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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다래 Feb 08. 2021

당근의 기쁨과 슬픔

오늘의 청소 - 당근 마켓 이용하기

 이사가 코 앞으로 닥쳤을 때, 당근에 물건을 올리고 거래하는 일이 끊이지 않았는데- 이사를 하고 난 지금은 예전만큼 열심으로 당근을 이용하진 않는다. 지내며 발견되는 물건들을 적당히 사진 찍어 올리고, 언젠가 필요한 누군가 검색해 사가겠지 하는 마음으로 방치하는 당근 생활이랄까. 빨리 물건을 줄여야 한다는 부담이 사라지니 그저 당근은 내게 중고거래장터일 뿐이다.


 이렇게 심심한 당근 생활에도 기쁨과 슬픔은 존재하는 법. 고작 몇천 원에 물건을 건네지만 내 입꼬리가 하늘까지 치솟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도대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오사카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구매한 미니언즈 팝콘 통을 당근 마켓에 올렸다. 눈알도 요리조리 돌아가고 퀄리티도 좋은 녀석이지만 물건을 줄이고 있는 우리 집에선 더 이상 내게 기쁨을 주지 못하는 아이이기에 과감하게 더 좋아할 만한 분께 드리기로 했다. 무료 나눔으로 올리면 가져가셔서 되파는 경우도 봤기 때문에 3000원이라는 가격을 책정했다. 같은 제품을 판매하는 분들과 비슷하거나 조금 저렴한 가격. 그래서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굳이 우리 집 앞으로 와 그 정도의 가치를 지불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올리고 한 일주일쯤 지났을까? 채팅창에 알람이 떴다. 구매의사가 있다고 어디서 거래할 수 있냐고 상태는 괜찮으냐고 이것저것 물으신다. 최대한 성실하게 답변을 드리니 우리 집 근처가 어딘지 모르겠다며 본인 집 근처에서 거래하면 안 되겠냐고 물으신다. 뭐- 못할 일은 아니지만 사실 나도 그분 댁이 정확히 어딘지 알 수 없어서 중간에 있는 장소는 어떻겠냐고 여쭈었더니 괜찮다 하신다. 그날 저녁에 만나기로 하고 알람을 맞춰두었는데 연락이 왔다. 사정이 생겨 오늘은 어렵겠노라고. 내일은 어떠시냐고. 기분이 쌔-하긴 했지만, 우선 알겠다 말씀드렸다.


 다음날 약속 시간을 다시 정하고 알람을 맞춰두었다. 시간 약속을 하고 내가 늦는 경우도 있었기에 가능한 약속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알람을 맞춘다. 약속한 시간 한 시간 전에 채팅이 왔다. 몇 시에 어디서 뵙는 거 맞죠? 하셔서 네 맞아요- 하고 답장을 했다. 옷을 챙겨 입고 물건을 챙기고 다시 한번 채팅창을 확인했다. 그리고 두 눈을 의심했다. 분명 방금 전까지 나와 대화하던 분이 알 수 없음이라고 뜬다. 어? 뭐야? 앱을 종료하고 다시 로그인해봤다. 대화 상대방 이름에 알 수 없음이라고 뜬다. 뭐지? 도대체 무슨 일이지?


 구매 직전 너어무 귀찮을 수 있다. 굳이 나에게 필요 없는 물건인데 내가 이렇게까지 나가서 사야 하나 생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그냥 그저 상대방에게 말하면 그만 아닌가? 죄송해요. 구매의사가 사라졌어요. 생각해보니 좀 귀찮아요. 솔직하게 말하면 나도 솔직하게 저도 거기까지 가는 건 사실 좀 귀찮았어요. 괜찮아요. 할 텐데. 솔직하게 말했다가 거래 상대방에게 욕먹은 경우가 있어서 그러셨나? 상대방이 평판을 낮춰서 거래 온도가 낮아질까 봐? 굳이 탈퇴까지 하실 일인가- 주섬주섬 옷을 옷걸이에 걸으며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이렇게 탈퇴하고 다시 아무렇지 않게 가입해서 다른 분과 거래를 시도하고 여의치 않으면 다시 탈퇴하는 건가.


 그렇게 미니언즈 팝콘 통은 우리 집 장식장 한 구석을 차지하게 되었다. 끌어올리기도 가격 할인도 없다. 정말 원하는 분이 계시면 내가 한 달 전에 올렸든 두 달 전에 올렸든 개의치 않고 찾아낼 거라는 걸 아니까. 그리고 다시 채팅창에 알람이 떴다. 안녕하세요- 미니언즈 구매하고 싶어서 연락드렸어요! 인사부터 발랄하신 분. 거래 장소와 서로 만날 시간을 확인하고 본인이 찾아오는 시간에 내가 다른 일정이 있지는 않는지 내 상황을 여러 번 살펴주신다. 그저 대화 몇 마디 오간 것뿐인데 기분이 좋다.


 도착 5분 전에 다시 알람을 주고, 도착해서는 본인의 착장과 헤어스타일도 알려준다. 우리 집의 당근 거래는 상대방이 남자인 것 같으면 호군이 여자인 것 같으면 내가 나가는데- (ㅎㅎ) 헤어스타일을 들으니 여자분이시다. 집 앞으로 미니언즈를 들고나가니 나를 보고 방긋 웃는 여자분이 서계신다. 보자마자 감탄을 쏟아내며 생각보다 퀄리티가 너무 좋다고 좋아해 주시는 거래자님.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 헤실헤실 웃으며 아이를 떠나보낸다. 우리 집 귀한 아이는 저 댁에서 사랑받을 거라는 확신이 드니,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숨길 수 없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당근에 상품을 올릴 것이다. 사놓고 몇 번 사용하였는데 그렇게까지 필요가 없는 제품일 수도 있고, 좋아하는 물건이지만 더 이상 가지고 있는 게 어려워 내놓는 경우도 있겠지. 애정이 담뿍 담긴 물건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물건일 수도 있다. 내 애정이 담뿍 담겼다고 비싸게 내놓으면 거래 확률은 떨어지고, 무료로 내놓아봤자 내 선한 의도를 상대방이 100% 받아들인다는 확신도 없다. 나도 상대방도 아쉽지 않은 가격으로 내놓고 부디 그 물건이 서로에게 기쁨을 주는 거래이길 바라는 게 당근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의 마음이 아닐까.


 3000원에 내놓은 미니언즈 팝콘 통 하나를 두고 다양한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 한번 당근의 기쁨과 슬픔을 느낀다. 내 소중한 물건이 나보다 더 좋은 주인을 만나 제 쓰임을 다하는 것을 보는 게 당근의 기쁨이라면 지키지 못할 중고거래 하나에 아이디를 삭제하는 분의 슬픔도 있다. 지금은 그저 슬픈 경험보다 즐거운 경험이 많길 바라는 마음뿐. 내 물건이 좋은 주인을 만나 선하게 쓰임 받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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