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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da music studio Jul 19. 2024

AI라는 패턴



  누군가 예술의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저명한 거장 예술가들이나 그들의 작품을 조명한 평론가, 후원자 등을 거론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수많은 세월 동안 흘러온 예술의 역사는 사뭇 다른 대답을 일관되게 내놓는 듯하다. 예술계가 아닌, 기술 발전.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인한 매체의 변화, 예술가들의 사고방식의 변화, 더 나아가 사람들의 생활양식의 변화는 기존까지 존재했던 예술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꿔왔다. 그것은 ‘AI 예술’과 같이 현재 21세기 예술이 마주한 새로운 의제들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며, 미래에도 동일할 것이다.




작곡을 ‘잘’ 하는 AI가 등장했다

  작년(2023년) 12월 개발된 Suno AI가 화제다. 이미 몇 년 전 상용화된 그림 생성 AI처럼 음악을 작곡하는 AI가 개발된 것이다. 사실 작곡 AI 또한 이미 여러 선례가 있었으나 Suno AI는 여타 AI들보다도 월등한 수준의 완성도를 보여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만드는 방법도 여타 AI들처럼 간단하다. AI의 버전을 선택한 후 순서대로 가사, 음악의 스타일, 제목을 입력한 후 'Create' 버튼을 누르면 끝이다. 에디터도 바로 음원을 만들어보았는데, 모든 제작 과정에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Suno AI 음원 제작 과정

제목

“Wanna Play” - Suno AI, grount

들어보기: https://suno.com/song/f4fbdced-2cc6-46c6-abb6-d8547e9c5f70


스타일

Classical Lied with Piano Accompaniment

(피아노 반주가 포함된 클래식 가곡)


가사

(전주 약 46초)

아 원고 쓰기 귀찬다 놀고시퍼

아 원고 쓰기 귀찬다 놀고시퍼

아 원고 쓰기 귀찬다 놀고시퍼

아 일하고 싶지 않앙 놀고시퍼

(반복)



  물론 퀄리티가 완벽하진 않다. 그러나 같은 키워드라도 여러 번 검색을 돌리다 보면 높은 확률로 꽤 좋은 곡을 만들어낼 수 있다. 팝, 힙합 등 가장 유행하는 대중음악 장르는 물론 클래식이나 월드뮤직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장르를 지원한다. 과연 실제 악기 소리를 기반으로 하고 복잡한 음향을 가진 클래식도 과연 잘 만들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으나, 실제로 만들어보니 약간의 음질 문제를 배제하면 녹음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을 뛰어난 퀄리티를 보여주었다.

  많은 이들이 이러한 음악 생성 AI 발전의 진보를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뉴스나 인터넷에서는 걱정스러운 시선들도 그에 버금가는 양만큼 볼 수 있다. 그들은 AI라는 처음 보는 위협이 음악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예측할 수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 말에 거짓은 없다. 그러나 AI라는 주제는 새로울지언정, 기술 혁신에 따른 예술계의 위기는 역사 속에서 다분히 반복되어 왔던 사건, 즉 패턴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AI의 예술 창작을 걱정하고 경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특히 생계와 연관되는 음악가들에겐 특히 아주 민감한 영역일 수 있다. 그러나 반복으로 가득한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생각보다 명징한 해답이 있는 듯 보인다.


미술에서의 패턴

  갑작스러운 질문을 하나 해보자. 오늘날의 미술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을 꼽으라면 누구일까. 파블로 피카소? 마르셀 뒤샹? 분명 여러 시각이 존재할 것이며 어느 한 명을 정답으로 꼽긴 어렵다. 그러나 여기에 조금 당돌한 대답을 내놓자면 예술가 이전에 발명가를 꼽을 수도 있다. 그중에서도 사진기 발명가는 이 영광을 차지하기에 거의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당돌하기만 하려는 대답은 아니다.

  사진기는 어느 날 누가 처음부터 발명해 낸 도구는 아니며, 여러 사람에 의해 점진적으로 개발되었다. 그러나 1830년대 후반에 루이 다게르에 의해 다게레오타이프라는 첫 대중적 사진술이 등장하고, 그림보다 실물을 더 정교하게 묘사할 매체가 생겨나자 화가들은 당장 밥벌이를 고민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사진기 이전까지의 회화는, 비록 예술가마다 작품경향에 차이가 있었다고 해도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을 잘 묘사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정확하게 그려내도 사진기가 더 정확한 시대가 오자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행위는 가치가 많이 퇴색되었다. 이에 당대 젊은 화가들은 새 시대에 걸맞은 예술의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기 시작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인상주의(모네 등), 입방체주의(피카소 등) 등 새로운 예술양식을 창조해 내었다. 이 새로운 양식들은 제각기 달랐으나 모두 한결같이 기존에 없던 새로운 목표를 표현하고 있었다. '추상'. 그들은 방법은 달라도 모두 묘사로부터 벗어나 카메라가 담아내기 힘든 추상성을 향하기 시작했으며, 그렇게 생겨난 대안적 해결책은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현대미술의 새 이정표가 되었다.


