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하는 게 대단하다는 말의 의미
얼마 전, 회사에서 채식 지향하는 분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 분도 주변에서 채식을 하는 사람을 실제로 보는 것이 처음이었고, 나도 직장에서 채식 지향 하는 사람을 만난 것이 처음이어서 서로 신기해하고 반가웠다. 마치 말로만 듣던 사람을 실제로 만나는 기분이랄까?
‘고기를 안 먹는다’, ‘채식을 한다’고 말하면 언제나 듣는 레퍼토리들을 이야기하면서 서로 공감했다. 음식 가린다고 한 소리 듣는 이야기들, 이상하게 보는 시선들을 이야기했다. 내가 고기를 안 먹은 지 30년 정도 되었고 그동안 참 이런저런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하자, 그 분이 그동안 그런 말을 들어서 힘들었겠다고 안타까워했다.
“힘드셨겠어요”
“뭐 계속 들어와서 이제 적응되서 괜찮아요~ ^^”
“그래도......적응했다고 해서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닐 텐데”
이 말을 보고, 나는 순간 너무 놀랐다.
30여년 동안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온갖 말들을 늘 들어왔던지라, 그런 말들에 그저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 말들에 잘 대처하는 법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익숙해졌지만, 그런 말들에 이제 능숙하게 때론 장난스럽게 대답하지만, 내 마음은 아무렇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그 말들은 아무렇지 않게 나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었을지 모르지만, 내 마음을 흔들고 가끔 긴 상처를 남기고 지나갔던 것이다. ‘당연한 거지 뭐’라고 늘 생각했지만, 내 마음은 사실은 괜찮지 않았다.
그 분의 “적응했다고 해서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 그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그렇다. 나는 괜찮지 않았다. 웃으면서 잘 대답하는 기술은 늘었지만, 여전히 나는 “아직도 고기 안 먹어?”라는 말에 속으로 살짝 상처를 받는다. 여전히 나를 이상하고 신기하게 보는 시선이 신경쓰인다.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나를 불편하게 여기지 않을까 걱정하며 일부러 과도하게 ‘고기 빼고는 뭐든지 안 가리고 다 먹는다’는 점을 어필하려고 노력한다. 아, 나는 정말 괜찮지 않았다. 나는 세상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봐 계속 전전긍긍했다.
“30년 동안 채식하는 거 대단하세요”
30년동안 채식을 했다고 하면 대단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나는 예전에는 그런 말을 들으면 “아니에요, 어렸을 때부터 시작해서 힘들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보통은 ‘그 오랜 시간 고기를 먹지 않았다는 것’을 대단하게 생각한다. 그건 나에게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고기를 끊은’ 게 아니라, 처음부터 안 먹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고기를 안 먹는다는 사실이 힘들었던 적은 없다. 그래서 나의 채식이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분이 나에게 ‘대단하다’고 했던 말의 의미는 달랐다. 그 말은, 그 오랜 시간 동안 주변 사회의 편견과 잔소리를 감당해낸 것이 대단하다는 의미이다. 채식을 해 본 사람만이 공감하고 아는 의미.
그런 의미에서, 나는 스스로가 대단하다.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를 증명하려고 애써 온 내 삶이 대단하다. 호기심, 비아냥, 충고, 그런 것들에 대해 듣는 사람의 기분을 거슬리게 하지 않고 대답하려고 애썼던 내 노력이 대단하다. 이런저런 말을 들을 때마다 사실은 괜찮지 않지만, 괜찮다고 스스로 믿고 어르고 달랬던 내 마음이 대단하다. 그렇게 살아온 내가 대단하다.
어디 꼭 채식 뿐이랴. 모든 사람이 한 소리 듣지 않고 자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남자라서, 여자라서, 나이가 많아서, 나이가 어려서, 뚱뚱해서, 말라서, 미혼이라고, 기혼이라고, 자녀가 있어서, 없어서, 모두가 수많은 편견과 잔소리와 오지랖과 비아냥과 충고를 견뎌내고 있다. 그리고 그런 말에 쿨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 모두가 대단하다. 남들은 모르지만, 스스로는 알고 있지 않은가. 괜찮은 ‘척’ 했지만, 사실은 괜찮지 않다고. 그러니까 모두 인정해주자. 온갖 편견과 오지랖을 견디고 꿋꿋하게 살아오고 있는 스스로가 대단하다고 인정해주자. 그리고 자기한테는 솔직해지자. ‘사실은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