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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da music studio Aug 09. 2024

애국가 선율에 흐르는 위화감

아무도 본래대로 부르지 않는 노래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애국가를 잘 알고, 잘 부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애국가를 본래 멜로디와 다르게 부른다. 과연 우리는 애국가의 무엇을 본래와 다르게 부르고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익숙한 노래, 그러나


  동해물과 백두산. 한국인이라면 귀가 마르고 닳도록 들어봤을 단어쌍이다. 우리는 학창 시절 운동회나 졸업식 등 교내 행사에서, 각종 스포츠 경기나 국내외 행사에서, 군대를 다녀온 남성이라면 당시 매일 아침 연병장 앞에서 수도 없이 애국가를 부르거나 들어왔다. 그야말로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할 노래다.

  그러나 익숙함은 종종 대상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감각을 둔하게 하기도 한다. 우리는 애국가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하겠지만, 이는 단순히 오랜 기간 애국가에 노출되어 왔던 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놀랍게도 애국가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악보와 다르게 부르고 있는 대목이 있다.


ⓒ행정안전부


동해물이냐, 해물이냐


  그 대목은 바로 다름 아닌 첫 소절. 그것도 고작 5~6초에 해당하는 “동해물과 백두산이”다. 해당 멜로디를 악보로 그려내면 다음과 같다.

(악보를 읽지 못하더라도 그림 보듯 대략적인 모양만 파악할 수 있으면 된다)

본래 애국가 초반부


  위는 본래 애국가 멜로디다. 애국가의 악보도 음원도 전부 이 악보대로 적히며 연주된다.

그러나 우리 한국인의 99퍼센트가 실제로 부르는 멜로디는 다음과 같다.

사람들이 부르는 애국가 초반부


  음은 동일하다. 그러나 ‘동’부터 시작해서 모든 음의 위치가 앞으로 밀려난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나타내는 것은 무엇인가.

  간단히 해설하자면 강박과 약박이 바뀌었다. 강박과 약박이란 이를테면 쿵, 짝, 쿵, 짝, 과 같은 것으로 쿵이 강박, 짝이 약박이다.

(가끔가다 쿵, 쿵, 쿵, 쿵만을 반복하는 음악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음악은 쿵과 짝을 모두 지닌다.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함이다. 애국가 또한 마찬가지다.)

두 애국가의 차이 비교. 같은 선율이지만 강약(강박과 약박)이 다르다.


  우리는 노래를 부를 때 본능적으로 ‘쿵’에 힘을 준다. 강박이기 때문이다. 애국가에서 ‘쿵’은 ‘동해물과 백두산이’ 중 ‘동’이다. 그런데 우리는 애국가를 부를 때 ‘동’이 아닌 ‘’에 힘을 준다. 그다음도 마찬가지로 ‘백’이 아닌, ‘’에 힘을 주게 된다.

  이것은 완전히 다른 노래가 돼버리는 꼴이다. 원래 짝이 와야 하는 자리에 쿵이 오는 것이니 말이다. 원래대로라면 우리는 ‘동’에 힘을 주고, ‘백’에 힘을 주어 노래를 불러야 한다. 적어도 작곡가인 안익태는 그렇게 작곡했다. 그러나 거의 어느 누구도 이 애국가를 작곡가가 적은 대로 부르지 않는다.



단순히 사람들의 오류인가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나는 것인가. 수많은 사람들이 ‘굳이’ 본래와 다르게 노래를 바꿔 부르는 것은 단지 많은 이들의 오류가 오래전부터 계승되며 벌어지는 우연인가.

  실제로 애국가를 부르는 상황을 곱씹어 생각해 보면 그렇지만은 않으리라 추론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동’을 따로 빼고 ‘’에 강박(=쿵)을 맞추어 부르는 이유는 단지 그게 더 입에 잘 붙기 때문이다. 오히려 ‘동’에 강박을 맞추어 부르면 다소 어색하기까지 하다.

