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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죽었다

손자에게 들려주고픈 아름다운 클래식의 세계

내 남편 최희준이 나를 떠났다.  평생을 운동을 직업으로 취미로, 건강을 챙기는데 세상에서 두 번째 가라면 화를 낼 것만 같았던 그가 나를 떠났다.  사고사도, 급사도 아닌 희귀병에 걸려 날 버리고 가 버렸다. 스물에 만나 스물넷에 결혼을 하고 30년을 함께 산 사람, 그와 함께였던 시간이 혼자였던 시간보다 길고 긴데, 나를 무방비 상태로 던져놓고는 매일매일 지겹게 외치던 “유정아” 한마디를 못하고 그는 떠났다. 그를 그 차가운 땅속에 분명히 잘 넣어주고 왔는데도, 이제는 시간도 꽤 지났는데도, 나는 아직도 그가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다.  


남편이 몸에 이상을 느낀 것은 2년쯤 전이었다. 나를 마누라로, 친구로, 애인으로, 동료로 대했던 그는 모든 일을 나와 상의했다. 조그마한 일에도 예민한 그였기에 나는 언제부터인지 그가 하는 말의 1/3 정도만 듣는 것이 버릇이 돼버렸었다.  지독히도 추웠던 그해 겨울, 자꾸 가슴이 답답하다는 남편을 나는 그냥 대수롭지 않은 역류성 식도염이나 공황장애 전 단계 정도라고  진단해 주고는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적어도 그날 아침까지는...


출근을 한다던 남편이 갑자기 집으로 돌아와 가슴이 너무 답답하다 할 때 까지도 나는 그즈음 내가 바빴기에 어리광 부리는 정도로 치부했었다. 약간 짜증이 나서 대학병원 응급실로 보내면서도 나는 출근을 했고 어디 응급실 가서 좀 당해봐라 하는 마음이었다. 적어도 함께 동행하신 친정어머님께서 네가 좀 와야 할 것 같다고 전화를 하실 때까지는 말이다. 그래도 큰 일이야 있겠어? 하며 내 볼일을 다 보고 느지막이 병원에 나타났다.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응급실 침대에서 심장 초음파를 하고 있었다. 자기들끼리 뭐가 보이니 아니니 하기에 뭐가 보이냐 물었더니 나중에 주치의한테 들으라며 사라지고는, 심장혈관 안에 혈전이 있어서 복수가 찬 것 갔다며 주치의가 알려줬을 때도 난 그저 빨리 빼주세요 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신호가 남편과의 이별을 준비하라는 하늘의 선물이었던 것을.


남편의 진단명은 원발성 심장 활막액 육종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병이었다. 한마디로 그의 심장 근육에서 암덩어리가 자라도 있었던 것이다. 불치고 난치고 그 무엇을 떠나서 도대체 세계적으로 6-70여 명 정도 케이스만 있는 희귀병이었다.  심장에 암이 생긴다는 것을 듣지도 보지도 못했는데 심장암 중에서도 1% 미만의 환자들만 걸린다는 병이다.


그래도 나는 희망적이었다. 아니, 희망적이어야만 했다. 30년 전에는 위암도 불치병이었다고, 미국의 농구선수 매직 존슨은 20년도 전에 에이즈에 걸리고도 잘만 산다고, 남편을 달래며 위로하며 그와 함께여야 했다. 나는 그가 죽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었다. 이겨낼 거라고, 날 위해 툴툴 털고 다시 설 것이라고.


신은 우리에게 일상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허락했었고, 그 일상의 끝에 그에게는 호스피스나 임종 병상이 아닌 중환자실에서 마취상태로 세상을 떠날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다.


그의 마지막은 진짜 촛불이 마지막까지 타들어가는 듯, 점차 점차 심장이 느려지며 천천히 그리고 아주 고요히  하늘나라로 올라갔다. 그는 말할 수 없었지만 나는 들었다. 유정아 먼저 갈게, 사랑해.


슬프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아버렸고, 분명히 같은 사람 때문에 찢어지는 아픔임에도 나와 딸아이는 한참을 괜찮은 척 서로 다른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시간이 간다고 슬픔이 옅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움은 차곡차곡 쌓인다는 것을 이제 5달쯤 지나니 딸도 나도 이해하게 됐다. 그리고 또 그가 우리와 언제나 함께 한다는 것을, 절대 우리를 버리고 떠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심장이 아팠던 그는 우리의 심장이 아픈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기에 나는 이제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려 한다.






네! 남편이 죽었습니다! 하지만 제 심장은 튼튼합니다. 그는 언제나 나와 함께 내 심장 안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그가 배경이고 제가 주인공이 되어 손자에게 들려주고픈 클래식 음악의 세계로 여러분들을 인도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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