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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별 Oct 05. 2018

고양이가 없는 세상

2018년 10월 3일. 루시가 떠났다

하나의 세상이 끝났구나.


화장하기 전 마지막으로 루시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루시가 사는 세상이. 루시가 있는 나의 세상이 끝난 거라고.


겁이 많은 루시가 새로운 곳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그래도 이제 아프진 않으니 괜찮으려나. 나는 어떨까. 고양이가 없는 집에 살아본 지 너무 오래되었는데. 욕실 문만 열어도 꼬리를 살랑이며 반기는 누군가가 없는 하루에 나는 적응할 수 있을까.


‘루시가 곧 떠날지도 모른다’는 문장을 10개월 동안 마음에 얹고 지냈다. 갑작스레 보내는 것보다 어쩌면 조금 담담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추모실에서 나와 남편은 완전히 무너졌다. 촉감을 저장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플까 봐 손대기도 조심스럽던 얼굴을 수백 번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설거지를 하고 서있으면 내 다리에 슬쩍 기대던 등의 온기. 눈 사이를 쓰다듬으면 골골 소리를 내던 턱의 울림. 다섯 손가락이 파묻히던 바삭하고 부드러운 털의 감촉. 내일이면 아무 것도 없다. 고양이가 없는 세상이 결국 우리에게 닥친 것이다.

 

루시를 보내고, 위안이 되지는 않겠지만 의사 선생님께 물었다.

“그래도 열 달이면 오래 있어준 거죠?”

“정말로요. 이 병은 수술을 해도 6개월 이상은 기대하기 힘듭니다. 정말 오래 잘 버텨준 거예요.”

“그런데 어쩜...그렇게 아픈 티도 안 내면서 있었을까요?”

의사 선생님은 잠깐 입을 다물었다가 한숨을 쉬듯 말했다.

“착해서죠.”


우리 식구는 왜 나 빼고 다 바보같이 착해서 이렇게 나를 울리나. 눈을 가늘게 뜨고 식빵만 굽던 루시가 지금도 거실 창가에 보인다. 침대에 올라가 이불 속에 동그랗게 눕는 것을 좋아했는데, 마지막 날들엔 너무 아파서인지 거실에 웅크리고 있기만 했다. 사람이라면 엄두도 못 낼 통증일텐데,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조용히 열 달을 버텼다. 바보같이 착하고 예쁜 나의 고양이.


이미 루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받았지만 염치 없이 하나 더 바라게 된다. 루시, 언니는 너를 여섯 살 때 만나서, 네가 기운차게 자라는 것을 보지 못하고 늙어가는 것만 본 것이 아무래도 속이 상해. 다음 생에 한 번만 더 고양이로 태어나서, 아기 때부터 언니한테 와줘. 누구에게도 버림 받지 말고 바로 언니에게 와줘. 평생 너의 세상을 지켜줄게. 외롭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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