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랑 빙고할래?

by 김별

엄마,

아 진짜 너무하네. 내가 그 사람을 어떻게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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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 몰라? 왜 몰라 '나는 개똥벌레~' 이 노래 엄마가 많이 불렀었잖아. "


"어 개똥벌레, 노래는 아는데 가수 이름이 신형원인 건 모르지... 알았어 또 해 봐."


"이은하"


"아 그게 누구야. 심은하는 아는데..."


"없어? 크크크. 그럼...이영화?"


"생전 처음 들어 봐... 이름이 영화야? 진짜 있는 사람 맞아?"


"없나 보네? 에이 설마 이 사람은 알겠지. 임주리."


"하...없어...나 빙고 시작하고 지금 아직 한 개도 못 지운 거 알지?"


"푸하하. 그래 인심 썼다. 옛다 양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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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어 있어! 있다! 좋아... 이제 내 차례다. 심규선"


"없어..."


"심규선 '부디' 몰라? '부디 그대 나를 잡아줘~' 후후 엄마도 당해 봐라 이제."


"흥, 또 해 봐."


"청하!"


"있어."


"있어?"


"어 있어."


"있다고? 엄마가 청하를 어떻게 알아?"


"엄마 요즘 노래 많이 알아. 청하 아이오아이에서 춤 잘 추는 애잖아. 까불지 마."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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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함부르크로 가는 기차 여행에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엄마에게 빙고를 제안했던 건 정말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 물론 내가 처참히 패배하는 경우가 더 많았지만... 평소에 잊고 지냈던 이 게임이 서로를 더욱 잘 알게 하고,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주는 최고의 게임이더라고. 빙고를 하면서 엄마가 어떤 가수를 좋아했는지, 어떤 꽃을 좋아하는지, 어떤 영화를 재미있게 봤는지 알게 되었으니 말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에게 까불면 안 된다는 것도 배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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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종이에 그려진 스물다섯 개의 칸 안에는 몰랐던 엄마의 취향과 딸을 이기겠다는 승부욕이 가득 차 있어서 절로 웃음이 나게 되네.


나는 그게 참 좋더라.

내가 엄마에게 아무리 시시한 놀이라도 "엄마 우리 이거 하고 놀래?"하고 물으면

귀찮아하거나 거절하지 않고 "그럴까?" 해주는 거.

그리고 혼신의 힘을 다해 나와의 승부에 열을 올린다는 거.


서른이 넘은 딸이랑 보드게임 카페에서 몇 시간이고 게임을 하면서, 끝까지 '마지막으로 한 판만 더 하자'고 물고 늘어지는 환갑을 앞둔 엄마가 얼마나 더 있을까, 생각하면 난 내가 엄마의 딸인 게 참 감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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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고를 몇 판 하다가 지친 뒤로는 스도쿠 대결을 하고 있어. 엄마는 안경까지 벗어두고 한숨을 푹푹 쉬면서 게임에 집중하고 있네. 빙고 하면서 수다 삼매경에 빠졌던 것과 달리 우린 지금 한참 동안 말 한마디 없이 침묵 속에서 달리고 있어. 우리 둘의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엄마 보다 / 별이 보다 내가 먼저 풀어야지!' 이 숨 막히는 자존심 싸움에서 승자는 과연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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