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벼다래 Oct 18. 2021

사람의 식탁을 탐하지 말라-

너는 니꺼 먹고, 나는 내꺼 먹자.

 유부와 가족이 되기 전, 내가 명절마다 만나는 강아지는 남동생 부부가 키우는 말티즈 두 마리였다. 눈이 동그랗고 비쩍 말라서(...) 식사시간마다 옆에 다가와 무릎에 앉겠다, 옆에 있겠다 애원하면 오구오구 그래라그래- 하며 무릎에 앉히곤 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동생이 보지 않는 틈을 타 식탁 위의 고기를 한 점씩 집어 입에 쏙 넣어주었다. 물론 간을 한 음식은 절대 주지 않았고 수육이나 소고기 구이 같은 내 기준 나름 안정성(?)을 획득한 음식 기준. 동생 부부는 그렇게 음식을 나눠줘서 밥을 안 먹는다고 난리였지만, 그때마다 난 일 년에 한두 번인데 매정하다며 입을 삐죽여댔다.


 나를 만나기 전 유부는 뭘 먹고 자랐는지 모르지만 분명 식당 앞에 묶여있는 동안엔 식당 아주머니의 잔반을 먹었다고 들었다. 낯선 강아지가 덜컥 주차장에 묶여있는데 밥을 주긴 줘야겠고, 식당을 하고 있으니 남은 밥을 주셨던 것 같다. 그걸 안 다른 동네분이 사료를 가져다주셨다고는 들었다. 잔반도 맛있게 먹고 사료도 맛있게 먹을 줄 아는 아이. 


 식사를 준비하러 주방에서 이런저런 채소들을 꺼내 손질하기 시작하면 유부는 칼질하는 도마 밑에 자리를 잡는다. 오이나 당근 같은 걸 한 번씩 썰 때마다 한 조각씩 입에 쏙 넣어줬는데 버릇이 되었는지 기다리는 모양. 유부가 먹을 수 있는 야채면 다행이지만 양파나 파 같은걸 썰 때면 긴장이 되곤 했다. 혹시라도 조각이 떨어졌는데 유부 입으로 쏙 들어가 버리면 안 되니까. 이런 나와는 달리 호군이 칼을 쥘 때엔 다가오는 유부를 단호히 물리친다. 안돼, 저리 가. 토막 야채를 줄 때도 나처럼 입에 넣어주는 게 아니라 밥그릇에 한 두 조각 떨어뜨려준다. ...잔소리를 조금 들었다.


 저녁식사 시간이 되면 유부는 자꾸 옆으로 와 내 입을 핥으려 들었다. 내 입 주변에 묻는 음식의 잔해라도 느끼겠다는 애절한 몸부림. 뽀뽀를 하지 못하게 막으면 팔이라도 손이라도 발이라도 핥으며 애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도 먹을 줄 알아, 나도 먹어봤어-라고 하는 것 같다. 그 모습을 보는 호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 번째 손가락을 펴서 안돼!! 를 연발. 화를 내는 호군의 모습에 축 쳐진 유부는 털썩 주저앉아 기운 없이 몸을 말고 눕는다. 그리고 호군이 나를 보고도 손가락을 들어 안돼!! 뽀뽀 금지!! 하고 말했다. ...또 잔소리를 들었다.


 유부의 모습이 애처로워 식사시간마다 간식을 준비해 밥을 먹는 우리 옆에 앉아있으면 하나씩 간식을 주곤 했다. 난 들켰고(ㅠㅠ), 또 한소리를 들었다. 우리의 식사시간이 유부의 간식시간이 되어선 안된다는 단호한 호군의 말. 너는 유부가 불쌍하지도 않냐!! 하고 유부의 입장을 항변해보았지만, 식탁 위로 발을 올리고 식탁을 핥으려는 유부의 행동을 보며 언제 유부가 식탁 위로 올라와서 음식을 먹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라는 말에 정신을 차렸다. 식탁 위의 김치찌개도 양파절임도 청양고추도 유부에게는 독약이 될 수 있는데 내가 너무 안이하게만 생각했구나.


 이후 우리의 식사시간에 유부는 접근 금지, 뽀뽀 금지, 간식 금지, 사람의 음식 금지다. 더불어 남동생네 강아지들에게 내밀던 나의 맛있는 손길도 딱 끊었다. 사람 음식이 얼마나 강아지들에게 해로운 줄 알겠기에. 일 년에 한두 번인데 괜찮지 않냐는 나의 말은 그냥 철없는 애정일 뿐이었다. 그 한두 번으로 강아지들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맛에 대해 욕심을 부리기 시작하고 사료를 거부한다. 그렇게 강아지와 한바탕 신경전을 벌여 승리하면 다행이지만 패배한다면 그다음부턴 강아지 세상. 마음 약한 주인 앞에서 단식투쟁으로 원하는 음식을 얻어내는 게 습관이 되고 말겠지.


 나도 니 사료 안 먹을게, 너도 나 먹는 거 욕심내지 말자. 


눈나- 지금 머 먹어요? 그거... 맛있어요? 나도 먹을 줄 알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