  아래처럼 따옴표에 따라 힘을 다르게 주며 애국가를 불러보자. 앞에서 제시한 악보를 참고해도 좋다.


1) ‘’ 해물과 ‘’ 두산이 (본래 애국가)


2) 동 ’ 물과 백 ’ 산이 (사람들이 부르는 애국가)


  사람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론 사람들이 실제로 부르는 2)가 더욱 자연스럽다고 느낄 것이다. 1)처럼 부르면 선율이 다소 경직된다. 멜로디 자체가 선율적으로나 리듬적으로나 2)로 불렀을 때 더 자연스럽도록 구성되어 있다.

  화음 면에서도 2)에 더 적합하다. 애국가는 오케스트라 화음 반주와 함께 부르는 곡이다. 그러나 ‘동’이 아닌 ‘’에 강박을 두고 불렀을 때 반주의 화음이 더 ‘귀에 감긴다’. 이 점은 ‘백두산이’ 부분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많은 사람들이 “백 ‘’ 산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반주가 그 ‘두’에서 긴장을 유발하는 강한 화음을 연주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두’가 강박에 오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물론 음악에 유일한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며 1)처럼 불렀을 때 완전히 이상한 음악이 되는 것도 아니다. 충분히 음악적으로 말이 된다. 그러나 대중들이 스스로 원곡의 멜로디를 한 박자씩 바꾸어서 부르는 부자연스러운 현상에는 분명한 음악적 이유가 따른다.



수상쩍은 의혹의 레퍼런스들


  애국가가 선율을 바꾸어 불러야 더 자연스러워지는 이유에는 음악 외적인 정황도 존재한다. 애국가 작곡에 큰 영향을 주었으리라 여겨지는 레퍼런스 격 곡이 적어도 두 곡 있으며 이 곡들은 위 현상을 설명할 중요한 열쇠기도 하다.


1) 익숙한 멜로디의 원시 애국가


  1935년 안익태가 현 애국가를 작곡하기 전까지 한국은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이라는 스코틀랜드 민요를 애국가로 사용했다.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야’라며 한국어 버전으로도 개사된 이 민요의 선율은 우리에게도 굉장히 친숙하다. 그런데 단지 그 가사가 우리가 아는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인 것이다. 음원으로도 남아있어 현재 아래 링크를 통해 들어볼 수 있다.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

  들어보면 현 애국가와 가사가 거의 같은 와중에 리듬도 유사한 부분이 있다. 무엇보다 첫 “동해물과” 부분의 리듬이 아예 일치한다. ‘동해물과’ 부분을 지금의 애국가로, 그리고 위 올드 랭 사인 애국가로 번갈아 불러보면 금방 동일함을 느낄 수 있다. 

현재 애국가와 올드 랭 사인 애국가는 ‘동해물과’ 부분 리듬이 같다


  그런데 여기에서 의문점이 발생한다. 이 원시 애국가는 “‘’ 해물과”가 아닌 “동 ‘’ 물과”다. 애국가의 본래 리듬이 아니라 사람들이 부르는 리듬대로 작곡된 것이다.

안익태는 국가로 올드 랭 사인이라는 이 타국의 이별 노래를 부르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애국가를 작곡하였다고 전해진다. 즉 올드 랭 사인 버전 애국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 그렇다면 현 애국가의 ‘동해물과’ 부분 리듬이 가사도 같은 올드 랭 사인 애국가의 ‘동해물과’와 무관하다고 보는 것은 아주 부자연스럽다. 오히려 올드 랭 사인 애국가를 참고하였으나 리듬을 “동 ‘’ 물과”에서 “‘’ 해물과”로 옮겼다고 보는 것이 설득력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되면 아예 다른 노래가 된다는 것이다. 다만 그냥 다른 노래가 아니라 어색한 다른 노래다. 그리고 그 증명은 우리 모두가 실제로 이 애국가를 거의 백 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이전 애국가인 ‘올드 랭 사인’의 리듬처럼 부르고 있다는 데에서 대단히 설득력 있게 성립된다. 멜로디에 각인된 DNA는 리듬을 약간 밀어버린다고 뒤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실재적 반증이다.



