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혼자 비행기 탈 수 있지?

by 김별

엄마,

안녕. 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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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엄마가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야. 그래서 나름 이별 의식으로 집 근처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었어. 엄마가 무척 좋아하지만 아빠가 절대 같이 안 먹어주는 스테이크와 요즘 내가 푹 빠져있는 부드럽고 향긋한 라자냐, 그리고 와인 한 잔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았지.


후후, 샐러드가 곁들여지긴 했지만 칼로리는 엄청 높은 식사다,라고 생각하다가 금세 마음을 바꾸고 '칼로리는 맛의 단위'라는 말을 떠올려. 그래 뭐 오늘 같은 날에 이 정도는 먹어도 괜찮겠지. 엄마를 보내고 나 혼자 암스테르담으로 돌아가 한 달을 더 지내다 갈 거니까. 제법 긴 헤어짐이 우리 앞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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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최초에 이 여행을 준비할 때, 엄마는 내 계획에 없었어. 그때 나는 내가 받은 상처들과 박살난 내 인생에만 몰두하고 있었거든. 어떻게든 피하고 싶어 발버둥 쳤던 실패를 기어코 받아 들고 매일 같이 술에 쩔어 지내다가 어느 날 문득 생각한 거야.


'도망치자. 일단 모든 것에서 도망치자. 그러려면 내가 아는 가장 낯선 도시로 떠나 혼자 있어야겠다.'


그게 암스테르담이었어. 한 번도 가본 적 없고, 내 기준에서 가장 익숙하지 않은 곳이었거든. 그래서 엄마에게 잠시 떠나 있겠다고 말했을 때 엄마는 조심스럽게 내게 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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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같이 가면 안 될까?


처음에는 솔직히 좀 그랬어. '나 그냥 편하게 혼자 가고 싶은데...'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아닌 거야. 나도 나지만 엄마도 엄마더라고. 10년 동안 치매에 걸린 외할머니와 할머니를 모시다가 비슷한 시기에 두 분을 모두 떠나보낸 뒤, 50대를 간병으로 흘려보냈다는 허망함과 '더 잘해드릴 걸...' 하는 하지 않아도 될 후회들로 눈에 눈물 마를 새 없는 엄마. 그런 엄마를 그냥 혼자 두고 갈 수가 없었어.


그 영화가 떠오르더라고. 엄마 <카모메 식당> 알아? 내가 몇 번 말한 적 있을 텐데... 아무튼 거기에 마사코라는 여자가 나와. 마사코는 몸이 아픈 부모님을 간호하느라 결혼도 못하고 평생 혼자 살아왔어. 그러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홀가분한 마음이 되어 핀란드로 훌쩍 가방 하나 들고 여행을 떠나거든. 나는 마사코를 보면서 엄마를 떠올렸었어. 엄마도 나중에 저렇게 훌훌 여행하게 해주고 싶다고. 그래 놓고 이제 와서 엄마는 집구석에 두고 나 혼자 날아갈 생각을 했다니. 나참.


뭐 그래서 혼자 궁상떨고 싶은 내 욕망과 그간의 삶에 무게에서 좀 벗어나고픈 엄마의 바람을 섞어 이런 스케줄이 나왔지. 엄마와 보름 동안 함께 이곳저곳을 흘러 다니다가 나 혼자 한 달 동안 고여있는 일정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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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근데, 그렇게 떠나온 여행에서 보름간 신나게 놀다가 마지막 만찬까지 즐겨놓고 막상 엄마를 보내려고 함께 샤를 드골에 오니까 왜 이렇게 마음이 불안한지 모르겠네. 엄마 먼저 한국으로 보내는 일정을 잡은 게 실수인가 싶고 말이야.


엄마, 혼자 비행기 탈 수 있는 거지? 난 엄마가 혼자 비행기를 갈아타며 한국으로 무사히 잘 갈 수 있을지 걱정돼서 죽겠다고. 이렇게 먼 외국에 나온 거 처음이잖아 엄마는. 아휴 꼭 어린아이를 처음으로 혼자 버스에 태워 학교 보내는 엄마 마음 같다니까? (해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다행인 건 내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는 굉장히 씩씩해. 어쩌면 걱정하는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긴장을 애써 감춘 걸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걱정하지 마! 엄마 혼자 잘 갈 수 있어!" 하고 출국하는 곳으로 들어가며 손을 흔드는 엄마를 바라보는데 그때부터 갑자기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아니 나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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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투명한 통로를 따라 올라가며 계속 손을 흔들고 나는 그런 엄마를 따라가며 엄마가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질질 짜면서 애타게 엄마를 찾았어. 아주아주 멀리 가서 안 보일 때까지. 갑자기 엄마를 잃어버린 걸 깨달은 아이처럼 허둥지둥 말이야. 아까 내가 아이를 혼자 보내는 엄마 마음 같다고 한 말 취소. 엄마는 어떤 상황에서도 엄마고, 나는 아무리 잘났다고 까불어도 엄마 안 보이면 우는 아이일 뿐이었네.


엄마를 그렇게 보내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마음이 이상했어. 단순한 허전함을 넘어서 뭔가... 내가 덩굴 식물인데 이제까지 붙어 있던 벽이 갑자기 사라진 기분이랄까. 비비고 치댈 곳이 사라져 허공으로 쏟아져내리는 것 같았어. 아니 나 진짜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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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같이 버스에서도 혼자 청승을 떨다가 숙소 앞에 내려 고개를 드니 갑자기 에펠탑이 반짝이기 시작했어. 딱 내가 도착한 그 타이밍에 말이야. 아아, 엄마가 밤마다 창 밖으로 보면서 에펠탑에 불 들어온 거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고 했었는데... (누가 못 보게 한 거 아니고. 엄마 체력이 밤에는 제로가 되어서 밖에 못 나간 거긴 하지만) 그걸 이제야 혼자 보려니 또 조금 슬퍼서 눈물이 핑 도는 거 있지.


나는 몇 분 정도 앉아서 엄마에게 보내줄 반짝이는 동영상을 찍고는 바로 숙소로 돌아왔어.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네덜란드 가는 기차를 타야 하니까, 맥주 마시고 빨리 잠이나 자버려야겠다.


엄마, 훨훨 잘 날아가고 있지? 나 먼저 잔다. 내일 아침에 내가 알아서 일어날 테니까 깨우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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