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참아 코로 숨 쉬지 말고 입으로만 숨 쉬어 봐.
우린 방금 엄마가 정말 보고 싶어 했던 다락방 교회를 보고 나왔어. 방명록에 "엄마랑 딸이랑♡ 인실이랑 별이랑 다락방 교회 보러 왔어요! :) "라고 적었지. 나중에 다시 가보니까 우리 뒤에 온 사람들이 금세 페이지의 나머지 부분을 채웠더라. 이곳이 암스테르담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꽤나 인기 있는 곳이라는 걸 알 수 있었지.
다락방 교회(Ons' Liever Heer op Solder)는 아름다운 운하를 바라보고 있는 아주 평범한 암스테르담의 주택인 커널 하우스 안에 숨겨져 있는 교회야. 종교개혁이 시작된 16세기에 네덜란드에서 가톨릭이 금지되자, 부유한 상인이었던 얀 하르트만(Jan hartman)이 자신의 집에 이 다락방 교회를 몰래 만들었어. 그리고 이곳은 무려 200년 동안 들키지 않고 가톨릭 신자들의 종교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제공했다고 해. 정말 대단하지?
안내를 받아 아주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갑자기 시야가 뻥 뚫리면서 웅장한 가톨릭 성당이 나오는데 우리는 둘 다 숨죽여 놀랄 수밖에 없었지. 아름답지만 비밀스러운 그곳의 공기는... 박해를 받고 있는 중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신앙을 지켜온 사람들의 정신을 느낄 수 있게 해서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숙연해지더라.
다락방 교회에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예쁜 양초까지 기념품으로 사들고 나온 우리는 기분 좋게 길을 거슬러 올라갔어. 그러다 자연스럽게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구교회(Oude Kerk)와 그 옆에 있는 홍등가를 만났지. 교회와 홍등가가 다섯 걸음 정도의 거리를 두고 바짝 붙어 마주 보고 있는 게 좀 묘하더라.
대낮인데도 1층에 있는 커다란 창에서 성 노동자가 호객을 하고 있고, 우리가 보는 앞에서 한 서양 남성이 안으로 들어갔어. 처음 보는 광경에 둘 다 꽤 충격을 받았지. 하지만 그 충격도 허기는 이길 수 없었어. 우린 너무 배가 고팠거든!
하지만 엄마는 주변에 있는 서양 음식점을 보며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어. 다른 무엇도 아닌 쌀밥이 먹고 싶었던 거지. 그래서 우린 가이드북에 나온 중국인 거리를 찾아가기로 했어.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하아... 문제는 우리가 하필이면 마약과 성인용품을 파는 골목을 뚫고 가게 된 거야. 돌아가는 길이 있었겠지만 우린 여행자니까. 어쩌다 보니 그 길에 들어서고 만 거지! 홍등가에 이어 두 번째 충격을 받은 우리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
특히 거리에 진동하는 마리화나 냄새는 엄마에게 정말 고역이었지. 평소에도 향기에 민감했던 엄마는 결국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아프다며 정말 힘들어했어. 나는 좁은 골목을 전투적으로 걸으며 속으로 계속 중얼거렸어. '빨리 이 거리를 벗어나자, 빨리 가자, 빨리 가야 해...' 그러면서도 난생처음 보는 진귀한 풍경에 눈동자는 골목 이곳저곳을 데굴데굴 굴러다녔지.
그래, 암스테르담은 마약과 성매매가 합법인 도시야. 마약의 경우, 헤로인 등의 강력한 마약의 사용과 그에 따른 범죄를 줄이기 위해 마리화나나 환각 버섯 등을 술이나 담배 정도의 기호성 약물로 설정해 허용하고, 그 용량과 판매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법안으로 관리하고 있어. 이 덕분에 네덜란드는 유럽 국가 중에 마약 사용률이 가장 낮은 나라가 되었지.
성매매의 경우도 마찬가지야. 네덜란드는 음지에 있던 성 산업을 양지로 끌어올려 성 노동자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것으로 유명해. 게다가 2018년에는 늘어난 관광객이 성 노동자들에게 위협이나 불쾌감을 조성하는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출입을 제한하는 새로운 법안을 발표하기도 했지. 하지만 범죄 조직 연루와 동유럽 여성의 인신매매 등을 이유로 점진적으로는 홍등가를 줄여나갈 생각이라고도 들었어.
쉽게 말하면 이거야. 억지로 못 하게 해도 어떻게든 할 테니까, 차라리 눈 앞에 두고 보면서 관리하겠다는 거지.
하지 말란다고 네가 안 하겠냐?
차라리 내가 보는 앞에서 해.
그래야 혹시 잘못됐을 때
엄마가 조치를 취할 수 있으니까.
이건 내가 일탈을 꿈꿀 때 엄마가 내게 했던 말이었어. 네덜란드 정부랑 너무 똑같은 마인드잖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 고등학교 2학년 때 내가 방학이니까 염색이 해보고 싶다고 했잖아. 그때 엄마랑 아빠는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하라면서 엄마는 노랑, 아빠는 빨강을 권했었어. 결국 우리 셋은 동네에 있던 마트에 같이 가서 염색약을 골랐고, 엄마가 직접 내 머리를 아주 밝은 노란색으로 탈색해줬지. 크크크.
당시 주위 친구들의 부모님은 염색 같은 거 못하게 했었거든. '학생이 염색이라니! 제 정신이냐!' 뭐 이런 게 그 시절의 정서였지. 하지만 난 그 해 여름 금발에 커트 머리로 온 동네를 신나게 돌아다녔고, 그 튀는 모습 덕분에 내가 신기해서 다가온 친구가 지금 내게 둘도 없는 베프가 됐잖아. 정말 신의 한 수였지!
학교나 학원도 그랬어 오늘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가기 싫다고 솔직히 말하면, 엄마는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줬어. 그리고 내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서 같이 놀러 다녔잖아 막. 언젠가 책상에 앉아 울면서 영어 단어 외우고 있던 미련한 내 손을 끌고 나가서 사줬던 귀여운 오리 인형도 기억나.
허니패밀리에 미쳐서 '오빠들'을 따라다닐 때도 엄마는 내가 개리 오빠에게 주려고 접는 장미 100송이를 옆에서 같이 접어줬지. 그러다가도 시험공부를 소홀히 하고 공연을 가겠다고 대들었을 땐 단호히 내 방 벽에 붙어있던 브로마이드를 찢었던 것도 엄마였어. 그게 엄마가 말한 '조치'였던 거지.
생각해 보면 엄마의 그런 모습이 내게 정말 좋은 영향을 줬던 것 같아. 그때 엄마가 내게 준 공감, 이해, 그리고 자유는 내 깊은 곳에 부모님에 대한 큰 신뢰와 자신에 대한 책임감을 심어줬거든.
오오 엄마, 저기 저 레스토랑 어때? 태국 음식점인 거 같아. 볶음밥 같은 건 맛없기도 힘드니까 한 번 들어가 보자! 맛있는 음식 냄새로 몸에 묻은 마리화나 냄새를 털어내고 돌아갈 땐 다른 길로 가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