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기 다른 클래식 연주를 즐기고 싶다면
스트리밍 사이트에 듣고싶은 클래식 곡을 검색하면 마주하는 모습이다. 팝, 록 등의 장르에서는 원하는 곡명을 입력할 때 하나의 음원만 검색되거나, 많더라도 몇 개 되지 않는다.
그러나 클래식의 경우에는 다르다. 음악을 들으려고 곡명을 검색해 보면 다 한 곡임에도 결과물이 이렇게 많다. 유명한 곡일 경우에는 스크롤을 아무리 내려도 끝이 없다. 그런데 그 모두가 다 제각기 다른 음원이다.
한 곡을 가지고 이렇게 다른 음원이 셀 수 없이 많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같은 곡을 두고도 연주자마다 해석이 다르기 때문이다.
여느 장르들과 달리 클래식은 그 원형이 악보로 존재한다. 따라서 이를 음악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연주자들 저마다의 다른 해석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동시에 이런 의문도 품어봤을 법하다. 다 똑같은 악기를 연주하는데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 연주 실력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다 비슷한 것은 아닌가. 같은 곡, 같은 악보를 얼마나 다르게 연주하길래 수많은 연주자들이 계속하여 이미 연주된 곡을 다시 연주하며, 명연주자와 뛰어난 해석을 낳는 것일까.
그래서 본고에서는 보다 쉽게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도록, 같은 곡임에도 큰 차이를 보이는 두 연주 사례를 묶어 몇 가지 소개한다. 어려운 음악적 설명은 최대한 배제되었으며, 듣기 쉬운 곡과 명성 있는 아티스트들을 중심으로 연주를 선별하였다.
아래 제시될 설명은 집중하여 읽기보다는 그저 참고 정도로 활용하며, 우선 영상 속 음악을 들어본 후 각자 자신의 귀로 비교 감상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제안한다. 설명을 통해 확인받는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Chopin - Waltz Op. 64, No. 2
- 쇼팽의 왈츠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작품 중 하나로, 서정적인 선율과 멜랑꼴리한 화성진행이 특징.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에도 편곡된 채 수록되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들어보기: 아르투르 루빈스타인(Artur Rubinstein)의 연주
들어보기: 블라디미르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의 연주
루빈스타인은 유려하고 선율적인 연주를 펼친다. 쇼팽과 같은 폴란드에서 태어나 쇼팽 해석으로 누구보다 정평이 났던 그는 굉장히 ‘쇼팽스러운’ 연주를 했다. 춤곡인 왈츠의 리듬을 살짝 늦추고, 다시 되돌리는 등(Rubato) 간질간질하게 살리면서도 선율을 낭만적이고 섬세하게 노래했다.
호로비츠는 그에 반해 터치부터 더 힘 있는 연주를 선보인다. 그리고 루빈스타인에 비해선 보다 기름기 없고 톡톡 튀는 연주를 선보인다. 비교해서 들으면 같은 곡이 더 밝아진 느낌마저 든다.
Mozart - Piano Sonata No. 16, K 545
- 어릴 적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쉬운 소나타’라는 부제가 붙어있으나 곡 전체에서 모차르트의 번뜩이는 음악성을 느낄 수 있다.
들어보기: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의 연주
들어보기: 그리고리 소콜로프(Grigory Sokolov)의 연주
바렌보임은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터치로 유려한 선율미를 드러내며, 모차르트 피아노 곡 해석의 표준과 같은 연주를 선보인다.
소콜로프의 접근은 보다 사색적이다. 그는 현대 피아노의 작은 다이나믹을 살려 섬세한 연주를 펼친다. 또한 바렌보임에 비해 느린 템포로 음 하나하나에 무게를 담아 연주한다.
이러한 연주자 간 템포 해석 차이는 곡의 빠르기말이 언어로 적혀있기 때문에 생겨난다. 위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의 빠르기는 알레그로(Allegro), 즉 ‘빠르게’다. 어떤 정도의 템포가 빠른 템포인가. 명확한 기준은 없다.
Bach – Goldberg Variations, BWV 988
- 주제를 조금씩 변형하며 반복해 나가는 변주곡 형식으로 쓰인 작품.