모네(C.Monet),《인상, 해돋이 (Impression, soleil levant)》 ⓒWikipedia



음악도 다르지 않았다

  미술에 사진기가 있었다면, 음악에는 축음기가 있었다. 1870년대에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하고 이를 베를리너가 상용화하자 음악을 둘러싼 세상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말하거나 노래하는 기계의 등장은 그저 기술적인 면 외에 대단히 큰 시사점을 가졌다.

음악이란 본래는 연주였다. 과거에 음악을 만들어내는 작곡가들은 모두 악보의 형태로 소리를 저장했고, 소리는 무대 위에서 연주자에 의해 재현됨으로써 제 정체를 드러낼 수 있었다. 이에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곳이라면 들을 수 있는 음악이라곤 허밍이나 무반주 노래가 전부이던 시대였다. 따라서 음악산업은 주로 무대 공연과 악보 출판이었다. 대중들은 무대에서 벌어지는 연주에 환호하고, 그 악보를 구입함으로써 음악을 소비해 왔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음원으로 바뀌었다. 음원은 실제 소리였고, 고정된 소리였다. 더 이상 악보와 연주자에 따라 음악이 달라지지 않았다. 음악은 소리 그 자체가 되었다. 이에 따라 작곡가들은 연주가 아닌 작곡에 의해 이미 모든 것을 통제하고 고정할 수 있는, 음원으로서의 음악을 만들게 되었다. 바야흐로 전자음악의 시작이었다.

  음악의 생산자뿐 아니라 소비자들이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도 변화했다. 그들은 축음기를 통해 보다 일상적이고 사적인 환경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전처럼 때때로 공연을 찾기도, 악보를 구매하기도 했지만, 그에 앞서 소리가 저장된 원반 모양의 디스크를 구매하게 되었다. 음악을 담아내는 기계가 음악의 생산과 소비를 둘러싼 모든 메커니즘을 뿌리부터 변화시킨 것이다.


AI라는 연장선

  이제는 이미 수없이 미디어에 노출되어 온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AI는 여전히 우리에게 복잡하고 생소한 주제다. 그러나 AI는 이미 각 예술 분야에서 전범위적으로 활성화되어 다시금 인류에게 새 시대 예술의 새 지평을 펼칠 것을 말하고 있으며, 음악에서도 또한 장르를 가리지 않고 무수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상업음악계에서는 고품질의 음악을 생산할 수 있게 된 AI 프로그램들이 점점 많은 작곡 작업을 담당해갈 것이다. 이미 전체 작곡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AI 작곡가도 존재하지만, 기본적인 골조를 AI가 대량생산한 후 인간 작곡가가 이를 선별, 취합하여 가공하고 디테일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되면 인력, 시간을 대폭 감축할 수 있을 것이다. AI로 대량생산한 음원을 악기별로 분리하여 추출하거나 미디화, 악보화하고 이를 재가공할 수 있게 된다면 작곡가의 작업 자유도와 편의성은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증대할 것이다. 대중음악 작업환경에서는 이미 샘플링, 가상악기(VST, VSTi), 프리셋 등 ‘이미 만들어진 것’을 작곡자의 의도에 따라 재구성하는 방식이 널리 사용되어 왔고 기술 발전에 따라 확장되어 왔는데, 이러한 맥락에서 이는 작곡 작업 과정 간소화의 자연스러운 연장선이라고도 여겨진다.

  예술음악계에서는 보다 확장된 시도도 있었다. AI작곡 분야의 대표주자 중 하나인 제니퍼 월쉬는 2018년에 아티스트이자 기술자인 메모 악텐과 울트라청크(ULTRACHUNK)라는 프로젝트를 공동 진행한 바 있다. 울트라청크는 월쉬가 즉흥 연주하는 모습을 오디오와 비디오로 생성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AI를 작곡에 활용함에 있어 직접적인 작곡 도구로 취급하지 않고, 작곡자 자신을 새로 만들어낸다는 방향에서 접근 가능성을 다양화한 긍정적 사례였다.

Ultrachunk ⓒMemo Akten


  작곡이란 무엇인가. 영어로 Composition이니, 작곡은 즉 구성이라는 유명한 말풀이가 있다. 이는 사전적, 언어적 측면에 국한된, 약간은 진부한 해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본질을 벗어난 해석은 아니다. 모든 음의 재료를 창작 과정부터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것보단 그것을 어떻게 배치하느냐가 보다 작곡에 가까운 접근일 수 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작곡은 재료로부터 멀어져 갔고, 구성에는 더 가까워져 왔다.

  현재로서 AI는 그 흐름의 연장선 마지막에 있다. 그러나 미래에 이보다 더 진일보한 혁신이 찾아오면, 이마저도 공고하리라 확실할 수 없다. 아직까진 머릿속으로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지금 우리가 녹음기의 발명을 바라보듯 언젠가 AI를 바라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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