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너 힘들게 하는 건 다 싫어

by 김별

엄마,

난 아마 지금은 엄마 마음을 모를 거야.



독일에서 마지막 날은 숙소 앞을 산책하는 걸로 하루를 시작했어. 이곳은 그동안 엘리베이터도 없이 좁은 계단이 가득했던 다른 도시의 숙소들과는 달리 창 밖으로 길 건너 엘베 (Elbe) 강이 바로 보이는 곳이야. 엘베가 없는 엘베 강가 숙소인 거지. 오호호호호호호홋. (미안....)


암튼 아침 산책 중에 만난 엘베 강은 '올, 한강 정도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만큼 제법 큰 강이었어. 그도 그럴 것이 엘베 강은 독일, 체코, 폴란드, 그리고 오스트리아까지! 무려 4개나 되는 나라를 지나는 총길이 1,091km의 엄청 긴 강이거든. 그중 독일 영토를 관통하는 길이가 전체의 70% 정도이고 마지막 관문이 이 함부르크래. ( 한강이 494km니까 한강의 2배 정도 되네. 그런 강에 '올, 한강 정도 되는데?'라니...ㅎㅎㅎ)


폴란드와 체코의 국경지대에서 시작해서 체코 북부, 독일 동부를 지나 이곳 함부르크에서 북해로 흘러나가는 거지. 바다와 맞닿아 있는 공간이라 그런가 강에서 패들 보드를 타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꼭 해변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어. 나무가 울창한 해변이라니. 그런 곳이 있으면 정말 좋겠다.



뭐, 지금은 '그런 곳'이 여기니까 다른 생각 말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야겠지.


엄마, 저기 봐. 제법 큰 개인데도 목줄 없이 자유롭게 공원을 뛰어놀고 있네. 그러고 보니 여기 온 뒤로는 버스에도 식당에도 자연스럽게 개들이 있었지. 이제 막 반려견 문화가 성숙해가는 과정에 있는 한국도 언젠가는 이런 모습이 되겠지. 훈련이 잘 되어 있는 개들과 엄격한 책임감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가득한 견주들을 보니 참 부럽기도 하고, 나와 내 반려견들을 돌아보며 반성하게도 되네.


그래, 지금도 집에서 '엄마가 왜 안 오나...'하고 기다리고 있을 우리 집 개들 말이야. 엄마는 내가 길을 가다 만나는 개들을 보며 우리 개들을 그리워할 때마다 걱정이 한가득이야. 이 여행이 끝나고 돌아가면 나 혼자 개 두 마리를 키워야 하니 말이야. 아이고 내가 생각해도 참 갑갑하기는 하다. 이젠 개통령 강형욱의 책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된다>의 '당신'이 바로 내가 되어버렸잖아.


내가 매일 동이 트기도 전 새벽에 일어나 개들을 산책시킨 뒤 출근하고, 퇴근해서도 내 밥 보다 개 밥을 먼저 챙기고. 무엇보다 아픈 녀석에게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가는 것, 그리고 돈 보다도 더 어마어마하게 많은 내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는 것을 엄마는 걱정해. 이유는 간단해.


내가 힘드니까.



내가 개들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으면 가끔 엄마는 그 녀석들을 미운 눈으로 바라봐. 그럼 내가 왜 그러냐고 그러지 말라고 역정을 내거든. 그럼 엄마는 "너는 니 새끼들 걱정 해. 나는 내 새끼 걱정하는 거야. 몰라 몰라 엄마는 너 힘들게 하는 건 다 싫어!!"라고 말하곤 했어. 엄마는 나중에 내가 아기를 낳아도 걔보다 내가 더 우선이라고 했어. 손주고 뭐고 나 힘들 게 하면 밉다고.


워우... 나는 약간 싸우자고 덤빈 건데, 돌아오는 게 엄마의 열렬한 사랑 고백이 담겨 있는 외침(?)이라 좀 민망했어. 아이 참, 엄마는 내가 그렇게 좋아? 헤헤... 엄마는 그러면서 아마 내가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나도 똑같을 거라고 했어.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고. 아마 그때가 되면 내가 내 새끼들 걱정만 하고 엄마는 까먹고 살다가 문득 '아 참, 엄마 잘 지내나?' 정도로만 기억해 줄 거라고. 내가 나는 안 그럴 거라니까 두고 보자네.


근데 솔직히... 두고 볼 것도 없더라. 애도 아니고 개한테도 엄마가 벌써 밀리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개들 관절 안 좋다고 녹색 홍합 사서 먹이고, 백내장 예방한다고 루테인까지 먹이면서 엄마한테는 영양제 한 통 사준 적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거든. 와... 나 진짜 너무 하네. 자식새끼 키워봐야 아무 소용없다 정말. 그렇지?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엄마는 우연히 만난 작은 성당으로 들어가 초를 켜고 눈을 감아. 그런 엄마를 보며 너무 당연하다는 듯 '보나 마나 날 위해 기도하겠지' 하고 생각하는 내가 참... 뭐라고 해야 할까... 스스로 생각해도 실소가 나올 정도로 뻔뻔한 것 같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내가 이런 확신을 가질 수 있을 만큼 넘치는 사랑을 준 엄마에게 고맙기도 하고 그렇다.


응, 그렇게 엄마는 오늘도 나를 위해 기도해. 나는 그런 엄마를 먼발치에서 바라만 봐. 조금 어색해하면서. 아마 내가 엄마가 되고, 그리고 또 엄마만큼 나이를 먹어야 지금의 엄마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겠지. 미안해 엄마. 자식은 아무튼 부모한테 받기만 해. 다 갚을 수 없을 것만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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