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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다래 Oct 15. 2021

이빨이 빠져요-

이빨이 빠지면 오 개월이라면서요;

 유부는 재능이 있다. 그것도 정말 어마 무시한 재능. TV에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축복받은 재능이다. 그것은 바로바로 바로- 눈 깜짝할 사이에 장난감의 목숨을 끊어놓는 일!!!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이 아인 어떻게 장난감을 가져다주면 그 자리에서 눈을 파고 실밥을 헤쳐 안에 들어있는 솜으로 집안을 난장판을 만들어 놓는 건지 경이롭다. 이 생명체는 자꾸 나에게 경이가 무엇인지 알려주는구나.

나 혼자서 그런건 아니지 않을까요...?


 천으로 만든 장난감만 쥐어주면 그날로 끝장을 내는 탓에 고무나 실리콘으로 만든 장난감을 쥐어줘 보지만 이리저리 놀다 결국 가지고 오는 건 천으로 만든 장난감이다. 그 부드러운 촉감이 입 안에 걸리는 까슬까슬한 무언가가 유부의 마음을 빼앗아간 모양. 아무리 구멍 난 곳을 메워서 다시 던져줘도 그 생명이 오래가질 않아 뭔가 방법이 필요했다. 좀 오래갈만한 다른 장난감을 찾자.


 애견용품 매장에서 우리가 고심 끝에 고른 제품은 우드스틱. 뜯는 걸 좋아하는 아이이니 이빨을 사용하는 우드스틱도 좋아하리라 생각했다. 제일 큰 사이즈를 고를까 하다가 참고 중간 사이즈로 선택. 유부에게 주니 예상대로 두 손으로 꼭 쥐고 하루 종일 붙들고 있다. 갈갈갈갈- 열심히 긁어대는 유부. 다른 인형의 목숨도 살렸고 유부의 욕구도 해소한 것 같아 만족스럽다.


 우드스틱을 던져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하얗고 작은 뭔가가 소파 밑에 떨어져 있는 걸 봤다. 뭐지? 싶어 확인하니 유부 이빨이다. 으헉. 너무 단단한 걸 줬나 보다, 이빨이 빠지고 말았어!!! 어떻게 해!!!!! 난리가 났다. 우드스틱을 압수하고 천 인형을 다시 쥐어줬다. 천인형도 좋다고 디스코를 추는 유부. 혹시나 싶어 유부가 머무는 자리를 여기저기 살폈다. 그렇게 발견되는 이빨들. 찾아보니 3개가 더 있다. 


 어느 이빨이 빠진 거야, 유부를 안고 이빨을 살폈다. 송곳니 하나가 빠졌고 안쪽 이빨 몇 개가 빠진 듯. 구멍 난 이빨들 사이로 유부의 분홍 혓바닥이 보인다. 우드스틱 탓인가. 나이에 비해 너무 단단한 장난감이었나. 병원에 한 번 가봐야겠다 싶어 목줄을 챙겼다. 어차피 심장사상충 약을 먹으러 한 번 갈 때도 되었다. 집에서 발견한 이빨을 들고 병원으로 출동. 유부는 뜻밖의 산책에 신이 나는지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닌다.


 병원에 도착해 선생님께 이빨을 보여드리니 괜찮다고 유치가 빠지는 거라고 설명해 주신다. 아, 강아지도 이빨이 빠지는구나. 이갈이가 있었을 텐데 괜찮았느냐고, 집 난장판으로 만들어놓고 벽지 같은 건 뜯지 않았느냐고 오히려 되물어보신다. 우드스틱을 줬다고 말씀드리니 그런 장난감으로 계속해서 간지러움을 해소시켜 주면 된다고 하시며 강아지는 대체로 5개월 정도에 이빨이 빠지기 시작한다고 하신다. 불과 한 달 전엔 3개월이었는데 지금은 5개월 차 강아지가 되었다.


 집에 돌아와 온갖 장난감을 다 꺼내 유부에게 쥐어줬다. 벽지나 바닥을 뜯으면 안 되니까. 어떤 강아지들은 유치가 제대로 빠지지 않아 병원에서 빼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난 그저 무심해 지기로 했다. 저렇게 온 힘을 다해 장난감을 물어뜯고 난리를 치는데, 안 빠질 수가 있나? 지금 당장 이빨이 다 빠져버린다고 해도 믿을 지경인데 이빨이 안 빠질 수가 있다고? 난 도저히 못 믿겠다. 그렇게 한 개씩 두 개씩 빠진 이빨은 차곡차곡 책상 구석에 모아두었다. 버리고 싶었지만 유부 몸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니까 도저히 쓰레기통으로 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애지중지 액자로 만들어 기념하고 싶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고)


 이빨이 빠지는 댓가로 난 강아지 인형 빨래를 자주하게 되었다. 인형을 물고 뜯으며 피가 묻어 나오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에. 뭐 이정도 쯤이야. 가끔 빠진 곳에서 이빨은 제대로 나나 궁금하기도 하는데 굳이 열심히 들춰보진 않았다. 내가 매일 유부 이빨을 들여다본들 그게 내 생각처럼 쑥쑥 자라겠느냐고요. 무심히 시간을 흘려보내며 자연스레 유부의 성장을 지켜보기로. 


 너의 성장에 내가 굳이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지. 너가 자라는 속도를 내 지식이나 내 몸이 따라가지 못할까 오히려 걱정이다. 같이 커가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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