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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다래 Mar 25. 2022


린스를 버리자

오늘의 청소 - 강아지 린스

 유부가 집에 오고 나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것저것 선물을 많이 받았다. 대부분 키우던 강아지들이 쓰던 것인데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은 장난감이나 간식, 배변판 같은 것들. 그중 하나가 강아지 목욕용 린스다. 유부는 비누로 만든 강아지용 샴푸바를 쓰고 있는 중이라 굳이 린스에 대한 필요를 느끼지 못했는데, 유부를 원숭이 시기에 본 이웃분이 필요할 것 같다며 선물해주셨다. 향이 몹시 진하고 달콤한 강아지 린스를. 처음 몇 번은 잘 사용했다. 샴푸바는 거의 향이 없었던 것에 비해 린스는 씻기고 난 뒤 꽤나 좋은 냄새가 났고, 털도 부들부들해진 것 같았다. 하지만 유부는 목욕을 극혐! 하는 아이였고, 목욕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걸 스트레스로 여기는 것 같아 다시 샴푸만 하는 걸로 바꿨다.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한 순간 바로 처분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냥 그 제품은 우리 집 욕실 한 구석에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언젠가 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을까. 린스는 목욕용품을 두는 선반에 가지런히 놓인 채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사람이 쓸 수 있는 것이었으면 어떻게든 내 머리에 치덕치덕 발랐을 텐데-  집을 다 뒤집어엎어서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이 계절에, 그 린스는 내 눈에 딱 걸리고 말았다. 버리자.


 린스 버리는 법을 검색했다. 그냥 물에 흘려보내면 안 될 것 같아서. 이리저리 검색한 결과 나는 버리는 린스의 수많은 사용법에 대해 알게 되었다.(읭?) 난 버리고 싶은 거였는데? 내 마음과 같은 마음이었는지, 재사용 말고 버리고 싶다는 어느 지식인의 절규 끝에 달린 답변에서 버리는 방법을 찾았더랬다. 


 - 내용물은 모두 쓰레기봉투에

 - 본체는 깨끗이 씻어 분리수거


 누가 린스 버리고 싶어요, 방법을 알려주세요-라고 하면 위와 같은 간단한 답변을 해줘야지. 배운 대로 버리고 나니 본체 벽에 묻은 미처 떨어지지 않는 린스들이 아직 남았다. 약간의 물을 섞어 다시 한번 통을 힘차게 내리쳐 최대한 꺼낼 것을 꺼내고, 남은 잔여물은 다시 물을 섞어 내가 얼레벌레 배운(ㅎㅎ) 활용법을 여기저기 써보기로 했다.


 가장 간단한 건 욕실 수전 닦기. 린스 제형 그대로 묻혀 닦는 분들도 있지만, 난 털고 남은 린스에 물을 섞어 걸레에 묻힌 뒤 수전을 슬슬 닦아주었다. 오- 반짝반짝 윤이 난다. 샤워기 호스와 수전, 스테인리스로 된 것들은 모두 슬슬 닦아주니 반짝반짝한 욕실이 되었다. 조오금 귀찮은 중급 기술은 냉장고 닦기가 있다. 여러 사람이 만지는 냉장고이다 보니 지문이 여기저기 남을 때가 있다. 지문 묻는 게 신경 쓰였던 분들이라면 이 린스 묻은 걸레로 스윽하고 면을 닦아준다. 엄청 열심이신 분들은 분무기에 린스 물을 만들어놓고 수시로 닦으시던데, 난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느낌으로 닦았다. 내가 린스를 냉장고에 바르고 있다니. 부엌까지 온 김에 싱크대 수전도 한번 닦아준다. 고급 기술은 린스로 욕실 청소를 하는 거다. 변기도 닦고 거울도 닦고 바닥도 닦고 욕실 여기저기를 린스로 청소하는 것. 이건 정말 마음을 먹어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고급으로 분류하였다. (섬유유연제 대신 린스를 써도 된다는 글을 보긴 했지만 이건 섬유를 망칠 수도 있는 문제라 더 전문가이신 분들의 의견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난 고작 초급과 중급 그러니까 수전과 냉장고만 슬슬 닦았을 뿐인데 집에서 꽃향기가 가득하다. 타이핑을 하는 지금 내 손도 향기 가득. 온 집안이 꽃밭이 되었다. 꽃향기로 가득한 집에서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으려니 절로 나의 취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강아지 샴푸든 사람 린스든 뭐든 살 때 무조건 내 취향에 맞는 향을 구매해야겠다는 다짐이 절로 생긴다. 내 머릿결에 좋다고 강아지에 좋다고 한약 냄새든 꽃냄새든 선호하지 않는 향기를 구매하면 평생 맡을 냄새를 하루에 다 맡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견딜 수 없는 향이라면 어떻게든 깨끗하게 비워낸 뒤, 씻어서 버리시는 걸 추천합니다. 


 향기가 아주, 대단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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