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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icElephant Feb 26. 2019

질문은 끝내 못했네

임산부 요가 수업을 들은 지 한 달

임신 20주부터 임산부 요가를 시작했다. 선생님은 내가 다니는 병원에서만 12년 넘게 수업을 하신 임산부 요가 전문가다. 본인이 이미 딸 둘을 가진 엄마로 출산 선배고, 분만실을 수시로 방문하며 출산을 연구하신다. 실전에서 필요한 건 무엇인가, 어떤 동작이 도움이 되겠는가를 보시는 거다. 분만실의 천태만상, 다양한 후기를 들을 수 있었던 수업이 오늘로 딱 한 달이 되었다.



선생님이 임산부 요가의 목적은 딱 한 가지라고 하셨다. '순산!' 의학의 힘을 빌린다 해도 힘줘서 절정을 맞이해야 하는 건 산모 몫이라. 그 순간을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럽게 잘하기 위해 미리 연습하고 몸을 준비해놓는 거라 하셨다. 

 

임신은 했지만 출산은 먼 얘기 같았다. 미리 알아둬야 덜 무서울 것 같아 출산 후기를 엄청 찾아봤으면서도 실감은 안 났다. 그래서 출산에 특화된 동작들을 하는 게 처음엔 민망했다. 특히 요가 마무리 단계에서 실제 출산하는 것처럼 자세를 잡고 호흡조절을 연습할 때는 자괴감도 들었다. '정말 이렇게까지 다리를 벌리는 거야? 똥 나오면 어떡해?' 힘들기도 힘들었다. 선생님이 한 명씩 다리를 잡아주면 아기를 낳는 것처럼 고개를 들고 10초 동안 숨을 뱉어야 하는데 이때 숨을 끊으면 안 된다. 난 아직 주수가 많이 남아서 그나마 10초인 거고 막달이신 분들은 30초를 버텼다. 난 5초만 돼도 숨이 모자라서 얼굴이 시뻘게졌다. '나 잘할 수 있을까?' 



선생님께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골반 벌리는 운동을 해서 아기가 너무 일찍 나오는 경우가 생기진 않는지, 숨을 들이마실 땐 속도가 어때야 하는지, 나는 허리가 벌써 많이 아픈데 무슨 동작을 더 하면 좋을지. 하지만 하나도 물어보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는 탓이다. '비웃거나 재수 없어하지 않을' 자연스러운 타이밍을 찾다 보니 질문은 하루 이틀 미뤄졌다. 


어딜 가나 성격은 숨기질 못한다. 주변 눈치 보고 시선 의식하느라 하고 싶은 말을 못 한다. 별 것 아닌 말도 마음속에서 재고하고 재고한다. 비웃음 당하거나 재수 없어 보이지 않으려고. 요가 수업이 끝나고 1시간 정도 다 같이 티타임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묻고 싶은 것도 순간 떠오르는 농담도 그냥 꿀꺽 삼킨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얼굴이 벌게지지 않고 묻고 싶은 걸 물을 수 있을 때까지 나는 시간이 걸린다. 아가는 질문할 줄 아는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다. 나의 결핍을 아가에게 해소시켜달라 강요하는 꼴이 되어선 안된다. '모르는 건 창피한 게 아냐, 질문이 많은 건 예민한 게 아냐.' 내가 먼저 믿어야 할 얘기다.


그런데 이럴 수가. 수업 끝나고 티타임까지 마무리될 무렵, 선생님이 오늘까지만 수업하신다는 걸 알게 됐다. 다음 주부터는 새로운 선생님이 오신단다. 미루고 미루던 질문은 끝내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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