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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다래 Oct 14. 2021

산책은 하루에 세 번

부족한가요? 하지만 이게 한계예요.

 유부를 실외배변견으로 키우기로 결정하고 하루에 두 번하던 산책을 네 번으로 늘렸다. 7시에 아침산책을 30분~1시간 정도 다녀와 씻고 집을 정리한다. 빨래를 돌리고 바닥을 쓸고 어제 설거지한 그릇들을 장에 옮겨 담는 매일 하지만 표시 나지 않는 일들. 11시부터 아점을 준비해 간단히 먹은 뒤 잠깐 유부와 산책. 호군이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다시 30분~1시간 산책. 자기 전엔 잠깐 나가 마지막 소변.


 처음 소변을 참기 시작했을 땐 문 앞으로 나가기만 해도 실수를 반복했는데, 이젠 어느 정도 요령이 생겼는지 잘 참았다가 풀밭으로 달려가 긴 오줌을 눈다. 천천히 숫자를 센 적이 있는데 내가 이십을 넘게 세어도 오줌이 흘러넘친다. 와- 유부의 방광은 대단하구나. 그렇게 긴 오줌을 누고 난 뒤 신나게 뛰어다니며 냄새를 즐긴다. 묶여있었던 시간들이 안쓰러워서, 집에서 가만히 나만 바라보고 있는 시간이 안타까워서 그에 대한 보상으로 밖에선 신나게 달리게 해 주었다. 


 이렇게 하루 네 번을 산책하다 보니 유부도 어느새 적응이 되었는지 오줌을 누는 시간이 예전 같지 않다. 아니, 이젠 밖에 나가도 꾹 참고 오줌을 누질 않는다. 마킹하는 법을 배워 여기저기에 열심히 자기 영역을 표시하고 있다. 강아지에 대한 이런저런 내용을 찾아보면 마킹이 일종의 인스타 좋아요♡와 같은 의미라고 하는 것을 보고 그렇구나- 싶어 마킹에 대해 크게 간섭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자식이 정말 하지 말아야 하는 곳 - 꽃집에서 밖에다 진열해 놓은 화분에다가 마킹을 하려고 하는 걸 보고 화들짝 놀랐다. 내가 이렇게 큰 화분을 살 능력이 없어 유부야!!! 하며 휙 끌어당겨 내 지갑을 보호. 이후부턴 상가 산책 시엔 가능한 길 가운데로 다니려고 하는 편. 유부의 실수를 줄이고 내 지갑을 살리는 최선의 방법이다.


 문제는 자기 전 외출이다. 전엔 풀밭 위에만 가도 주르르 싸던 오줌이 지금은 절대 나오지 않는다. 밤 산책이 시작된 것으로 착각해 다시 오줌을 꾹 참는다. 밤늦게 오줌만 싸고 들어오려고 잠깐 나간 거라 빨리 다시 들어가야 하는데 유부는 오줌을 싸지 않고, 어라? 안 싸? 그럼 집에 들어가자- 하고 당기면 또 들어가지 않겠다고 집 앞에서 뻗댄다. 유부의 고집에 맞춰 동네를 한 바퀴 돌거나 안고 들어가는 것도 한두 번이지 계속해서 유부의 투정이 심해지고 난 결단을 내려야 했다. 안 싸면, 안 나간다. 안 나가는 게 나도 너무 편하다.


 그날 밤 오줌을 싸던 습관이 있었던 탓인지 거실에 소변 실수를 했다. 어머! 실내 배변하는 건가- 싶어 배변패드를 깔고 두근거리며 기대했건만 딱 한 번이었다. 딱 한번 실수를 한 뒤로 유부는 밤에는 물을 먹지 않는다. 그리고 새벽 3-4시쯤 들리는 유부 물 마시는 소리. 그 시간에 물을 마시면 오줌을 딱 참을 수 있는 수준인가 보다. 산책 나가는 횟수에 맞춰 급수량도 조절한다고 하더니, 정말 스스로 조절하고 있다. 


 배변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을 조절하는 유부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산책 시간을 가능한 정확히 지키는 것. 유부의 방광은 7시부터 움찔거리기 시작하는 걸 알기에 가능한 평일은 무조건 7시, 늦잠을 자고 싶은 주말은 늦어도 8시엔 산책을 나간다. 침대에 더 누워있고 싶다가도 유부가 탁탁 거리며 거실을 돌아다니고 방 문 앞을 얼씬거리면 몸이 저절로 일으켜진다. 몸은 피곤해 죽을지언정 내 정신은 유부를 살리겠다고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챙긴다. 


 유부에게 최고의 보호자가 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대신 성실한 보호자가 되기로 했다. 지금 내가 유부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이다. 성실히 노력해서 너에게 최고가 될 수 있도록 할게-


우리 유부 앞 발 좀 보실래요? 발레하면 너무 잘할거 같이 생겼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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