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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휘 Jan 10. 2022

대체육, 그 낯선 신세계

존중의 채식과 마케팅된 비건에 대한 생각

최근 스타벅스에서 식물성 메뉴를 대대적으로 확충했다. 어느 날 스타벅스에 갔다가, “플랜트 함박 앤 파스타 밀박스”라는 메뉴를 주문했다. 함박 스테이크와 파스타라니, 신기하기도 하고 맛있을 거 같아서 주문했다.

따뜻하게 데워진 밀박스가 나왔다. 가볍게 한 끼 하기 좋을 것 같다. 스타벅스라는 대형 카페에서 채식 메뉴가 나오다니 감개가 무량하고 채식이 정말 대중화되었구나 싶어서 기분이 좋았다. 이 함박은 뭐로 만들었을까, 하면서 한 조각 맛을 보는데, 음? 이게 비건이라고?


너무나 고기 그 자체였다. 고기 질감, 고기 맛. 이게 고기가 아니라고? 싶어서 영양성분표를 보았지만 분명 고기는 없다.


나는 종종 채식 카페에 가서 채식 버거를 먹는데, 보통 두부나 채소, 곡물로 만든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음식이라서, 별 생각 없이 그 맛을 기대하고 주문했던 것이다. 내가 생각한 그  맛일 거라고 생각하고 주문했는데 무척 당황스러웠다. 다시 한 번 먹었지만 분명히 고기 맛이다.


나는 고기를 못 먹는다. 그 질감, 그 맛을 못 먹는다. “이건 비건이야”라고 생각하면서 먹으려고 했지만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결국 사이드 디쉬로 있던 감자 조각과, 파스타만 먹고 함박 패티는 다 남기고 버렸다.      

고기 질감, 고기 색이 보이는 함박스테이크

이 대체육 함박스테이크는 나에게 적잖은 충격을 남겼다. 아, 미국에서 이슈가 되었던 인크레더블 버거가 이런 거였겠구나, 요즘 많이 나오는 비건 햄, 비건 소시지, 비건 패티 등 비건 대체육 상품이 이런 거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기가 아닌 무엇으로 고기의 맛을 구현한다......   

  

환경이나 동물권에 대한 이슈로 비건을 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고, 그들의 고기에 익숙한 입맛을 위해서는 대체육이 필요할 것이다. 고기 맛과 비슷한 대체육을 먹으면 더 쉽게, 편하게 비건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대체육을 하나의 음식 창작의 실험으로 보는, 그러니까 다양한 음식의 한 종류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머리로는 당연히 다 이해한다. 그런데, 묘하게 마음 한 편이 낯설고 불편한 건 왜일까.


대체육이 ‘맛있음 = 고기’의 사고를 공고히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가 이상하게 든다. 고기의 맛을 똑같이 내야 맛있다는 사고를 무의식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채소는 그 자체로 아름답고 귀하고, 고기는 고기의 맛이 있고 서로 우열을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닌데 그 자체가 아닌 다른 맛을 흉내내야 맛있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일까......? 스타벅스라는 거대 기업에서 그냥 채소 파스타를 내면 안 되었을까?      


나의 이 불편한 마음은 무엇일까. ‘달키친’의 강지민 요리사님이 쓰신 글에서 무척 와닿는 구절이 있어 잠깐 옮겨본다. 요리사님은 마르쉐에서 곡물과 채소로 만든 ‘달버거’로 출점하셔서 유명한 분이다.     

고기버거, 새우버거, 채소버거 그 무엇도 하등하거나 차별하지 않는 마음에서부터 비롯되는 따뜻한 비거니즘을 바란다. 

고기를 대체하는 대체육을 단 몇 초만 살펴보아도 알 수 있듯 신성한 밭작물로 보이는 단어들을 찾기란 쉽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과연 환경과 사회, 나에게 이로울까......? 의구심이 들어 본 적 있는가

착한 일! 지구를 구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선순환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는 거대 자본주의의 이면을 보는 것 같아 늘 서늘하다. .....(중략) ....보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비거니즘은 응원하지만, 무분별하게 비건을 내세워 착한 일이라 선동하고 흑백논리를 두둔하는 부분은 소비자들이 단단한 철학을 갖고 분별해 내는 힘이 필요할 것 같다.   


아, 그렇다.

지금 시장에 등장해서 대형 프랜차이즈까지 들어온 대체육은, 비건이나 식물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식물성은 무조건 좋다, 친환경이다, 착한 일이다라는 마케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식물성이라고 무조건 사회적으로, 그리고 건강에 좋은 것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채식 친화적인 사회는, ‘고기 맛이 나는데 고기가 아닌 것’ 대신 채소의 자리가 지금보다 더 커지고, 채소의 맛이 인정받는 사회이다. 

이를테면, 회식을 하러 다같이 삼겹살집을 가서 내 앞에 비건 삼겹살을 놓아주는 게 아니라, 된장찌개에 고기 빼고 끓여서 내 앞에 놓아주고 아무도 나한테 고기를 안 먹는다고 뭐라고 하지 않는 사회.     


난 비건도 아니고 동물권에도 무심한 느슨한 채식인이라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싶긴 하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각자가 채식을 하는 이유도 다르니 대체육 시장은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게 정말 사회에, 몸에, 환경에 좋은 걸까?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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