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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별 Oct 14. 2018

고양이가 왔다

2013년 설이 지나고, 여섯 살 루시를 만났다

“차장님, 고양이 키워볼 생각 있어요?

한 6개월만요.”


회사에서 친구 J가 물었다. 나는 잘 모르지만 J와는 잘 아는 다른 팀 부장이 고양이를 여섯 달간 임보해줄 사람을 찾고 있다고 했다. 아내가 출산을 앞두고 있는데, 양가 조부모들이 아기와 고양이를 같이 키우는 것을 극렬히 반대해서 6개월만 다른 곳에 맡겼다가 데려갈 계획이라고. 그런데 주위에서 임보처를 찾기가 힘이 들어 J에게도 제안이 온 모양이었다. 고양이는 좋아하지만 같이 사는 가족이 알러지가 있어 맡을 수 없는 J가 당시 혼자 살던 나를 떠올린 것이었다.


“나 생각 있어요! 좋아요!”

이렇게 덥썩 오케이하다니! 한 번도 접해본 적 없는 다른 생명을 반 년이나 돌봐달라는 제안을? 평소의 나라면 며칠 밤을 고민했을 텐데. 지금 생각하면 ‘묘연’이란 게 진짜 있는 거구나 싶다. 그게 순간 내 마음을 잡아챈 거지. 장난칠 때 내 손가락을 휙 감아쥐던 루시 앞발처럼.


그리하여 간단한 면담과 인수인계를 거쳐 2013년 2월 16일, 막 여섯 살이 된 루시는 나의 원룸에서 첫 밤을 보내게 되었다. 하루 종일 기다렸던 첫 만남. 어둑한 주차장에서 부장이 루시를 안겨주며 말했다.

“털빠짐이 심해서 불편하실까 봐 집에서 깎았어요.

좀 볼품 없지요? 하하;;;”

눈처럼 하얀 털이 듬성듬성 깎인 동그란 초록눈의 고양이. 이동장에서 나온 루시는 정말 예쁘고, 가여웠다.


“안녕 루시. 언니는 새별이라고 해.

당분간 잘 부탁해.”

그때 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캄캄한 밤, 아기 때부터 살던 집을 떠나 처음 만난 사람과 처음 보는 좁은 집 안에 남겨졌을 때. 잔뜩 웅크린 등과 앞발을 보고서 여리고 조심스러운 네 성격을 진작 헤아렸어야 했는데, 나는 그저 설레기만 했던 게 훗날 두고두고 미안했다.

그래도 그날 루시는 금세 내게 마음을 열고 잠이 들

.

.

.

.

.

기는 커녕 밤새 찬장 위에 웅크려 앉아 숲 속의 맹수처럼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루시가 걱정되어 들여다보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가 악몽을 꾸고 깨어나기를 반복하였다. 고양이가 있는 첫 아침은, 그렇게 험난하게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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