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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Mar 28. 2021

행복은 원래, 힘들게 얻는 거


아이와 함께 쇼핑몰에 가면 개들을 만난다.


개와 함께 있는 사람은 아이와 개 사이의 거리가 좁다고 느끼면 크게 긴장한다. 손에 쥔 목줄을 바짝 끌어당기고 자세를 낮추며 혹시라도 모를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게 보인다. 내가 너무나 잘 아는 몸짓이다. 누군가 우리를 보고 마음을 조이면 나는 미소 띤 얼굴로 그를 향해 말한다.


"개들이랑 같이 살아서 괜찮아요. 아이는 제가 잘 잡을게요."


그리고 아이의 어깨를 살짝 감싸 안고 잘 들리게 말해준다.


"우리 집에 있는 언니 오빠랑 똑같네. 그런데 하늘이가 갑자기 다가가면 멍멍이가 놀라니까 조심해야 해."


그럼 열에 아홉은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그럼 인사할까요?' 하며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아이는 언제나 그런 것처럼 일말의 머뭇거림도 없이 개에게 다가간다. 개도 우리가 자신에게 호의를 갖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챈다. 아이와 개가 서로를 신중하게 탐색하는 모습을 보는 건 즐겁다. 상대를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작은 몸과 마음을 쓰는 광경은 사랑스럽다. 세상 무엇보다 무해한 존재들끼리 나누는 인사는 아름답다. 우연히 마주치는 이 순간은 내가 쇼핑몰 나들이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간 중 하나다.


어느 날인가 쇼핑몰에서 아이와 함께 걸음마 맹연습을 하고 있는데 한 여성이 반짝이는 눈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품에는 작은 몰티즈 한 마리가 안겨 있었다. 그녀와 나, 개와 아이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처음 보는 사이지만 아주 가까운 마음으로 다정한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다 문득 그녀가 나를 향해 물었다.


“어떤가요. 사이좋게 잘 지내죠?”


원하는 답이 정해져 있는 확정적인 질문이었다. 곧 임신을 준비 중인 걸까. 아니면 지금 배 속에 아기가 있을까. 그녀의 질문 속에는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기대감도 섞여있었다. 나는 잠시 원하는 답을 들려줄까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니요. 사이가 좋다고 하기에는 아직 서로 적응 중인 상황이에요. 사실 개들은 스트레스받고 있어요.”


그녀는 조금 놀라는 눈치였다. 그리고 역시나 실망하는 기색이었다. 아이고야, 나는 괜히 미안해져서 애매한 웃음을 지으며 아이의 손을 잡고 자리를 떴다.


미디어나 책에선 아이와 개들이 아주 정답게 함께 지내는 사진이나 영상을 볼 수 있다. 자는 아이에게 이불을 끌어다 덮어주는 레트리버라던가 개를 꼭 끌어안고 잠든 아이 같은 모습. 나도 아이를 기다리는 중에 그런 것들을 찾아보며 환상을 가졌었다. 우리 개들은 착하고 순하니까 아이를 좋아할 거야. 아이는 내 딸이니까 당연히 개들을 좋아하겠지. 뭐 대강 이렇게 생각한 거 같다.


그러나 현실을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 이제와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무척 안일했다. 둘째가 태어났을 때 무작정 '둘이 같이 잘 놀겠거니.' 생각하는 것과 같달까. 둘째가 태어났을 때 첫째의 심정이 사랑하는 남편이 갑자기 다른 여자를 데리고 와서 이 여자랑 너를 똑같이 사랑하니 우리 이제 셋이서 행복하게 살아보자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글을 어디서 본 적이 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개들의 마음도 그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게 오히려 맞다.


우리 집 개 두 마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함께 살았다. 그럼 사람들이 꼭 하는 말이 있다.


"그래도 둘이라서 좋겠어요. 둘이 사이좋지요?"


아니다. 우리 집 개 둘은 뭐랄까... 보통의 남매 같다. 서로 죽고 못 살지도 않고, 그렇다고 죽일 듯 미워하지도 않는 정도. 엄마가 같아서 그냥저냥 같이 사는 거 같다. 아무리 티격태격하다가도 이상하게 잘 때는 꼭 같이 붙어서 자는 그런... 가족 같은 사이?


아기와 개는 나의 선택으로 가족 구성원이 된 존재들이다. 우리가 함께 살게 된 데에 그들의 의사는 반영되지 않았다. 때문에 내 마음대로 그냥 다 모아놓고 '나는 너희들을 사랑하니 이제부터 모두 사이좋게 지내도록!' 하고 강요하거나, 내가 말 안 해도 알아서 서로 아끼고 사랑하겠거니... 막연히 기대하면 안 된다. 그런 식의 기대는 실망을 낳을 뿐이다. 너무나 힘겨운 육아와 육견의 현장에서는 그런 실망감까지 처리할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다.


그러니 틈만 나면 비집고 들어오는 기대감을 내려놓고, 대신 그 자리에 현실적인 것들을 끼워 넣을 필요가 있다. 개들이 아이를 아껴주길 바란다면 아이와 함께 산책하는 시간을 늘리고. 아이가 개들을 소중하게 대하길 바라면 부모가 바라는 그 모습으로 개들을 대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에 시간이 아주 많이 (내가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걸릴 거라는 걸 언제나 염두하면서 조급함도 버려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간식을 개들에게 나눠주는 아이의 모습에 미소 지을 날도 오고, 온 가족이 한 침대에 누워 평화롭게 서로를 쓰다듬으며 충만한 행복감을 느낄 날도 온다.


그렇다. 아이와 개와 함께 사는 일은 쉽고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행복은 원래, 힘들게 얻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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