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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다래 Aug 31. 2020

책 정리 시작하기

결혼 5년 차 부부의 이사

 오늘은 마음먹고 책장 정리를 하는 날. 책 욕심은 많아 관심 있다거나 누가 재미있다는 책이 보이면 우선 사서 쟁여놓는 스타일이라 읽지 않고 쌓여있는 책이 어마어마하다. 게다가 만화책 전 권을 모으겠다며 생각날 때마다 한 권씩 들여놓아, 만화책까지 포함하면  집을 여러 바퀴 둘러싸고도 남을 정도의 양. 이 많은 책을 다 들고 이사 가는 것도 어렵고, 다시 읽는다고 장담도 어렵다. 별 수 있나, 정리해야지.


 하루 안에 끝낼 수 있다면 그것 참 행복하겠으나, 잡동사니를 비워도 비워도 계속 비울 게 생겨나는 것처럼 이일도 하루 안에 끝내지 못할 거라는 걸 안다. 우선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을 구분하고 그중에서 다시 순위를 매겨 가져 갈 책을 고르고, 또 골라야겠지. 이사 가기 전까지 목표는 정말 가지고 싶은 책 100권만 들고 이사 가는 것. (아, 만화책 제외 ㅠ) 과연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으나 목표가 있으면 어떻게든 하겠지;;




 일 순위는 내가 집에 두고 여러 번 다시 읽고 싶은 책. 여행 갈 때 아무 책이나 한 권 챙겨 들어도 절대 실패할 리 없는 아이들. 그런 책들은 절대 팔 수 없다. 지금 나에겐 이슬아나 김애란, 김은영 같은 작가의 책. 나에게 용기나 영감을 주는 책은 모아 두고 위로가 필요한 날 한 권 골라 짧게 읽으면 잡생각도 사라지고 뭐든 해보자는 힘이 생긴다. 그런 글들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는데, 요즘은 만나기 쉽지 않다. 적게 읽으니 발견이 어렵겠지만. 


 다른 일 순위는 선물 받은 책. 친구나 선물한 사람의 메모가 남아있는 책이면 더더욱. 이런 책은 중고서점에서 매입도 안된다. (그 부분만 찢어서 판매하면 되겠지? 하는 분이 있겠지만, 어림없다. 이미 훼손된 책이라 가치 없다...) 결혼할 때, 직장을 그만둘 때, 이런저런 감사의 의미로 받은 마음들. 이렇게 마음이 담겨온 책들은 함부로 다루기 어렵다. 


 이렇게 구분한 책은 책들끼리 책장에 모아놓는다. 책장의 가장 왼쪽 라인은 내 일 순위 책들이 있는 라인. 이미 나름의 기준으로 책장 정리를 하였지만, 책 정리가 끝나면 어차피 다시 정리가 필요한 책들이니 바닥에 늘어놓지 않고 책장에서 구분하는 게 낫다.


 이 순위는 사놓고 읽지는 않았는데 팔기엔 왠지 아까운 책들이다. 이 책들을 다시 되판다고 해도 책 가격의 반 이상은 돌려받을 수 있는 책들이지만, 안 읽고 팔기엔 죄책감이 느껴진다. 이 작가가, 이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샀으므로 한 번은 읽어야겠다 마음먹은 책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이기적 유전자, 장애령 산문집 같은. 내 지식 함양에 도움이 되고, 정서적 만족감을 줄 것이라고 기대해 구매했지만, 지금은 궁금한가? 싶은 미묘한 경계에 있다. 이 책들은 이사 가기 전까지 어떻게든 읽어내고 되팔아 버리겠다는 다짐. 읽어보니 세상 내 취향이거나,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책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은 그 밖의 책들이다. 읽지 않았어도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거나, 읽었는데 다시 읽을 것 같지 않은 아쉬움이 전혀 남지 않는 그룹. 출판 연도가 오래되어 지금 여행 가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도움되지 않을 여행서, 재미있게 읽었지만 한 번으로 족한 에세이들- 이런 삶의 방식도 있구나 알았으니 되얐다 싶은, 오래오래 전 공부했던 업무 관련 도서가 포함되었다.


 이런 책들은 우르르 꺼내 한 곳에 쌓아두고 다시 둘로 구분한다. 중고서점에 판매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서점 어플에서 ISBN 촬영만 하면 매입 여부와 가격을 알려주니 꽤나 편리하다. 매입되는 책들을 보면 그나마 고가인 그룹과 균일가로 저렴하게 매입되는 그룹으로 나뉜다. 그러나 몇 번 찍어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 책은 나에겐 필요 없지만 새 책으로 구입하려면 몇만 원은 줘야 하고, 이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겐 꼭 필요한 책이라 분명 꾸준히 판매될 책인데 매입 가격은 고작 천 원 남짓. 기가 막히는 가격에 욕이 나오지만 빠른 처분을 원하는 사람들에겐 그렇게라도 떠나보내야겠지; 그러나 나에겐 아직 시간이 있으니 난 좀 더 합리적?으로 보낼 방법을 궁리한다.




 이렇게 세 그룹으로 구분하고 서점 어플로 정리하는 것까지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물론 매일 이것만 하지 않았다. 책장 한 칸만 하는 날도 있고 서점 어플로 가격을 찍다가 열 받아서 휴대폰을 던져버린 날도 있다. 일주일 넘게 정리해서 100권만 남겼냐고? 무슨; 쓱 봐도 그 세 배는 넘게 남아있다. 숫자에 맞추려고 애쓰기보다 구분이 쉬운 것들 먼저 처리하고 같은 방법으로 두 번, 세 번 더 찾아낼 계획. 


일 차 정리는 끝냈으니, 이제는 좋은 주인을 찾아 떠나보낼 차례. 


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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