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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da music studio Aug 06. 2024

[B열 리뷰]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정주행(2)

Part.2 - 연주는 어땠냐면... (진지한 얘기)



Part1. 먼저 읽기


지난 이야기...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중 세 곡을 연달아 연주하는 세트메뉴 공연기획이 있다?
개관을 갓 한 해 넘긴 부천아트센터의 위엄!
아니, 그런데 무대에 지휘자석이 없어?

. . .


  예상처럼 연주자가 모두 무대에 오른 후에도 지휘자는 무대에 나타나지 않았다.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Ilya Rashkovskiy)가 객석을 향해 인사를 마친 후 자세를 가다듬으며 피아노 의자에 앉자 객석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 흔한 기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런 특이한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은 라흐마니노프의 팬이 대부분이었으리라.



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1

오케스트라 연주에 지휘자가 없으면 누구의 장단에 맞춰야 해?


  라쉬라쉬코프스키의 간단한 약식 지휘 사인과 함께 첫 번째 피아노 협주곡이 연주되기 시작했다.

오늘날의 기술이 혁신적으로 발전했다 한들 아직 컴퓨터가 아닌 인간이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를 찾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단순히 디지털 처리를 거치지 않은 악기의 소리와 곡 자체를 듣는 것 이상으로도 수십 명의 연주자들이 호흡을 맞추며 서로의 음악적 해석을 타협해 가는 단 한 번뿐인 결과물을 목도할 수 있다는 것에 있지 않을까? 

  사실, 나는 피아노 비전공자임에도 운 좋게도 피아노를 꽤나 다룰 줄 아는 사람으로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의 피아노 파트를 홀로 연주하며 '아, 한 번쯤 이런 공허한 연주 말고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적이 많다. 그런데 솔로 피아니스트로서 피아노 협주곡을 지휘자의 중재조차 없이 내 맘대로 이끌어 갈 수 있다니, 아마도 모든 피아니스트의 로망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으시겠다! 


보통 이렇게 '타이밍'이 중요한 부분에서는 지휘자의 중재가 따른다.


  예상하기 어렵지 않게도, 지휘자가 없는 피아노 협주곡에서의 리더는 곡의 솔로 연주자로서 앞에 나선 피아니스트의 몫이었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은 워낙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을 정도로 많이 연주되는 클래식 연주의 단골 레퍼토리이기 때문에 연주자들은 피아니스트를 쳐다보며 피아노 소리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음악을 만들어 가는 것이 수월해 보였다. 물론 피아노가 손을 쉬는 동안은 안전장치로서 라쉬코프스키가 직접 지휘를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 말은 즉슨, 그는 세 곡의 피아노 협주곡이 연주되는 동안 단 한 번도 쉬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라흐마니노프의 첫 번째 피아노 협주곡은 당시 라흐마니노프를 슬럼프에 빠뜨리게 한 주범이 되었을 정도로 혹평을 받았는데, 오늘날의 평은 대략 이렇다.


D: 역시 '고통스러운' 화성진행의 재능적 싹수가 남다르다.

G: 고통스러운 화성진행이라니, 너무 정확한 표현이다.

D: 그런데 확실히 혹평을 받았을만하다고 느껴지는 게, 뭐랄까? 쓰고 싶은 부분을 신나고 야심 차게 쓰기 시작해서는 곡이 진행될수록 점점 갈피를 못 잡아 학문적인 지식에 의존해 억지로 완성한듯한...(주저리주저리)

G: 형식적으로 너무 딱딱하고 라흐마니노프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음악적 아이디어가 단순한 것 같아.

D: 맞아 딱 그거야! 그렇게 피아노를 잘 치면서 다른 피아노 곡들에 비하면 유치한 음형도 자주 들렸어.

G: 그치만 첫 번째로 쓴 피아노 협주곡을 이 정도로 쓸 수 있다는 게 정말 대단한 것 같아.

