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모네이드를 만들자

by 김별


엄마,

코펜하겐은 시작부터 느낌이 좋다.



나의 지도도, 엄마의 여권도 무사히 찾아낸 우리는 코펜하겐 중앙역에서 10분 정도 걸어 에어비앤비 숙소에 도착했어.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우둘투둘한 돌 길을 걸어온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짐을 거실에 던져두고 주방으로 달려가 마실 것부터 찾았지. 그리고 그 주방에서 레모네이드 한 병과 이 글을 만난 거야.


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


삶이 네게 레몬을 준다면, 레모네이드를 만들라는 뜻인데 처음엔 뭔 소린가 싶었지. 나에게 레몬은 그냥 상큼하고 예쁘기까지 한 과일일 뿐이었거든. 그런데 구글의 도움을 받아 알아보니까 이 말은 꽤 흔하게 쓰이는 문구더라고. 신 레몬은 인생에서 만나는 역경이나 고난을 의미하고, 그것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드는 행위는 힘든 일을 겪었을 때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멋진 결과로 만들어 내는 것을 뜻하는 거지.


이곳에 와서 처음 만난 글이 아주 의미 심장하지. 엄마도 알다시피 지금 내 삶은 레몬 지뢰밭이잖아. 여긴 그 지뢰밭을 감당할 수 없어 일단 살기 위해 도망친 곳이고. 아마 이 여행을 끝내고 돌아가도 레몬을 한 알도 사라지지 않은 채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그럼 난 이 말을 떠올릴 거야. '이 망할 놈의 레몬 자식들, 내가 다 갈아서 레모네이드로 만들어 주마!'하고 말이지.



레몬이랑 레모네이드 생각을 시작부터 너무 많이 해서 그런가. 방으로 짐을 옮기고 둘러본 숙소에는 유독 노란색 포인트가 눈에 띈다. 노란 액자, 노란 스탠드, 그리고 노란 촛대까지... 쿠션들에도 어김없이 노란색이 들어가 있어.



다양한 크기와 색깔의 책이 잔뜩 꽂혀있는 책장에서도 노란 표지만 눈에 쏙쏙 들어온다면, 내가 지금 좀 이상한 거 맞지? 어쩌면 난 이곳에 들어선 순간 레몬의 요정이 걸어 놓은 노랑노랑 주술에 걸려버린 걸지도 모르겠어.


노란색은 자존감이 떨어진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갖게 하는, 심리적으로 낙천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색이라고 하잖아. 게다가 노랑은 빨강과 초록빛의 혼합으로, 초록 파동의 회복 효과와 빨강 파동의 자극 효과가 섞여 기능을 자극하고 상처를 회복하는 두 가지 효과가 있다고도 하네.


자극과 회복이라니.

지금의 내게 이보다 더 필요한 게 있을까?

고마워요 레몬의 요정!



엄마는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노란빛 파동을 알지 못한 채 슬슬 저녁 먹을 레스토랑을 탐색하러 동네 산책을 나가보자고 했어. 오는 길에 뭔가 동양 음식을 파는 것 같은 곳을 본 것 같다며 방향을 틀었지. 난 별생각 없이 엄마 뒤를 따라 걸었어. 그리고 운명처럼 만나게 되었지. 신기하게 생긴 작은 교회 앞 공중에 매달려 노오ㅡ랗게 빛나는 별 모양(이 아닐 수도 있지만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유리 구조물을 말이야!


아무래도 이 도시는 내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레모네이드 만드는 법을 알려줄 모양이야. 여행이 끝나고 돌아가서 만든 나의 레모네이드는 톡톡톡 기분 좋게 자극적인 맛 속에 치유의 기운이 가득 들어있을 거야. 어쩐지 상상만으로도 벌써 힘이 솟는 기분! 나는 우리 앞에 놓인 코펜하겐에서의 시간을 한껏 기대하는 마음으로 나지막이 콜드 플레이의 옐로를 흥얼거리며 산들산들 엄마 뒤를 따라 가.


Look at the stars
Look how they shine for you

And everything you do
Yeah they were all YELLOW


(...)


Look how they shine for you
Look how they shine for you

Look how they shine for you
Look how they shine for you

Look how they shine for you
Look how they shine

Look at the stars
look how they shine for you

And all the things you 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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