2) 오, 도브루잔스키… 코리아?


  그런데 올드 랭 사인보다도 애국가와 큰 유사성을 보인다고 지목되는 노래가 있다. 세계 1, 2차 대전 시기 불가리아 군가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로,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진 않지만 애국가는 수십 년 전부터 이 노래와의 표절 의혹에 휩싸여왔었다.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

  처음으로 표절문제를 제기한 것은 1964년, 불가리아 출신 미국 지휘자 피터 니콜로프였다. 그 후 이 표절 제기를 집중적으로 분석한 코리아 타임스의 음악평론가 제임스 웨이드(James Wade)가 표절임을 주장하는 소논문을 발표했다.


제임스 웨이드의 논문 ⓒ국립중앙박물관


  1976년에는 작곡가이자 중앙대학교 교수인 이유선에 의해 집필된 ‘한국양악백년사’에서 다시 한번 표절 문제와 함께 애국가를 다시 재정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으며 이후 많은 연구가들이 표절 논란에 대한 갑론을박을 펼쳤다. 최근인 2019년에는 작곡가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인 김정희에 의해 선율 분석을 통해 유사성을 규명하는 논문이 발표되었다.

  수차례 표절로 지목되는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곡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초반부, 그중 ‘동해물과 백두’까지의 음이 거의 완전히 일치하며 후반의 ‘우리나라 만세’ 부분도 아주 유사하다. 게다가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부분을 뺀 나머지에서 선율의 방향이 전부 일치한다. 마지막으로, 선율 구성음들의 기능도 많은 부분에서 실질적으로 유사하다.


애국가와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의 선율 일치도 분석 ⓒ김정희


  선율의 유사성 외에도 강한 증거정황이 있다.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도 ‘올드 랭 사인’과 마찬가지로 첫 음이 아닌 두 번째 음을 강박으로 둔다. 애국가로 표현하면 “동 ‘’ 물과”인 것이다.

이것이 시사하는 점은, 우리가 불러온 애국가 선율은 사실 원곡대로 제대로 부른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동해물’과 ‘백두산’이 모두 ‘’와 ‘’가 강박이어야 자연스러운 현상을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의 박자를 인위적으로 옮기려 했기 때문이라 보면 해설이 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기에 안익태는 애국가 창작을 위해 세계 각국의 민요, 국가, 가곡 등을 수집했다. 많은 연구자들이 그가 이 시기에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를 접하여 강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부르고, 들을 것인가


  현 애국가가 표절 의혹을 온전히 부인하기 어렵고 부르기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이를 국민으로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애국가의 음악적 면만을 다루는 본 원고에서는 상세히 다루지 않겠지만 작곡자 안익태에게는 친일 행적에 관한 논란도 다수 존재한다. 이에 애국가의 음악적 결함에 행적 논란까지 겹쳐 국가(國歌)를 새로 제정하자는 움직임도 꾸준히 제시되어 왔다.

  어쩌면 이는 서양의 기성 문화를 수입하여 적용하는 데에 급급했던 우리의 근대, 그리고 한국이라는 국가의 시발점의 사실적 반영이다. ‘애국가에 남의 나라 곡을 붙여 부르는 것을 안타까워하여’ 현 애국가를 작곡했다고 알려진 안익태는 결국 서양음악 어법에 따라 한국 음악의 색채는 찾아볼 수 없는 멜로디의 애국가를 창작했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기성 서양 노래들을 직접적으로 참고하여 작곡한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일상 속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우리는 그저 지금처럼 이 노래를 불러도 좋을 것이다. 물론 원곡대로 “동 ‘ 물과 백 ‘두’ 산이”가 아닌 “‘’ 해물과 ‘’ 두산이”임을 기억하며 불러본다면 더할 나위 없다. 그러나 미처 “동 ‘’ 물과 백 ‘’ 산이”라고 불렀다고 굳이 ‘아차!’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분명 단지 그렇게 작곡된 노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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