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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Sep 03. 2018

엄마는 홍합이 부끄러워


엄마, 

벨기에에서 마지막 밤이 다가오고 있어. 



마지막 저녁은 뭔가 근사한 게 먹고 싶었어. 어제 보니까 그랑플라스 광장을 둘러싼 레스토랑에서 다들 산더미 같이 쌓인 홍합 요리를 먹고 있더라. 알고 보니 벨기에는 홍합 요리인 '물(Moule)'이 꽤 유명하더라고.  게다가 우리가 지금 서있는 곳 근처에 있는 '부셰거리(Rue des Bouchers)'는 홍합 요리의 거리라고 불린대. 뭐, 우리 동네 천호동 주꾸미 골목, 이런 거랑 비슷한 거지. 


'물(Moule)'은 재료나 조리법에 따라 수십 가지의 종류가 있지만 보통은 물 대신 화이트 와인을 넣어 뽀얗게 국물을 우려낸 홍합탕과 홍합찜 중간 버전 같은 '물 마리니에르(moules marinières)'를 감자튀김과 함께 먹는 '물 프리트(Moules-frites)'가 대표적이래. 


'홍합탕에 감자튀김?' 생각하면 너무 이상하잖아. 솔직히 감자튀김은 오며 가며 하도 사 먹어서 더 궁금하지도 않고. 그래도 제일 유명한 요리라니까 한 번은 먹어보고 싶더라. 아니 홍합 골목에서 홍합을 안 먹으면 뭘 먹겠어? 나는 저녁 식사 장소를 물색하며 걷다가 홍합 요리를 파는 곳이 보이면 계속 엄마에게 말을 걸었어.



"엄마, 저기 어때?"


"어머 홍합을 저렇게 파네......"


"엄마, 우리도 저거 먹을까?"


"으음... 다들 밖에 나와서 먹네..."


"엄마, 계속 걷지만 말고 이제 슬슬 정해서 들어가자!"


"어어, 저 골목 끝까지만 한 번 가볼까?"


"......."


"......."



아니 너무 이상한 거야. 엄마가 자꾸만 내 말을 못 들은 척하고 계속 다른 곳으로 가는 거야. '왜 저러는 거지? 뭔가 다른 게 먹고 싶은가? 엄마는 원래 비린 것을 싫어하니까 홍합이 싫은가?' 혼자서 짐작하며 따라가다 보니 답답하더라. 


홍합이 싫으면 다른 걸 먹자고 하던가! 언제까지나 이렇게 길바닥을 헤매고 다닐 순 없잖아! 슬슬 다리도 아파오고, 날도 어두워지는데 엄마가 찾는 궁극의 레스토랑은 나타날 기미도 안 보이고 말이야. 그래서 결국 나는 걸음을 멈추고 엄마에게 물어봤어.


"엄마, 왜 그래? 뭐 특별히 먹고 싶은 거 있어? 홍합은 싫은 거지?"


약간은 짜증 섞인 내 물음에 엄마는 주저하며 대답했어. 아이고 그 대답이 어찌나 귀여운지...



유명하다니까 먹어보고 싶기는 한데...
아니 왜 다들 저렇게 길에서 먹니?

엄마는 엄마 홍합 먹는 거
사람들이 보는 게 부끄러워...


음? 정말이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에 나는 한동안 멍해졌어. '뭐라고? 뭐가 부끄러워?' 


처음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엄마를 윽박질러서 레스토랑으로 끌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복잡한 얼굴로 내 눈치를 살피는 엄마를 보니 그러면 안 될 것 같더라. 나는 당혹감을 저리 치워두고 다시 차분하게 생각해봤어. '음 그래... 홍합을 먹으려면 막 손도 더러워지고, 입도 챱챱츕츕거리게 되고, 홍합 국물이 질질 흐르고...' 사실 홍합이라는 게 깨끗하고 우아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닌 거야. 엄마는 그런 모습을 처음 보는 벨기에의 대중에게 보이기 싫었던 거지. 그렇게 그럭저럭 이해는 했지만, 그래도 엄마의 말은 신선한 충격이었어. 


내 입장에선 답답한 레스토랑 안이 아니라 탁 트인 테라스에 나와서, 지나가는 사람 구경도 하고 광장의 정취도 느끼면서 먹는 게 훨씬 좋았거든. 아니 나 밥 먹는 거 누가 본다고. 뭐, 설사 본다고 해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는데 엄마는 그게 너무 부끄럽고 어색했나 봐. 



그러고 보니 아까 잠시 쉬려고 들어갔던 카페에서도 엄마는 그랬지. 카페 밖에서 어떤 아저씨가 신나게 기타를 연주하면서 노래하고 있었잖아. 난 그걸 들으며 쉬면 딱 좋겠다 싶어 엄마 의견 따윈 묻지도 않고 거침없이 밖에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어. 그리곤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물어본다고 엄마만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었잖아. 엄마는 내 뒷통수에 대고 다급하게 혼자 있으면 부끄러우니까 빨리 오라고 했었고.


그때도 난 속으로 ‘뭐야, 애기도 아니고. 뭐가 부끄러워.'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엄마는 그때도 마음 같아서 안에 있는 테이블에 앉고 싶었겠다 싶어. 엄마에겐 이곳의 모든 게 낯설고, 모르는 사람들의 시선도 부담이었던 거야. 한국에서 언제 엄마가 이렇게 테라스에 나와 앉아 뭘 먹었겠어. 맨날 부엌에서 식구들 밥이나 했지. 사람들 오고 가는 길가에 앉아 편하게 사람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일 같은 건 해본 적이 없는 거야. 내가 그것도 모르고, 배려가 부족했다. 미안해.



자자, 그럼 이제 엄마 마음 내가 다 알았으니 정리를 해보자. 사실은 홍합 요리가 먹어 보고 싶은 거지? 오케이 좋아! 그럼 내가 아주 멋진 레스토랑을 찾아줄게. 깊숙한 구석 자리가 있는 곳에서 단 둘이 오붓하게 브뤼셀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먹자. 레스토랑에 들어가면 내가 벽에 기대어 앉을게. 그럼 엄마가 홍합 후루루챱챱 먹는 거 나 말고 아무도 못 보니까. 어때 괜찮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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