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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다래 Feb 03. 2021

소창 행주를 만들어보았습니다.

오늘의 청소 - 행주

 거리에서 나눠주는 행주나 놀러 가서 구매한 디자인 행주 따위를 사용했었는데, 집에 그렇게 굴러다니던 행주를 다 사용하고!!! 드디어 내 마음에 드는 행주를 살 수 있게 되었다. 사고 싶었던 행주는 진즉 마음에 점찍어 두었었다. 요즘 제로웨이스트와 함께 검색되는 소창 행주. 그럼 저도 한번- 사용해 보겠습니다. 뭐가 그렇게 좋은 건지 써보면 알겠죠-




 소창 행주를 검색창에 검색하니 수많은 쇼핑 리스트들이 주르륵 뜬다. 사용 후기도 많고, 다들 좋은 소창으로 제대로 만들었다고 광고 가득. 가격을 보고 흠칫, 한번 놀란다. 가로 세로 내 두 뼘만 한 사이즈의 행주 한 장에 2천 몇백 원. 좋은 면으로 만들어서 가공까지 해서 보내주는데 2천 원은 저렴한 가격이다. 그런데 배송비 이것저것을 따지니 5장만 구매해도 만 오천 원. 골똘히 생각하다 소창 원단을 검색해봤다. 강화도에서 무형광 무표백 제품으로 만든다는 원단은 얼마인가. 한필에 2만 원 조금 안 되는 가격. 한필이 어느 정도지? 30인치라는데 30인치가 어느 정도지?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5장보다는 더 나오지 않을까? 싶어 원단으로 주문.


  다음날 바로 택배가 도착했다. 아- 일거리는 좀 느지막이 도착해도 되는데, 눈치 없이 빠른 택배로구나. 느릿느릿 택배를 집어 드는데 제법 묵직하다. 어? 봉투를 뜯으니 뭔가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천 뭉치가 들어있다. 봉투에서 꺼내 손에 쥐자 헛웃음이 나왔다. 진짜? 이렇게 많다고? 내가 이걸 다 행주로 만들 수 있다고? 그냥 다섯 장 살걸- 나 무슨 짓을 한 거야. 미싱이라도 있으면 드르륵 박으면 그만이겠지만, 미싱이라니- 그런 건 우리 집에 없다. 오직 손바느질로 이 천을 모두 행주로 만들어야 한다.


 한숨을 한번 쉬고 그래- 얼마나 걸리나 한번 해보자 싶어 가위를 꺼내와 천을 적당히 잘랐다. 천 자르기도 쉽지 않다. 삐뚤빼뚤 자르니 올이 스르르 풀린다. 나 왜 사서 고생이지? 시시각각 현타로 어질어질했지만, 멘탈을 부여잡고 만드는 방법 검색. 약간의 틈(10cm 정도?)을 두고 사방을 바느질한 뒤, 뒤집어서 그 틈을 다시 바느질로 메꿔주면 한 장이 완성된다.


 감침질을 해야 하나- 그냥 바로 박음질해도 되겠지? 중학교 가정 시간 이후로 이렇게 진지하게 바느질하는 건 처음이다. 구멍 난 양말 꿰맬 때나 대애충 하는 바느질이었는데 이렇게 좋은 천에 각 잡고 줄 맞춰 바느질을 하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더듬더듬 줄을 맞춰 한 장을 완성하니 40분이 넘게 걸렸다. 하. 이거 한 장 만드는데 40분이라고? 2000원이면 살 수 있는 행주 한 장 때문에 내 40분을 버렸다. 5장 만들면 몇 시간인 거야!!! 다시 현타가 몰아친다.


 한 장을 만들고 나머지는 우선 보류. 다른 할 일도 많은데 내가 이거 하겠다고 앉아있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저녁에 호군이 돌아와 바닥에 처박힌 소창을 보고 껄껄 웃는다. 이거로 뭐한다고?? 호군을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흘기며 한마디 했다. 한마디만 더해라... 니도 바느질 시작할 줄 알아라. 저녁을 먹는 호군 옆에서 다소곳이 다시 바느질을 시작했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바느질을 하지 말고 tv를 보거나 손이 놀고 있는 시간을 이용해 틈틈이 하자 싶었다. 그리고 하나 더. 어차피 내가 쓸건대 뭐 되게 예쁘게는 하지 말자- 거까이 꺼 대애충- 뜯어지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호군과 그날 있었던 일을 도란도란 얘기하며 tv를 보다 깔깔거리며 바느질을 하자 금세 한 장이 완성됐다. 혼자 할 땐 시간이 그렇게 아까웠는데- 노는 시간에 손만 움직인다고 생각하니 일이 훨씬 수월한 느낌이다. 그렇게 뚝딱뚝딱 열 장 완성. 일주일은 걸린 거 같다. 처음엔 어려웠지만 요령이 생기니 뚝딱 한 장을 만들어낸다. 시중에 파는 사이즈보다 반쯤 작게 만들었다. 너무 클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그리고 드디어 삶기. 보글보글 끓는 물에 과탄산소다를 넣고 세 번 푹푹 삶아 말렸다. 그렇게 내게 10장의 소창 행주가 생겼다.


 그렇게 소창을 다 사용했느냐? 무슨... 소창은 아직 한참 남았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서 새 거라고 해도 믿을 지경이다. 내가 좀 더 열심을 더한다면 나머지 소창도 열심히 손바느질로 만들어 주변에 선물도 하고 쟁여두고 사용하면 좋을 텐데- 이 소창 행주는 나달 나달 할 때까지 사용할 마음인지라 일 년이 지나도 10장 사용이 어려울 것만 같다. 주변에 선물하기엔 다른 더 좋은 선물이 많다. 내 손바느질은....


 나머지 소창은 사진을 찍어 당근에 올렸다. 미싱 있는 분이 가져가시면 정말 좋은 행주를 만들어 사용하실 수 있을 거예요-라고 눈물 한방울을 담아. 올리자마자 사겠다고 하신 분이 계셔서 잘 보냈다. 더 좋은 주인 만나 더 아름다운 작품으로 태어나렴.




이렇게 갖은 고생을 하고 태어난 행주는 지금 우리 주방에서 열 일 중이다. 온갖 김치 국물과 찌개 국물을 닦기도 하고 깨끗한 바싹 마른행주로 그릇의 물기를 닦아내 찬장에 착착 넣기도 한다. 냄새가 나는 것 같으면 냄비에 베이킹소다 한 스푼을 넣고 푹푹 삶아 바짝 말린 뒤 다시 사용한다. 정말 만족도 200%. 전엔 행주 삶는 일이 두려웠는데 (무슨 천으로 만드는지 몰라 다 풀어질까 봐?) 몇 번 삶아본 경험이 있다고 지금은 여차하면 삶아 깨끗하게 사용한다.


 이건 언제까지 사용할 수 있을까? 한 달? 두 달? 사용하고 있는 지금은- 구멍 송송 뚫릴 때까지 사용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한 땀 한 땀 내 손으로 만들었다고 애착 행주가 되어버렸다. 버릴래도 버려지지 않는 아이템. 열심히 애끼며 삶아가며 구멍 송송 날 때까지 한번 같이 지내보자. 격하게 애낀다 행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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