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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별 Dec 09. 2018

고양이의 앞발. 집사의 두 손

슬픈 글을 많이 썼으니. 오늘은 웃픈 이야기를 해봅니다.


루시와 사는 것이 익숙해질 무렵. 집사가 잠시 해이해진 시기가 있었습니다. 칼퇴는 기본, 지하철에서 내리면 집까지 전력질주하던 귀가가 점점 늦어지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날은 토요일이었습니다. 삼일 연속 저녁 약속으로 밤늦게 들어온 다음날이었어요. 둘이 멍하니 앉아 한낮을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루시가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방구석의 옷걸이로 다다닥 달려갔습니다. 그리고는,


파바박!


아아. 제 가방엔, 제가 가진 단 하나의 명품이었던 그 가방엔 그렇게 루시의 스크래치가 선명하게 남았습니다.


어떻게 봐도 루시의 만행...아니 행동은 분명히 고의였고 경고였어요. 큰 깨달음을 얻은 집사는 그날부터 저녁시간엔 조신히 집에 들어와, 차라리 집에서 루시와 음주가무를 즐기는 바른(?) 생활을 하게 되었지요. 여러 가방 중에 제일 비싼 것만 골라 노리는 루시에게, 그 와중에 다시 한 번 감탄하면서요.


그러고 보니 집사가 루시에게 본의 아니게 보복을 한 날도 있었습니다.


어느 배고픈 밤. 집사는 아주 생생한 꿈을 꾸었어요. 길을 가다 포장마차를 발견했는데, 좋아하는 떡볶이를 팔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집에 가서 먹겠다고 주문했더니, 인심 좋으신 아주머니가 떡볶이를 비닐봉지에 꽉꽉 눌러 담아주셨죠. 신이 나서 받아들었는데,


따끈!


아니, 이리 실감나게 묵직하고 따끈한 떡볶이라니! 저는 너무 놀라서 번쩍 눈을 떠버렸어요. 얼른 손을 내려다보니...


경악한 표정으로 돌아보는 루시의 얼굴이, 제 가슴팍에 웅크려 자고 있던 루시의 작은 몸이, 그리고 루시의 엉덩이를 꼬옥 움켜쥔 저의 두 손이... 차례차례 눈에 들어왔습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루시는 이불 위에서 총알같이 튀어나가 아침까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고도 한동안 제 곁에서 잠들기를 거부했지요. 집사는 밤마다 외롭게 잠을 청하며, 엄격하신 고양이의 심기를 거스른 자신을 자책했답니다.


며칠 뒤 그런 집사의 이불 속에 루시가 살며시 돌아와준 것을 보면...

세상에서 제일 너그러운 이도, 결국 고양이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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