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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다래 Aug 27. 2020

결혼 이틀 전 그에겐 무슨 일이 있었나?

결혼 5년 차 부부의 이사

 우리는 결혼 5년 차를 살고 있다. 결혼식에 누가 왔었는지, 분위기는 어땠는지, 누가 왔었는지 세세히 기억하고 종종 추억을 꺼내는 사람도 있겠지만, 단기 기억 보유자인 난 정확히 기억을 못 한다. 대략 그날의 풍경, 느낌, 인상적이었던 사건 한 두 개정도 기억하고 있을까. 결혼식이라는 걸 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고, 뭘 샀고, 당일엔 어떤 행동을 했는지, 신혼여행에선 뭘 했는지 그다지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건 없다. 재미있었다, 즐거웠다 정도?


 집에 있는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하며 서랍 속 묵혀뒀던 결혼 전후 흔적들을 꺼내 들었다. 호군이 꽁꽁 쥐고 내놓지 못하는 추억꾸러미. 웨딩업체 계약서부터 시작해 축의금 봉투 다발, 식권 뭉치, 각종 영수증들. 당시에는 다 필요하고 혹시 문제라도 생기면 하나하나 뒤져 확인할 요량으로 모아두었던 것. 신혼여행 갔을 때 우리가 쇼핑한 물건 영수증도 있는 걸 보면 그땐 그거 하나 버리는 것도 아쉽고 애틋했나 싶기도 하다. 그러다 발견한 종이 한 장. 뭐지? 하고 들춰보니 호군이 쓴 각서다.


1.     나 호군은 아내 갱양에게 존중받는 남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     나 호군은 ***여사님과 갱양과 하나님께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겠습니다

3.     결혼 전 실수로 분실한 200만 원, 20개월 동안 10만 원씩 용돈에서 제하겠습니다.


결혼 이틀 전 날짜로 되어있는 서명.


 ... 어? 이게 뭐니? 각서인데... 오빠가 결혼 전에 실수로 200만 원을 분실했다고? 이게 무슨 일이지? 내 모든 기억을 총동원해서 무슨 사건이었는지 기억을 해내려 노력해보려 하지만 도무지 기억나질 않는다. 왜 이 사람은 돈을 잃어버렸고, 그걸 각서로 남긴 거지?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실 각서를 쓴다는 건 어떤 일의 이행을 위해 상대방에게 주는 문서다 (다음 사전 발췌) 1번 항목과 2번 항목도 다짐을 위해 나에게 신실한 남편이 되겠다는 다짐 차원에서 작성했다고 볼 수도 있으나, 사실은 3번 항목을 위해 1,2번이 존재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은 비단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닐 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3번 항목이 존재하는 것인가???


 카톡으로 바로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카톡을 주고받는 텀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뭔가 자신도 생각나지 않은 척 거짓말을 지어낼지도 모를 일. 돌아오면 물어보기로 하고 호군이 돌아오는 시간만을 기다렸고, 파일을 꺼내 드는 등 슬슬 분위기를 살피다가 드디어, 물었다. 


 당황한 호군. 순진한 표정으로 띄엄띄엄 말을 꺼낸다.


“사실... 나도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데, 굉장히 억울한 사건이 있었던 거 같아. 이건 내 실수가 아닌데 갱양이 내 실수라고 해서 이런 걸 쓴 것만 같은 기분이야”


 하… 뭔가 생각나는데 지금 모르는 척하고 있는 건 아니야??? 펄쩍 뛰며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손사래 치는 호군. 자신의 실수가 아님은 물론 나의 강요로 쓴 각서라고 하는 걸 보니 한동안 우리가 너무 행복했었지. 암요. 내가 괜히 그랬겠니!!! 화를 내고 싶지만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억울...) 


"우선 난 내가 10만 원씩 20개월을 용돈에서 제한 기억이 없어. 그 부분부터 명확하게 하자. 호군은 나한테 아직 200만 원의 빚이 있는 건 맞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몸부림치는 호군. 서로 그럼 양보해서... 이 사건이 기억날 때까지 잠시 200만 원의 지급 여부는 묻어두기로 했다. 서랍을 좀 더 뒤지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단서가 나오지 않을까? 어떻게든 기억해 내고 말겠다는 다짐!


 서랍 정리에 대한 흥미가 1 증가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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