D: 아...... 그렇게 생각하니 작곡가로서 의지가 꺾인다... 내가 쓴 피아노 협주곡은...

G: 안돼~! 형 자존감 지켜~!



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2

오케스트라, 이젠 알 것 같아요


  비교적 짧은 길이의 1번 피아노 협주곡의 연주가 끝난 뒤 곧바로 2번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라흐마니노프의 두 번째 피아노 협주곡은 광고에서도 활용될 정도로 개중에서도 가장 많은 대중적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인데, 첫 번째 피아노 협주곡의 데뷔에서 처참히 실패를 맛보고 난 뒤 긴 슬럼프 끝 진한 우울함의 맛을 머금고 컴백해 초-대박을 터뜨린 곡이다. 1번과 비교했을 때 어떤 음악적 진화가 이루어졌는가?


D: 나 지금 막 느꼈는데, 1번에서 목관악기들의 존재감을 잊고 있었어.

G: 존재감을 잊다니, 그게 무슨 뜻이야?

D: 2번을 듣다 보니 1번에서는 목관 파트를 삭제해 버려도 크게 지장 없을 정도로 역할이 없었다는 게 느껴져.

G: 아,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음색적으로 조금 단조롭다고 느껴졌던 게, 그런 이유도 있겠다.

D: 맞아. 2번이 훨씬 다채롭게 느껴져. 그리고, 1번에서랑은 다르게 피아니스트가 지휘를 하는 시간이 현저히 짧아진 것 같지 않아?

G: 솔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사이의 밸런스 조정에 익숙해졌다?

D: 그렇게 볼 수 있지 않을까? 피아노 테크닉도 훨씬 자유롭고 화려해졌어. 곡 짜임새도 그렇고.



연주홀의 음향은 역시 소문대로 좋았다!

... 어, 적어도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하.

음향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분석적으로 감상하기는 힘들었지만 댄과 그라운트 모두 부정적인 인상을 받지 않았다. 소리가 울리는, 공간감 있는 소리였는데 지저분하게 섞여 난잡하지 않고 금방 깔끔하게 사라지는 울림이랄까?

C: 그거 좌석 위치 때문일지도 몰라. 천장이 높은 홀이면 위층이 좀 더 울리게 들려.

(... 도대체 모르는 게 뭐야?)


콜다의 말마따라 측면에 앉은 이유인지(Part1. 참고) 아무래도 나를 마주하지 않는 악기들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것만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자리의 문제라고 치부하고 넘어갈 수 없는 댄과 그라운트의 공통된 의견이 한 가지 있었다.


호른(French Horn) 수석 연주자가 너무나도 파워 호른이야!

어떻게 이 부분을 그렇게 무심하게 연주할 수가 있어!


한바탕 큰 소동이 지나간 뒤 모든 악기가 땅으로 꺼진 이 시점에서의 호른은 천천히, 조용히 떠오르는 일출같이 등장해야 한다고!



2번까지 연주를 마친 뒤 잠시 인터미션을 가졌다. 




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3

마참내! 그래 바로 이거지!


  1번에 비해 2번을 연주할 때 피아니스트의 지휘가 확연히 줄었다면, 3번에서는 거의 지휘를 할 겨를이 없었다. 피아니스트의 손은 훨씬 현란하게 건반 위를 돌아다닌다.


G: 와,  3번이 이렇게 음향적으로 훌륭한 줄은 몰랐는데 실연으로 직접 들으니까 정말 좋다.

D: 응, 원숙미가 느껴져. '이런 악기조합을 하면 이런 소리가 날 것이다'를 전부 머릿속에서 확신하고 쓴 느낌이야.

G: 1번, 2번이랑 연달아 들으니까 오케스트라 다루는 데에 훨씬 노련해졌다는 게 잘 느껴져.

D: 그리고 혹시 팀파니스트 말렛 몇 채인지 보여?

