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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열 큐레이션] 베토벤이 듣고 싶었던 것은

#01 - 베토벤 Part.2

by corda music studio



교향곡과 실내악 작품들과 함께 살펴보는 베토벤 후기.

베토벤 교향곡 5번에 ‘운명’이라는 이름을 누가 붙였을까?
교향곡 9번이 초연되던 날 지진이 일어났다?


베토벤의 교향곡 (Symphony)


운명, 그게 대체 뭔데


쿵쿵쿵 쿵. 쿵쿵쿵 쿵.

예상 못한 시각, 누군가 예고도 없이 거칠게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고 해보자.

깜짝 놀라 당황스럽기도 했다가, 다시 생각해 보니 조금 괘씸하기도? 화도 났다가.

이런 갑작스러운 상황을 달갑게 반길 수 있겠는가?


©VectorStock

??? : 나 운명인데 내가 문 두드린 거 맞다


당시 비서였던 안톤 쉰들러(Anton Schindler, 1795~1864)의 말에 따르면 베토벤은 피아노로 멜로디를 연주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안톤, 이 소리는 바로 운명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야!’



베토벤 교향곡 5번 C단조, (Symphony No.5 in C Moll, Op.67*)

들어보기

*Op. 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 [Curation] #01 베토벤 첫 번째 이야기]


앞서 이야기한 쉰들러의 이야기 때문인지 우리에게는 ‘운명 교향곡’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하지만, 베토벤 스스로 이 곡을 ‘운명’이라고 이름 붙인 적도 없으며, 본인의 운명과 결부시켰다는 기록 또한 없다(!)고. (최근에 와서는 안톤 쉰들러의 MSG+바이럴 마케팅이었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는 추세다. 만약 사실이라면 그도 그대로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산책하는 베토벤 ©Wikipedia


“짠짠짠 짜안~”

하는 이 음형의 출처에 관해 베토벤의 제자였던 카를 체르니(Carl Czerny, 1791~1857)는, 베토벤이 빈(Vienna)의 공원을 산책하며 들은 새소리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라 말하기도 했는데, 어느 쪽이 사실인지는 아직까지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치만, 곡의 작곡 시기가 베토벤의 청력 이상 인지 시기와 겹쳐서일까. ‘운명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란, 참으로 직관적이고 매력적인 설명이 아닐 수 없다. 곡 시작 이래 들은 고작 여덟 개의 음만으로 그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졌는 걸. 영화 속 주인공을 응원하듯, 왠지 그가 스스로에게 닥친 청력 이상이라는 불청객을 자신의 운명으로서 받아들이고, 다음을 향해 나아가려는 영웅적 서사를 기대하게 한다.

이 곡을 즐겁게 감상할 수 있을 만한 포인트를 몇 가지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맨 처음 등장하는 ‘짠짠짠 짜안~’이, 곡 전체를 통과하며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 가는지, 어느 악기에서 등장하는지 <숨은 선율 찾기>를 하며 들어보자. ‘아니, 이걸 이렇게?’ 하며 들었다고? 축하한다. 당신은 이미 소나타 형식을 절반 이상 이해하였다.

둘째, 1악장에서 4악장까지 다양한 분위기가 다양한 빠르기로 연출된다. 음악이 흐르는 순간의 느낌 그 자체에 주목하여, 각각에 알맞은 장면을 상상하며 들어보자. 각 악장을 ‘이렇게 연주하여라’ 하는 작곡가의 도움말, 즉, 나타냄 말을 감상의 길잡이로 아래와 같이 첨부하겠다.


- 1악장 Allegro con brio (빠르고 활기차게)

- 2악장 Andante con moto (느리고 애틋하게)

- 3악장 Scherzo: Allegro vivace (스케르초: 빠르고 활기차게)

- 4악장 Allegro (빠르게)



고난을 넘어 환희로


마지막 교향곡인 9번 교향곡을 작곡하던 때 베토벤의 청력은 완전히 상실된 상태였는데, 거의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상태에서 작곡을 했다는 것 이외에도 놀라운 점이 있다. 당시만 하더라도, ‘합창’과 ‘교향곡’은 병존하지 않는 개념이었다. 다시 말해, 이전까지의 교향곡에는 인간의 목소리가 들어가는 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실러(J. Christoph Friedrich von Schiller, 1759~1805)


곡의 텍스트는 그가 스물두 살 때 감명 깊게 읽은 독일의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의 ‘환희의 송가’로부터 착안하였다. 실러의 시를 읽으며 ‘인류를 구원할 위대함’을 음악을 통해 실현하겠다고 결심한 그는, 자신의 마지막 교향곡에서 이러한 뜻을 합창으로 빵빵하게 불러 버리기로 한 것.

