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덴마크에 오는 여행자들이 꼭 들른다는 잡화점, 플라잉 타이거 (flying tiger)야. 엄마 말처럼 값싼 물건들이 가득한 덴마크 다이소 같은 곳인데... 그래도 그냥 싼 물건 잔뜩 파는 곳이라기 보단 나름 귀여운 디자인 소품으로도 유명한 곳이라고. 난 엄마랑 그냥 재밌게 구경하다가 마음에 쏙 드는 소품이 있으면 사는 정도로 이곳에서의 활동(?)을 계획했는데, 엄마는 여기까지 와서도 가성비 따져가며 살림살이를 장만하려 하고 있어.
엄마가 귀엽다고 사고 싶어 했던 징그러운 인형이야. 결국 안 샀지만.
엄마는 물욕이 없는 사람이야. 원래 타고나기를 물욕이 없게 난 건지, 아니면 경제 사정에 맞춰 후천적으로 욕망을 억제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억제된 욕망의 게이지가 평균치가 된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엄마는 쇼핑과 거리가 아주 먼 여자가 되었어. 물건은 물건일 뿐. 필요에 따라 가격을 따져 최대한 합리적으로 구매한 뒤 가능한 한 오래 쓴다, 정도가 물건을 대하는 엄마의 태도야.
그러다가 아주 조금의 틈이 생겨 '사고 싶은 거 있음 사도 좋아.'의 상황에 놓이게 되면 엄마는 아주 작고 싼 물건을 골라. 이를테면 수세미나 작은 인형 같은? 엄마가 갖고 싶다고 하는 것들이 다 너무 별 거 아니라서 귀엽기도 한데... 그게 가끔은 조금 슬프기도 해. 엄마는 더 큰 거 더 비싼 거 더 좋은 건 아예 갖고 싶은 마음도 안 드는 사람이 되어버린 건가, 그런 삶을 살아온 건가, 싶어서 말이야.
자리를 옮겨 들어간 인테리어 매장 볼리아(Bolia)에서도 엄마는 계속 가격표를 보며 놀라기만 해. 엄마가 얼마 전에 "나는 시집와서 한 번을 내 마음에 드는 가구를 못 써봤다."라고 했잖아. 그 말이 아직도 내 가슴에 무겁게 내려앉아있거든. 집에서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전업 주부가 식탁 하나, 그릇장 하나 마음에 드는 것 없이 30년 넘게 살아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입고 싶지 않은 옷을 입고 춤을 춰야 하는 발레리나나, 똥이 질질 나오는 볼펜으로 장편 소설을 써야 하는 작가를 상상해 보면 알 것도 같고...
엄마의 이런 습성은 특별히 우리 집이 찢어지게 가난해서 생긴 건 아니라고 생각해. 그럼 이런 여행도 올 수 없었을 테니까. 엄마는 그냥 그러는 거야. 절약이 몸에 배어 있고, 자기 욕망은 접어두고 가족들을 위해 양보하는 게 습관이 된 거지. '내가 이거 하나 안 사면, 우리 별이 뭘 하나 더 사줄 수 있고... 내가 이걸 참으면, 우리 얼이 하고 싶은 거 해줄 수 있고...'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거야.
여기 오기 전에 『덴마크 사람은 왜 첫 월급으로 의자를 살까』라는 책을 읽었어. 저자 오자와 료스케는 일본에서 디자인 가구 쇼핑몰 ‘리그나(Rigna)’를 운영하는 인테리어 전문가인데, 사업 때문에 꽤나 여러 번 북유럽을 방문했나 봐. 그러다가 덴마크 사람들은 첫 월급을 받으면 거의 그 월급을 다 써야 할 정도로 비싸고 좋은 의자를 산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대. 덴마크 사람들은 옷이나 가방 같은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물건에 돈을 쓰는 것보다 의자라는 '생각과 머묾의 장소'에 투자해 100년이고 200년이고 자손에게 대대로 물려주는 것을 택한다는 거지.
작가는 책 속에서 이렇게 말해.
‘인생’은 바꿔 말하면 ‘시간’이고, 그 시간을 보내는 곳은‘공간’이다. 이 공간이 달라지면 생활의 질과 만족도가 당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난 그래서 오늘 이 순간 새롭게 다짐해. 엄마가 새로운 집으로 이사 가는 날, 꼭 내가 번 돈으로 좋은 안락의자 하나 사줘야지. 이케아 같은 곳에서 파는 조립식 가구 말고, 나중에 내가 엄마의 흔적이 잔뜩 남은 의자를 물려받을 수 있는... 그리고 내 딸에게도 물려줄 수 있는 그런 의자로 말이야. 그래서 엄마가 머무는 공간이 부디 나로 인해 행복한 공기로 가득할 수 있다면 좋겠어.
야야~ 그나저나 여긴 정말 무민 천국이다. (무민은 핀란드 캐릭터인데... 옆 동네라 그런가 여기도 많다.) 무민을 좋아하는 나는 무민 코너 앞에 한참 서서 고민 고민 왕 고민... 몇 시간을 고민해서 작은 유리컵 2개를 샀어. 아휴, 다른 건 너무 비싸더라고. 헤헤. 그래도 산 게 어디야. 엄만 결국 아무것도 안 샀잖아! 수세미 조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