서정적인 아리아*와 이어지는 30개의 변주, 그리고 아리아로 다시 돌아오는 구성의 곡.
*아리아 : 서정적인 선율을 가리키는 말. 이탈리아어로 공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음.
들어보기: 안드라스 쉬프(Andras Schiff)의 연주
들어보기: 글렌 굴드(Glenn Gould)의 연주 (1981)
쉬프는 ‘바흐 스페셜리스트’라 불리는 바흐 해석의 권위자다. 그는 절제된 바흐의 선율을 딱딱하지 않게 우아한 음색으로 풀어낸다. 그러나 전혀 과하게 풀어지지 않으며 오히려 단정하다.
굴드 또한 바흐 해석으로 정평이 났던 피아니스트다. 독특한 터치와 연주 도중 부르는 허밍으로 유명했던 그는 쉬프와는 달리 서정적이고 느릿하게 아리아를 시작하더니, 이후 굉장히 강렬한 그의 시그니쳐 터치로 통통 튀는 자유로운 연주를 펼친다.
위는 굴드의 1981년의 레코딩이나, 1955년의 레코딩도 유명하며 이때는 전혀 다른 연주를 선보인다. 같은 연주자라도 연주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을 선보이기도 한다.
들어보기: 글렌 굴드(Glenn Gould)의 연주 (1955)
Bach – Cello Suite No. 1, BWV 1007
- 바흐 활동 당시에는 비인기 악기였던 첼로의 독주 모음곡으로, 현대에 와서는 가장 많이 연주되는 첼로 독주 작품 중 하나.
들어보기: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의 연주
들어보기: 장-막스 클레망(Jean-Max Clement)의 연주
카잘스는 바흐가 작곡한 이후 수백 년간 크게 빛을 보지 못했던 본 곡을 연구하여 전 세계에 알린 연주자다. 곡을 대표하는 연주자답게 그는 곡에 걸맞은 가장 표준의 연주를 선보인다.
클레망은 시작부터 음을 하나하나 꺼내듯이 연주한다. 그리고 카잘스에 비해 느릿하게, 그러나 풍부한 음향과 줄 타는 듯한 리듬으로 전혀 루즈하지 않고 청자로 하여금 오히려 집중케 하는 해석을 들려준다.
Mozart – Requiem, K. 626 No. 3 ‘Dies Irae’
- 모차르트의 유작인 레퀴엠(죽은 이를 위한 진혼곡)의 3번 ‘부속가(Sequencia)’ 중 첫 번째 곡.
신이 강림하여 구원받을 자와 그렇지 못할 자를 가려내는 심판의 날을 노래하고 있다.
들어보기: 칼 뵘(Karl Bohm)의 연주
들어보기: 테오도르 쿠렌치스(Teodor Currentzis)의 연주
뵘은 레퀴엠, 그리고 신의 심판이라는 곡의 정체성을 극대화시킨 듯한 해석을 보여준다. 느릿하고 육중하나 동시에 성스럽다.
쿠렌치스의 해석은 뵘과는 완전한 대척점을 이룬다. 그는 마치 무자비한 심판 그 자체를 나타내듯, 자칫 악마적이라고도 들릴 정도로 폭력적으로 내달린다. 또한 큰 소리와 작은 소리 사이에 막대한 대비를 주며 시종일관 청자를 긴장하게 한다.
클래식 음악의 독보적인 매력 중 하나는 수많은 곡마다 각기 다르게 존재하는 수많은 해석이다. 좋아하는 곡을 각기 다른 연주자의 해석을 통해 듣다 보면 나만의 연주 취향이 생기기도 하고, 좋아하는 연주자가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중 정답은 없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유일한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해석이 존재하는가 하면 저런 해석이 존재한다. 그 둘이 너무나 다르더라도 음악적으로 납득이 된다면 둘 모두 정답이다. 이러한 연주의 무한한 가능성과 광활한 다양성이야말로 대체될 수 없는 악보 음악의 장점이며, 수많은 음악적 재미와 생각할 거리를 낳는 클래식 음악의 고유한 가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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