**프리드리히 실러: 괴테와 함께 독일 고전주의의 2대 문호로 불림.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말하는 작품들로, 1800년대와 1848년 혁명기의 독일인들의 자유를 위한 투쟁에 많은 영향을 줌. <돈 카를로스>, <발렌슈타인> 3부작, <빌헬름 텔> 등이 대표작.



Freude, schöner Götterfunken,
환희여, 아름다운 신들의 불꽃이여,


Tochter aus Elysium,
낙원의 딸이여,


Wir betreten feuertrunken,
우리 모두 정열에 취해


Himmlische, dein Heiligthum.
빛에 가득한 성소로 들어가자.

Deine Zauber binden wieder,
신성한 그대의 힘은

Was die Mode streng getheilt,
가혹한 현실이 갈라놓았던 자들을 다시 결합시키고


Alle Menschen werden Brüder,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노라


Wo Dein sanfter Flügel weilt.
그대의 부드러운 날개가 머무르는 곳에.

Seid umschlungen, Millionen!
서로 껴안아라! 만인이여



[이 영상을 틀어두고 읽기를 강력히 권장한다!]

들어보기


곡의 처음부터 ‘노래’가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곡의 1악장에서 3악장까지는 오케스트라만으로 연주가 이어지다가, 4악장 초반부, 첼로를 필두로 비올라, 바이올린 등 현악기가 ‘환희의 송가’ 선율을 주고받으며 부드럽게 연주하기 시작한다. 뒤이어 금관과 팀파니가 힘차게 등장하면서 모두를 금빛 환희로 데려가려는 듯한 인상이 든다.

그러다가 꽈과광! 하는 소리와 함께 숨어있던 합창단이 우르르 일어나 노래를 이어간다. 내가 베토벤 9번 교향곡의 초연을 보러 간 관객이었다고 한번 상상해 보라. 교향곡에 나올 수가 없다고 생각했던 합창이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것도 모자라, 앞에서부터 켜켜이 쌓아왔던 환희의 멜로디와 함께 ‘형제들이여, 서로 껴안아라. 우리는 모두 하나가 될 것이다!’라고 확신에 가득 차 노래하고 있다. 그야말로 눈앞에 기적이 펼쳐지고 있는 것 같지 않았을까. 자신의 마지막 교향곡에서 우리 인간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결국 이것이 아니겠니, 하는 베토벤의 메시지를 들으며, 그 순간만은 사랑과 연대의 가치로 가슴이 뜨거워졌으리라.

초연 무대가 끝나고 난 후, 귀가 들리지 않았던 베토벤은 지휘를 마치고 난 후 지진 같은 것을 느꼈다. 사방이 웅웅 거리고 바닥이 흔들려 의아해하던 베토벤을, 당시 초연의 알토 독창자가 객석으로 돌려세웠고, 그제서야 그것이 쏟아지는 박수갈채의 진동이었다는 것을 알았다고.


“Durch Leiden zur Freude!”
“고난을 넘어 환희로!”


1823년, 베토벤이 9번 교향곡(1824)을 작곡하며 남긴 문장으로, 삶에 대한 그의 태도를 잘 반영하고 있는 일종의 모토라고 할 수 있겠다. 베토벤은 청력 상실뿐 아니라, 사랑의 좌절, 특히 말년에 이르러서는 경제적 어려움과 가족 문제 등으로 크게 고통받았는데, 그럼에도 이를 안고 환희로 향해가고자 하는 그의 뜻이 이 9번 교향곡에 고스란히 묻어나는 듯하다. 어쩌면 베토벤은 자신이 누군가로부터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들려주려던 것이 아니었을까.



베토벤의 실내악


마지막 4중주, O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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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Curation] #01 베토벤 첫 번째 이야기 에서 살펴보았던 피아노 소나타, 그리고 교향곡들에 이어, 그의 작품들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바로 현악 4중주***이다.

