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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May 14. 2021

엄마가 금방 데리러 오지


아직 푸른 새벽, 아이가 잠결에 눈을 번쩍 뜨더니 나를 똑바로 보면서 “어린이집 안 가고, 하삐함미(할아버지, 할머니) 집 가! 우리 집 안 가고, 까까 사러 가!” 하고 외치며 울상을 지었다. 아는 사람은 다 알 거다. 자는 줄 알던 아이와의 급작스러운 눈 맞춤이 얼마나 짜릿한지. ‘아… 안 돼…’ 내 안에서 울려 퍼지는 내적 비명. 나는 쫄깃해진 심장을 부여잡고 침착한 고양이처럼 살그머니 눈을 감았다. 아무 말도 안 하고 자연스럽게 자는 척했다. 그렇게 30초 정도 지나니 감은 눈 너머로 아이가 내쉬는 부드럽고 달콤한 잠의 숨결이 느껴졌다. 

    

휴 십년감수했네, 안심하면서도 잠꼬대를 할 정도로 어린이집 가기 싫어 어쩌나 싶어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갈 때 거의 매번 울음을 터뜨린다. 어린이집이 있는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내가 좌회전 깜빡이를 켜면 그 신호를 받아 “어린이집 안 가고, 하삐함미 집 가~” 하고 울며 소리친다.      


선생님은 아이가 나와 헤어지면 거의 바로 울음을 그치고 굉장히 활발하게 지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그래도 눈앞에서 유리알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작고 예쁜 얼굴을 보면 돌아서는 내 눈에서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매일 아침이 눈물 바람이다. 우리 아이만 이러는 걸까, 나만 이렇게 힘든 걸까, 어쩌면 좋을까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그러다 작가 캐럴라인 냅을 만났다.      


그녀의 책 <명랑한 은둔자>에는 개와 그녀의 에피소드가 하나 나온다. 캐럴라인은 수요일마다 그녀의 개 루실을 놀이방에 맡기는데 어느 날 놀이방을 운영하는 사람에게 루실과 그녀의 애착이 약간 과하고, 그건 좀 건전하지 못한 일이라는 말을 듣는다. 둘의 애착이 너무 강해서 개를 놀이방에 맡길 때 그녀가 느끼는 불안을 루실이 그대로 느끼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 말을 들은 작가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주인의 곁을 한시도 뜨지 못하는 개들, 낯선 사람이 방에 들어오면 움츠리고 조바심치는 개들, 다른 개들과 ‘잘 놀지’ 않는 개들을 더러 보았다. 루실은 그렇진 않다. 내가 저를 낯선 사람들에게 맡기고 떠나면 잠깐 속상하겠지만, 루실은 사실 특출나게 자신감 있고 사교적인 개다. 문제는 루실의 불안이 아니다. 내 불안이다.    


루실이 아니라 그녀가 루실과 떨어지는 게 싫었던 거고, 그 마음을 느낀 루실이 덩달아 초조해진 거라는 걸 알아챈 그녀는 놀란다. 20킬로그램도 안 되는 작은 털뭉치가 자기 삶의 중심이라는 사실에 당황한다. 그리고 글을 읽던 나도 함께 놀라고 당황했다. 나와 캐럴라인의 상태가 똑같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사실은 내가 아이와 헤어지는 상황을 힘들어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제 고작 10킬로그램 나가는 아이가 내 삶의 중심이었다는 것도. 아이는 그런 내 감정에 전이되어 잠깐 울었다가 시간이 지나면 본래의 활기찬 모습으로 돌아가 즐겁게 어린이집 생활을 이어나갔던 것이다. 아이가 왜 우는지 원인을 알게 되니 해결책이 명료해졌다. 내가 우리의 헤어짐을 건강하게 받아들이면 되는 거였다. 


그 뒤로 나는 하루 4~5시간 정도는 아이와 내가 각자의 일상을 보내는 게 우리 관계를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이라는 사실을 가슴 깊이 새겼다. 아이와 헤어질 때 밝은 얼굴로 작별 인사를 하고 씩씩하게 손을 흔들며 돌아서려고 노력했다. ‘엄마가 어린이집에 보내서 미안해…’하는 마음이나 ‘무슨 일이 일어나면 어쩌지?’하는 불안 같은 건 쓰레기통에 던져 넣으려고 애썼다.      


그리고 오늘, 분명 내 귀로 듣고도 믿을 수 없는 말을 들었다. 내 손을 잡고 어린이집을 향해 걷는 아이의 목소리였다. 


“친구들하고 코 하고 까까 먹고 있으면 엄마가 금방 데리러 오지.” 


나에게 하는 말 같기도 했고, 스스로 곱씹는 말 같기도 했다. 나는 다정하게 아이를 안으며 “응 엄마가 우리 하늘이 얼른 데리러 올게.” 하고 말해주었다.      


아이는 오늘 울지 않고 내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돌아서 내가 내 삶의 중심인 소중한 시간을 향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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