썼습니다. 나는 너무 기뻐서 울고 웃으며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클라라 당신을 위해 노래를 쓴다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 <Midmung>의 가사와 클라라에게 쓴 편지의 일부 -


사실 슈만 부부의 첫 만남도 범상치만은 않은 편이었다. 애인들에게 헌정곡을 남발하고 다니기로 유명하던 25세의 슈만이 어느 날 그의 스승 비크의 피아노 영재 딸, 14세의 클라라를 보고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은 조금 충격적이지만, 심지어 클라라의 마음을 얻어내는 데에 성공했다는 것은 조금 더 충격적이지만, 오히려 슈만과 야반도주를 시도한다거나 슈만과 만나는 상대들을 질투하는 등의 클라라의 행보는 더더욱 충격적이지만, 아무튼 딸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온갖 이유로 고소해 대는 스승 비크를 법조인으로서의 경험을 살려 온갖 법정 공방을 벌이면서까지 클라라가 성인이 되는 생일의 하루 전날까지 기다려 결혼을 성사시키고 결국 8명의 아이를 가지며 평생을 함께 했으니 그들의 사랑은 결국 스승이자, 장인어른이자, 고소인인 비크에게까지 인정받은 실로 뜨거운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런 부부사이에 끼어들 결심을 한 브람스의 마음가짐은 도대체 어떤 종류의 것이란 말인가?


브람스는 클라라에게 직설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면서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법이 없었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교류가 시작된 지 5개월 만에 우울증과 환각에 시달리고 있었던 슈만의 자살미수사건을 시작으로 그의 병세는 매우 심각해졌고, 막내를 임신한 몸으로 가족을 부양하게 된 클라라는 연주와 레슨을 병행하며 생계를 이어나가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이라면 클라라는 당대 여성으로서 상당한 지위를 가진 음악가였다는 것이지만 역시 여섯 명의 자식(둘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을 돌보며 슈만의 병원비까지 감당하기는 어려웠다. 마침 브람스는 작곡만으로도 수입이 보장되는 몇 안 되는 인기 작곡가였고(아! 너무 부럽다!), 물심양면으로 클라라와 아이들을 보살펴주기 시작했다. 결국 7년을 기다려 시작된 슈만 부부의 결혼생활은 로베르트 슈만의 죽음으로 인해 16년 만에 끝이 났다. 브람스는 클라라가 슈만을 만나러 병원에 가던 마지막 날에도 함께해 주었는데, 슈만은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Ich Weiß(알고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슈만의 죽음 이후 클라라는 브람스를 포함한 그 누구의 마음을 받아줄 수 없었고, 여생을 '클라라 슈만'으로 살기를 선택했다. 브람스 또한 40년간 그녀의 곁을 지키며 슈만에 대한 예의를 지켰다. 다만, 클라라는 이후 여러 무대에서 슈만과 브람스의 곡을 함께 연주했으며, 72세의 고별무대에서는 브람스의 곡(하이든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 들어보기, two piano ver.)을 연주하기도 했다. 또, 자식들에게 남기는 그녀의 유서에서 또한 브람스에 대한 언급이 담겨있다.


“얘들아, 내가 사랑한 것은 그의 젊음이 아니었다.
내 애정에는 허영도 아부도 없어.
그의 맑은 정신, 놀라운 재주, 고귀한 영혼을 사랑했지.
나는 그의 자질을 오랜 세월을 두고 아꼈다.
얘들아, 내가 죽더라도 그의 우정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늘 소중히 하렴.”


클라라의 고별무대 이후 63세의 브람스는 77세의 클라라에게 Intermezzo Op.118, No.2를 연주해 달라고 부탁했고, 클라라는 그것을 몇 차례 거절했지만 끝내 연주해 주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브람스는 뇌일혈로 일순간 다가온 클라라의 마지막 순간에 그녀의 곁을 지키지 못했다. 부고를 들은 브람스는 기차를 잘못 타 36시간 만에야 슈만의 묘지 옆에 묻히려는 클라라의 관을 볼 수 있었다. 브람스는 이에 "가장 아름다운 경험, 가장 아름다운 가치, 가장 고귀한 의미를 잃었다"라고 말했고, 다음 해에 세상을 떠났다.


Brahms - Intermezzo, Op.118, No.2, 전곡 듣기




+ 브람스의 클라라 사랑


1. 주변의 타박 때문인지 한 번은 명문가의 규슈와 약혼에도 성공했다가도 곧 돌연 파혼을 선언하고 다시 클라라에게 돌아왔다.

2.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클라라에게 잠시 눈을 돌려 클라라의 딸과(!!!) 잠시 사랑에 빠지는 듯 하지만 머리가 아파지니 그냥... 없던 일로 치자. 실제로도 잠깐의 해프닝 정도로 지나간 일이다.

3. 9살 연상의 남편을 둔 클라라를 사랑하는 14살 연하남 브람스는 늘 수염을 길게 기르고 다녔다.

흠... 귀엽군요

4. 브람스는... 잘생겼다.

20대 중반의 브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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