G: 어디?... 헉, 저게 몇 쌍이야? 저걸 다 쓴 거야?


작곡가가 특별히 악보에 지시하는 바가 없다면 연주자가 임의로 음색에 맞게 골라 사용한다. 머리가 작은 말렛을 사용할수록 날카로운 음색, 반대의 경우 부드럽고 둥근 음색이 난다.


D: 안 그래도 나도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었거든? 1번, 2번에 내내 맨 앞의 두 쌍밖에 안 쓰더라고. 그래서 '아, 그냥 세트로 가지고 나온 건가?' 싶었는데 3번에서 저 여덟 쌍을 다 쓰더라고.

G: 아 정말?

D: 그만큼 곡이 요구하는 소리가 더 섬세해졌다는 뜻이겠지?

G: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세계가 더 풍성해졌다...


그런데...


G: 전체적으로 왠지 모를 급함이 느껴지지 않았어?

D: 급함? 템포를 얘기하는 거야?

G: 응, 내가 들었던 음원들보다 훨씬 빠르고, 빠른 것뿐만이 아니라 뭔가 다급한 느낌이었어.

D: 음, 중간중간 나도 느꼈어. 아마 피아니스트 성격인 것 같아. 굳이 따지자면 섬세함보다는 기세와 에너지를 보여주는 퍼포먼스 타입? 혼자 지휘까지 맡느라 끝음 처리나 들어가는 타이밍을 놓치는 게 좀 보였어.

G: 나도 느꼈어. 주체하지 못하는 아드레날린이 느껴지더라.

D: 사실 내가 피아니스트였다고 생각하면 많이 신날 것 같기는 해... 얼마나 행복할까? 내 맘대로 연주되는 피아노 협주곡이라니.

G: 아... 바로 이해된다.


  실제로 밤늦게 돌아가는 교통편이 끊길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약 두 시간 만에 세 개의 피아노 협주곡을 정주행 하는 데에는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 귀가는 여유로웠다.

공연이 끝난 뒤 으레 껏 박수를 치는 동안 인사와 퇴장, 입장을 반복하는 것도 두어 번 만에 순식간에 끝내버렸다. 이 '박수 타임'이 길수록 훌륭한 연주라는 뜻을 내포하기 때문에 음원이나 영상에서 일부러 이 박수타임을 편집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한데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남자 쿨하다..!



Behind... extra?


C: 그래서, 재방문 의사가 있으신가요들?

D: 응! 서울에서 출발하려면 교통편이 조금 번거롭긴 한데 연주홀 자체는 맘에 들었어.

C: 교통편이 번거로워? 지하철이 연결되어있지 않아?

D: 7호선이 연결되어 있긴 한데, 우리 집 근처에 없어.

C: 환승 한 번 하는 게 귀찮다는 뜻이지?

D: 당연하지. 그게 서울인의 미덕이야.

G: 이런 나약한 서울인 같으니라고...


그라운트는 경기도민이다.

매번 대면회의 때마다 서울에 온다.

미안!


D: 총평을 하자면... 연주 자체는 그렇게 특출 나거나 아쉬운 부분 없이 준수했다?

G: 피아니스트의 음악적 해석을 지휘자라는 조정자를 거치지 않고 바로 오케스트라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었던 것 같아.

D: 다만 그 때문에 솔로 피아니스트로서의 기량과 집중력을 양보할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고.

C: 저기, 얘들아 이건 좀 다른 얘기인데, 라흐마니노프의 타악기 사용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 동시대의 다른 작곡가들에 비해 타악기를 굉장히 제한적으로 사용하잖아.

D: 음... 확실히 라흐마니노프의 곡에 튜불라 벨(Tubular Bell)이 등장한다? 어색하긴 해.

G: 어... 이건 나중에 따로 원고를 하나 더 쓸 수 있을만한 분량의 얘기가 될 것 같은데...

D: 응, 파이팅!

G: 예??? 예????!!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정주행하기>,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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