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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da music studio Aug 02. 2024

[B열 리뷰]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정주행(1)

Part.1 - 부천아트센터, 시설이 너무 좋아!


지난 6월 29일,   그라운트는 큰 결심을 했다.

외출을 하기로 한 것이다!

심지어 행동대장인 콜다 없이 둘이서!

(콜다는 생계유지 이슈로 인해 동행할 수 없었다. Let artists art...)

목적지는 부천아트센터.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을 듣기 위해.

한 번의 연주에 세 개의 피아노협주곡이라. 가성비가 아름답다.


  '피아노 협주곡' 솔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협동하기도, 서로 경쟁하기도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작곡가와 연주자의 역량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형식이다(<피아노를 피아노로 연주하시오>에 그의 피아노 성격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이미지가 삽입되어 있다). 거대한 손을 가진 것으로 유명한 작곡가 중 하나인 라흐마니노프는 뛰어난 피아니스트였을 뿐 아니라 작풍에서도 주체되지 않는 현란한 손놀림을 요구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런 이유로 두터운 마니아층(나 또한!)을 가지고 있을 정도이다. 아마 클래식을 찾아 듣지 않는다고 해도 '크렘린 궁전의 종소리'라고도 불리는 그의 두 번째 피아노협주곡(Rachmaninoff - Piano concerto No.2, Evgeny Kissin의 연주)의 도입부는 들어본 적이 있을지 모른다(모두가 집중해 숨죽여 바라보는 첫 코드부터 웬만한 피아니스트들의 한계치만큼 넓게 손가락을 찢고 아주 조심스럽게 내야 하기에 음원의 첫 시작만 듣고도 피아니스트의 손 크기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한 번에 깔끔히 딴- 하고 소리가 난다면 손이 큰 편, 드라란- 하는 '아르페지오' 소리가 난다면 손이 그 정도로 크지는 않은 것. 사실 많은 피아니스트들은 최대한 원곡대로 연주하기 위해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아르페지오 처리하기 때문에 집중해 들어야 한다).

이러한 그가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 네 곡 중 무려 세 곡을 연달아 들을 수 있는 독특한 기획의 연주였다.

이건 못 참지!


그들을 움직이게 한 원동력은 역시 원고작성... 아니 음악이었다.

1. 부천아트센터 연주홀 음향이 그렇게 좋다며?

G: 형 근데 연주장 음향... 그런 거 들을 줄 알아? 나는 사실 큰 차이를 모르겠더라.

D: 나도 분석적으로 듣지는 않는 편인데 그래도 별로면 느껴지지 않을까...?

G: 귀가 좋네.

D:... 도대체 어떤 점에서?

G: 별로인걸 느낀다는 점에서ㅎ


어라?... 큰일 났다.


2.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세 곡을 전곡 연달아 연주한다고?

D: 연주자 체력 대단하다. 나는 하나만 쳐도 기진맥진이던데.

G: 그러게. 러닝타임이 얼마나 되려나?

D: 그래도 엄청 길지는 않을걸? 특히 1번이 되게 짧잖아. 30분도 안되지 않나?

G: 세 악장이 30분이 안 걸린다고? 잘 안 들어서 몰랐네.

D: 보통 2, 3번이 유명하긴 하지...

G: 맞아 1번은 당시 반응도 별로였다고 하잖아... 사실 나 2번 말고는 잘 기억도 안 나.

D: 어떻게 그럴 수가...(라흐마니노프 팬)

G: 그래도 들으면 기억나지 않을까?

D: 그건 그렇고 연주가 7시 시작인데 막차 놓쳐서 집에 못 돌아가면 어쩌지?

G: ...PC방?

D: 와, 비도 많이 오는데 벌써 불행하다.


진짜, 진짜 큰일 났다.


3. 피아니스트가 러시아인이야!

G: 피아니스트가 일리야 라쉬코프스키라는데 러시아인인가? 그럼 잘 연주하지 않을까?

D: 음, 러시아 작곡가의 곡에 러시아 연주자라니 과연 아주 미덥지 않을 수가 없군.


아무튼 들어가 볼까!




시설이 너무 좋아!


  쏟아지는 비를 뚫고 건물 앞에 도착했다. 연주회장임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만의 최소한의 디자인이 더해져 주변 건물들과 잘 어울리는 단정한 건물이다. 독특한 점은 로비 출입구 옆에 연주자를 위한 출입구가 있다는 것. 주차장에 더 가까운 것을 보아하니 아마 연주자들이 악기를 안전하게 운반할 수 있도록 마련한 장치일 터이다. 보통 백스테이지를 '백'에만 두려 하는 여타 연주회장과는 달리 밝고 세련된 입구에 마치 내가 연주자라도 된 마냥 기분이 고양된다.


네이버 로드뷰로 바라본 부천아트센터 출연자 출입구


  안으로 들어서니 지어진 지 일 년이 겨우 지난 신설 연주회장이어서인지 깔끔할 뿐만 아니라 설계에 있어 인상 깊은 지점이 몇 군데 눈에 띄었다.



모두를 위한 시야


G: 어라, 의자가 왜 이리 높지?

D: 아마도 시야확보를 위해?

G: 오, 일리 있어.

D: 그래서인지 좌석마다 발받침이 다 있어.

G: 오, 그러네.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 좌석


D: 그런데 왜 내 자리 의자만 색깔이 이렇게 칙칙하다냐?

G: 그러고 보니 전체적으로 중간중간 다른 색깔의 의자들이 있는데?

D: 왜지? 무슨 의미가 있나?

G: ......

D: ......

G: ......?

D: ......?

