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진짜 쪽팔리게 왜 그래?
우린 지금 서로를 노려보며 씩씩대고 있어. 왜냐하면 하펜시티를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레스토랑에서 사건이 발생했거든. 여행 후에도 종종 회자되던 일명 '어글리 코리안 사건' 말이야.
엄마는 여행 후반부로 갈수록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힘들어했어. 어쩌다 보니 독일에 와서는 계속 밀가루 음식만 먹었거든. 그리고 오늘은 이래저래 싸돌아다니느라 체력도 많이 고갈되었고 말이야. 후후, 난 30년 엄마 딸 짬밥으로 알고 있지.
이 상황에서 엄마에게 필요한 건 뭐다?
밥이다! 쌀밥!
아휴 그런데 맛있는 레스토랑을 검색해서 거기까지 찾아갈 기력이 없네? 그래서 우린 일단 숙소까지 간 뒤 그 근처를 걸어 다니면서 어디든 쌀밥이 있을 것 같은 곳에 들어가기로 결정했어.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인데 이 선택은 실수였던 것 같아. 우리처럼 체력이 약하고 길치인 사람들이 '어디든 있겠지'하는 마음으로 정처 없이 걷는다는 발상 자체가 말이야. 그렇게 걷고 또 걸었는데 끝내 원하는 곳이 나타나지 않고 우리 체력이 제로가 된다면? 구급차 삐뽀삐뽀 아니겠어?
아니나 다를까, 아무리 걸어도 식당은 나타나질 않았고 우리는 점점 말이 없어졌어. 누군가 "저쪽으로 가보자." 해서 그쪽으로 걸었는데 아무것도 안 나타나는 일이 반복되면서 서로에 대한 불신도 쌓여갔지. "거 봐, 내가 거긴 아무것도 없을 것 같다고 했잖아!"하고 서로를 원망하는 말도 하기 시작했어. 조금만 더 걷다간 길에서 한 판 싸우겠다 싶은 순간, 다행히 아시아 음식을 파는 것으로 추정되는 곳을 찾아냈어. 오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식당 밖에 있는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앉았어. 앉으면서 '아고고, 아이고아이고' 소리를 경쟁적으로 내면서 말이야.
초반엔 그래도 분위기 좋았어. 영어 메뉴판이 없어서 당황하고 있는데 가슴에 태권도라는 글씨와 태극기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아저씨가 다가와 우릴 도와줬거든. 함부르크의 작은 동네 골목에 있는 아시안 레스토랑에서 태권도를 좋아하는 독일인을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되겠어? 게다가 그렇게 시킨 음식까지 기가 막히게 맛있는 거야! 좀 전까지 서로에게 짜증을 내면서 지친 몸을 겨우 움직이던 우린 언제 그랬냐는 듯 화기애애하게 수다를 떨기 시작했어. 그렇게 레스토랑을 찾으면서 고조됐던 우리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이 풀리는 것 같았지.
아아, 그런데 음식이 너무 맛있었던 게 문제였을까.
엄마는 원하면 음식에 넣어먹을 수 있도록 작은 종지에 제공되는 고춧가루를 더 달라고 요청했어. 처음엔 '엄마가 매콤한 게 많이 당겼구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지. 엄만 그렇게 받은 걸 냅킨에 싼 뒤 재빨리 주머니에 넣었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말이야! 아 진짜 쪽팔리더라. 왜 저러는 거야. 울컥 화가 나더라고.
"그만 좀 해! 나한테 어글리 코리안이라고 할 때는 언제고, 엄마가 더 심하네! 엄마야 말로 지금 완전 어글리 코리안이거든?" 하는 말이 절로 터져 나왔어. 갑자기 무슨 이야기냐고? 사실 암스테르담에 있을 때 우리가...
잔세스칸스(Zaanse Schans)라는 유명한 풍차마을에 갔거든. 거기서 각종 기념품을 파는 곳에 들어갔는데, 한쪽 벽에 가득 나막신이 걸려있는 거야. 진짜 귀엽고 예쁘더라고. 그래서 난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디자인의 신발을 집어서 꺼낸 뒤, 바닥에 내려놓고 신어 봤지. 그리곤 "엄마, 이거 어때?"하고 웃으며 돌아보는데 엄마가 나를 진짜 경멸의 눈빛으로 보면서 무슨 짓이냐고 화를 내는 거야. 당장 벗어서 제자리에 두라고. 너 그런 짓 하는 거 한국 사람 욕 먹이는 일이라면서 말이야. 나한테 완전 '어글리 코리안'이라고 얼마나 구박을 했는지 몰라.
아니 내가 보기엔 그 신발들이 분명 판매용이었거든. 사이즈도 적혀있고 가격표도 붙어있었다고! 그런데 엄마는 신발들이 너무 멋지게 벽을 꽉 채우고 있으니까 그게 전시품인 줄 알았나 봐. 그렇게 둘이 한참을 살벌하게 싸우는 우리 뒤로 몰려온 다른 관광객들이 우르르 신발을 신어보다가 각자 사고 싶은 걸 들고 계산대에 가는 걸 보고 나서야 우리의 작은 전쟁은 끝났지. 엄마는 나한테 뭐라고 한 걸 머쓱해하며 "어머, 파는 거네..."하고 웅얼거리며 슬며시 자리를 피했어. 나는 그런 엄마 뒤를 투덜거리며 따라갔었고.
내가 그때 진짜 서운하고 억울했나 봐.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오랜 시간 복수의 칼을 갈아온 사람처럼. 엄마에게 똑같이 경멸의 레이저를 마구마구 쏘면서 "엄마가 더 어글리 코리안이야!"하고 말하는 걸 보면 말이야. 엄마는 그런 내게 "야, 이게 뭐 어때서 어차피 공짜로 더 주는 건데! 이거 가져가서 이따 저녁 할 때 쓸 거거든!" 하면서 나를 노려봤어. 그렇게 잠시 풀렸던 둘 사이의 분위기는 다시 급속 냉각되고 말았지.
침묵 속에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별말 없이 각자 할 일을 하면서 쉬었어. 그러다 저녁 시간이 오고. 엄마는 말없이 저녁을 하기 시작했지. 문제의 그 고추를 넣은 카레를 말이야. "밥 먹어."하고 툭 던지는 엄마의 말에 못 이기는 척 식탁에 앉아 '흥, 엄마 진짜 짜증나.' 속으로 중얼거리며 무심하게 한 숟가락 떠먹었는데, 하아... 맛있네? 아주 그냥 칼칼하니 너어ㅡ무 맛있어버려? 아까 그 어글리 코리안이 없었으면 오늘 저녁도 통조림 파스타였을 거 아니야? 난 엄마 몰래 속으로 외쳤어.
사랑해요 어글리 코리안.
어글리 코리안 만세 만세 만만세.
엄마 있잖아. 다시 생각해 보면 엄마와 나는 어글리 코리안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인 것 같아. 우리가 얼마나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데... 오히려 그게 과해서 문제구만... 아니 내가 설마 전시용 물건을 꺼내서 신어 보겠어? 엄마가 설마 레스토랑에서 무리하게 음식을 훔치기라도 했겠냐고! 엄마는 나를 그렇게 키우지 않았어. 나도 엄마한테 그렇게 배우지 않았고. 우리 서로에게 너무 팍팍하게 굴지 말자. 너무 엄격하게 서로를 감시하지 말자고. 한국에서 맨날 다른 사람들 배려만 하고, 남들 눈치만 보며 살았는데 여기까지 와서 그러지 말자. 오케이? 그런 의미에서 카레 리필 되나요? 헤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