***현악 사중주(String Quartet)는 두 대의 바이올린(제1바이올린, 제2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로 이루어진 실내악 편성으로, 악기 간의 조화와 균형감이 안정적이어서 많은 서양 고전음악 작곡가들이 작곡하였다.


베토벤이 교향곡을 활발하게 작곡하던 시기를 전후로 그의 현악 사중주 작품에는 14년 정도의 공백이 있었는데, 9번 교향곡의 작곡을 완성한 후, 54세 나이에 다시 현악 사중주 작곡에 몰입하였다. 하여, 1824년 이후 쓰인 그의 후기 현악 사중주 작품들은 완숙미로 넘쳐흐른다.


아리아나 현악 사중주 Arianna String Quartet ©Wikimedia Commons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는 총 16곡. 그중 마지막으로 작곡된 것은 ‘현악 사중주 14번 C#단조, Op.131’이다. 출판 순서로는 열네 번째 작품이지만 작곡 순서로는 마지막이다. 대위법과 푸가 등 작곡적 기법 면에서는 이전의 바로크 시대의 고유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구조적 짜임새 또한 매우 유기적이고 탄탄하다. 와중에 감성적이다. (말하자면, T적 하드웨어에 F적 소프트웨어를 가졌다고나 할까.) 베토벤은 스스로 이 곡을 자신이 만든 최고의 현악 사중주라고 꼽았다.

그러나 와닿지 않을 이러한 테크니컬한 설명들을 제쳐두고 이 작품의 매력을 이야기해 보자면, 악장과 악장 사이를 그저 이야기 풀어내듯 스리슬렁 자연스레 넘나드는 것,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네 대의 악기가 서로 정확히 확약된 플레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곡이 끝나기까지 서로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뉘앙스를 읽어나가며 연주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바이올린의 현과 활 ©PxHere


독특하게 7악장으로 이루어진 이 곡을 듣고 있으면, 계속해서 다른 위치에서 빛이 들어오는 듯한 기분이 든다. 분위기와 서술 방식이 계속 변해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실제로 연주 후반으로 갈수록 악기의 음정이 조금씩 변해가면서(!) 음색(음의 빛깔)도 달라진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이야기냐면...현악기는 악기의 특성상 연주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현이 점차 느슨해지며 음높이 또한 낮아진다. 헌데, 곡이 무려 7악장****이나 되지 않은가. 악곡의 길이 자체가 긴 와중 사이사이 다시 조율을 할 수도 없기 때문에, 누군가의 음높이가 떨어지면 다른 연주자들이 서로 그에 맞춰가면서 연주해야 한다. 하여 곡이 시작될 때엔 절대적으로 고정된 주파수의 음높이에서 출발하지만, 막바지를 향해갈수록 상대적 음높이에 의지하여 연주해 간다는 것 또한 이 곡의 재밌는 감상 포인트가 될 수 있겠다.

****고전적인 현악 사중주는 4악장으로 이루어진 것이 일반적이다.



‘베토벤’을 마치며


베토벤 현악 사중주 14번을 모티브로 한 영화 <마지막 사중주>에서는, 자신들의 마지막 연주회에 올리기까지 네 명의 사중주 단원들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을 이 곡과 함께 다루고 있다. 그들 내에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던 첼리스트 피터가 파킨슨병 진단을 받으면서, 그 과정에서 오가는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들의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장치로 이 곡이 사용되었는데, 곡의 성격과도 그렇고, 베토벤의 삶 그 자체와도 닿아있는 지점이 있는 듯하다.

베토벤을 두고 ‘구조’와 ‘설계’의 마스터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러나, 작품뿐 아니라 삶에서의 모든 일에는 예상 못한 사건과 변수들이 있다. 다난했던 베토벤의 삶, 그리고 그의 작품들을 살펴보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한다.

치밀한 계획과 공고한 설계만큼,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재에서 세상의 이야기를 듣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달라져 가는 음높이에 적응하여 발맞추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렇게 자신이 그리는 이상적인 내일을 계속해서 그려가보자는 것.



[editor’s note]

음악을 만국공통’어’라고 하지 않는가. 어휘를 알고 문맥을 이해하면 더 많은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게 되듯, 한 작곡가의 삶과 세계를 단편적으로나마 엿봄으로써 그의 음악을 조금 더 가깝고 즐겁게 감상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by Cor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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