G: 없는 것 같은데?

D: 아무래도 그런 것 같지? 예쁘긴 하다.

G: 응, 다 똑같은 색이었으면 이런 느낌이 안 났을 것 같아.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 (사진: 부천아트센터 홈페이지)

  단색의 빨간 의자로만 채워져 있었다고 상상해 보니 다소 따분하고 딱딱한 분위기였을 것 같다.

특히나 밝은 노란색이 중간중간 섞여 있는 것이 활기차고 산뜻하다.

이 링크에 VR로 더 자세히 둘러볼 수 있다. (내가 예매할 좌석 뷰를 미리 확인할 수 있다니!)

아, 혹시나 부천아트센터 관계자분들이 보신다면 대관 협찬이라도 해주지 않을까 싶어 이렇게 칭찬하는 것은 아니다. 절대 아니다. 진짜 연락 주시지 마세요. 정말 안 그러셔도 되지만 꼭 하셔야겠다면 어쩔 수 없긴 한데...

콜다: 댄아, 이건 지워라^^
댄: 시러시러 내가 업로드하지롱.


+ 이후 콜다와의 대화 中

C: 그거 혹시 시야 제한석 같은 특별석 표시 아니야? 전화해서 물어볼까?

G: 그렇다기엔 너무 불규칙하게 분포되어 있었어요.

D: 촬영할 때 쓰는 자리인가?... 아냐, 암만 생각해도 그냥 디자인이야.

C: 내가 한 번 볼게!

C: (사진 검색)......

C: ......응, 그런 것 같네.

D: 응.

G: 네.


만장일치! 대동단결!



홀리몰리, 최첨단 전동난간!



D: 공연 시작 전... 전동난간이 내려옵니다?

G: 전동난간?

D: 여기 그렇게 쓰여있는데? 이거 자동으로 움직이는 건가 봐!

G: 에엥? 왜지?

D: 시야 확보?

G: 또?

D: 2층, 3층은 추락사고 방지용으로 난간이 있잖아. 공연 중에는 어차피 다들 앉아있을테니 시야를 가리지 않게 치워주겠다는 거지.

G: 아! 와! 대박!

D: 의자도 높고 난간도 그렇고 신경을 되게 많이 쓴 게 느껴진다.

G: 그러게. 시설이 너무 좋다!

D: 오, 움직인다, 움직인다! 카메라! 카메라!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 전동난간 작동모습

  끼임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천천히 작동한다.

2층 자리임에도 시야가 트여 감상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사실 그냥 신기하기도 했다!


눈이 너무 편해요


G: 형, 근데 혹시 저게 뭔지 알아?

D: 응? 천장에 흰색 동그라미? 음향 반사판 아닐까?

G: 그런가? 조명같이 보여서.

D: 에이, 조명은 따로 달려있는걸?

G: 그런데 조명이...(절대 아닐 거라 단정하고 흘려들어서 뒷말은 기억이 안 난다. 미안!)


잠시 후...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 조명


  헉! 너무 예쁘다! 조형물(?) 자체가 조명이 아니라, 조명 빛을 투과시켜 퍼뜨리는 장치였다!

그동안 캄캄한 객석에서 오랜 시간 동안 무대만을 집중하는 조명으로 인해 눈이 침침했던 과거의 기억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며 감동의 눈물이라도 날 것만 같다.

무대를 중심으로 은은하게 퍼지는 빛이 편안하면서도 밝게 연주장을 밝힌다.

연주자들도 해피! 관객도 해피!


그리고...

미안하다, 이 말하려고 어그로 끌었다...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 장애인석

  세상에! 지금까지 이렇게나 멀쩡히 기능하는 장애인석이 있었나! 비록 두 좌석뿐이지만 단차가 없는 널찍한 공간과 출입구 바로 앞 동선까지 확보되어 있는 모습에 처음 와보는 장소임에도 경계심이 허물어진다. 그러고 보니 역에서 연주장까지 오는 길은 가까울 뿐 아니라 평탄했고, 출입구는 경사로조차 필요 없었다. 시대상에 뒤처지지 않는 세련된 배려심을 담뿍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간단한 방법으로 세상을 배로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데...(후략)



그래서 음향이 대체 얼마나 좋길래?


  잠시, 잠시만! 연주를 본격적으로 감상하기 전에 무대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잠시 스크롤을 멈추고, 아래의 사진을 보며 10초 안에 정답을 찾으신 분은 댓글로 달아주시면 제가 기분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댄과 그라운트는 정면 좌석보다는 후면, 측면 좌석을 선호한다. 저렴할 뿐만 아니라 영상으로 쉬이 볼 수 없는 각도로 단원들의 은밀한(?) 사인들과 움직임까지 뜯어볼 수 있기 때문.


D: 피아노가... 관객을 등지고 있네...?

G: 어? 그러네!

D: 왜지...?

G: 형, 이거 지휘자 없이 연주하나 보다. 지휘자석이 없어.

D: 어라, 진짜네? 잠시만, 세 곡을 전부 지휘자 없이 연주한다고?

G: 그러고 보니 공연 정보에 지휘자 이름이 없었어!

D: 자신이 있으시다는 거지~


  댄과 그라운트는 이전 극악의 난이도로 유명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The rite of spring)>을 지휘자 없이 너무나도 훌륭하게 연주하는 공연을 보고 크게 감명받은 적이 있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같은 기억을 떠올리며 부풀어 오르는 기대감과 미심쩍은 마음 사이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일단 입장하는 연주자들을 향해 박수를 치기 시작하는데...

(Part2. 에서 계속. 두둥.)



editor_D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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